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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마초맨 김 씨를 죽였을까!

by 김석철


곡기를 끊고, 병풍 속의 그림처럼 꼼짝 않고 산송장이 되어버린 날은 김 씨가 서울에서 내려온 날부터였다.

늘 유쾌하고 낙천적이던 마초맨 김 씨가 천형이라 일컫는 지랄 같은 암에게 꼼짝없이 붙들린 때는 팔팔한 40대 중반이었다.
싸나이는 가오와 배짱 빼면 시체다고 굳게 믿던 김 씨의, 막걸리 앞에 두고 슬레이트 판때기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던 삼겹살과 한바탕 잘 어울리던 허풍이 막을 내린 것이다.
삶의 의욕 보다 더 맹렬하게 전이되는 암덩어리는 마초맨 김 씨의 가오와 배짱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애면글면, 한 인간의 의지와 돈, 천형인 암과의 오랜 사투는 결국 인간과 돈의 일방적인 참패로 1차전의 막을 내리게 된다.

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괌의 미공군 비행장 건설의 현장 근로자였던 김 씨가 선택한 마지막 카드는, '근무 중 사망'이었다. 비행기에 발을 디디는 순간 짐짝에 불과했을 암덩어리 육체는 어찌 되었건 몇 닢의 돈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니까.
목숨값으로 애비로서의 마지막 '가오'를 지키고자 한 바람은 장난처럼 반전이 되고 말았다.
시신으로 반납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몇 년간을 무사히 근무하고, 암까지 극복이 되었다.
당시 미군의 우수한 의료기술, 결정적으로 적도의 작렬하는 직사광선이 암을 이겨낸 이유일 거라고 김 씨는 확신을 했다.

재발, 잔혹한 살인 세포가 또다시 김 씨의 숨통을 거머쥐었다. 또 한 번의 나락을 노린 무자비한 암세포는 노골적으로 김 씨 일족의 파멸을 예고했다.
후두암으로 목을 절개 한 김 씨의 걸걸한 음성은 답답한 신세가 잔뜩 덧입혀진 채 휘적휘적 휘갈긴 단문의 글로 대체가 되었다.

김 씨의 짜증과 매 끼니 걱정은 온전히 이여사의 몫이었다. 후지 한 근의 값어치도 못될 김 씨의 갖은 폭설과 분노를 홀몸으로 다 받아내면서도 우직하게 감싸고돌았다. 타고난 팔자가 박복한 년이라서 그런 거랬다. 잔인한 암세포는 죄 없는 이 여사의 피부터 먼저 말려 죽일 작정이었다.

머리가 클 대로 큰 자식들은 바깥에서 겉도는 시간이 늘어났다.


죽는 순간 까지도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천형'이라고 불리는 암, 병자 본인의 고통으로만 끝나면 더 이상 천형이 아니다.
고등학생이던 김 씨의 둘째는 학교 가는 버스비 몇 푼이 없어서, 남들 볼세라 교복 차림으로 뒷동산에 숨어들어 친구들이 마치고 올 밤늦은 시간까지 버티고 버텼다. 비라도 내리는 날은 나뭇가지와 잎사귀로 얼키설키 얽어맨 아지트에서 비에 쫄딱 젖어 바들바들 떨면서 말이다. 어머니도, 친구들도...그 누구도 모른다. 가난은 입조차 무겁게 만드는 법이니까.
미래를 꿈꾸는 것? 사치다. 간절한 기도가 있다면 한 끼의 제대로 된 식사와 이대로 조용히, 고통 없이 세상이 끝났으면 하는 거다.

아편 주사로 극도의 고통을 견디던 김 씨가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말라비틀어진 띠뽀리 같은 김 씨의 마지막 희망을 실은 버스였다.
이미 간병으로 인해 김 씨의 테두리에서 무기징역을 사는 이여사와 늘 감옥으로부터의 탈주를 꿈꾸던 둘째가 동행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암센터와 권위 있는 의사가 있다는 태능으로 희망 없는 희망을 찾아 나섰다.
절개한 목의 튜브를 통해 죽이나 미음으로 연명하면서도 김 씨는 제 발로 잘 걷고 가벼운 마실도 다니면서 삶에 대한 애착을 단 한 순간도 버리지 않았다. 가오나 배짱은 바람 같이 흩어졌지만, 해병대 오기만큼은 삶을 버티는 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가망 없습니다!"


"가망 없스....!"

그 시간부로 마초맨 김 씨의 한 많은 생은 막을 내렸다.
기계적인 눈으로 물끄럼히 쳐다보던 차트에서 갑자기 날이 바짝 선 칼 날이 날아와 김 씨의 지푸라기 희망을 찔러버렸다.
가타부타 부연 설명 한마디 없이 멍하니 차트만 쳐다보던 선고인의 짧고 단호한 한마디는 그 자리에 가까스로 버티고 선 세 사람을 동시에 죽여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어렵게 입을 떼는 이여사의 물음이 다 하기도 전에 최고의 권위자님께옵서는, "어허, 이미 가망이 없다니까요!"
둘째가 들은 최고 권위자님이란 양반의 말은 딱 두 번 뿐이었다. 사망선고와, 재차 확인 선언.
조금만, 조금만 거짓말을 해 줬음 안 됐나?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내일 일은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 좀 더 최선을 다 해 봅시다라고...

희망에 비수가 꽂힌 마초맨 김 씨는 마침내 숨이 끊어지는 날 보다 먼저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명을 피할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며칠은 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분명, 그랬다.


무엇이 가오와 배짱, 그리고 해병대의 오기로 살아온 마쵸맨 김 씨에게 죽음을 던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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