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는 과연, 진돗개일까?
7시.
잠시후면 자발적 홀애비 신세로 전락한 주인 놈이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하루치 일용할 양식을 대령할 시간이야. 근데, 이 내시 같은 작자는 근래 들어 반백수가 되었는지 식사 올리는 시간이 들쑥날쑥 제 배알 내키는 대로야. 어떤 날은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또 어떤 날은 오후 두세 시나 되어서야 잠시 꼬락서니를 보였다가 방귀 새듯 홀연히 사라져 버리기 일쑤지. 군기가 빠져서는...
웬일인지 오늘은, 뼈 빠지게 돈 벌어 사료값으로 다 날린다, 하는 짓 없이 더럽게 많이 처먹는다는 둥의 악담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릇 소복이 밥을 쏟아붓고 출근을 하더라구. 근 일주일 만에 돈 벌러 가는 길 같은데, 이러다 진짜 눈칫밥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들어.
내 형제는 다섯이야.
전 주인 할마이는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홀로 이 촌구석으로 귀촌을 했다는데, 자식들이 하나 같이 후레돌놈들이라서 몇 년이 되도록 코빼기도 한번 안 비친다, 꼴에 일류대학 출신으로 한 때는 날렸다카더라 등 별별 카더라 소문이 분분해. 원래 촌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거거든. 하긴 그런 것도 없으면 촌구석에서 뭔 재미로 살겠어?
할마이는 내 애미가 순종 진돗개라고 단단히 믿고 있더라구. 귀 쫑긋 서고 꼬랑지 돌돌 말려 올라가면 촌에서는 무조건 진돗개라는 불변의 믿음이란 게 있거든. 게다가, 내 애미를 떠맡긴 이가 족보도 있는 개라고 설레발을 하도 쳐놔서 순종에 대한 확신이 뼛속까지 박혀있는 할매야.
내가 이 농장의 식구로 올 때도, 할매는 몇 번이나 발걸음을 해서 읍소를 했다고 들었어. 회유하고 꼬드기고, 거의 빌다시피 해서 나를 떠맡겼지. 당시 이 농장에는 유기견 센터에서 입양한 잘 생긴 형아가 둘이나 있었거든.
할매의 눈물 맺힌 삼고초려와, 특히 족보 있는 순종 진돗개라는 점을 강력하게 어필한 덕분인지 용케 처치 곤란했던 애물단지 중에 하나였던 나를 처치할 수 있었어. 은근슬쩍 한 마리 더 얹어 넘기려고 수작을 떨다 호되게 잔소리만 듣고 까딱했으면 나조차 못 올 뻔했다고 그러더라구.
시골에서 우리의 신세는 그야말로 '계륵'이지.
없으면 좀 아쉽고, 있으면 천덕꾸러기인 존재, 시고르자브종의 숙명같은거랄까?
진돗개라고 바득바득 우기지만, 나는 솔직히 애비도 몰라. 목줄에 묶여 지내는 내 애미가 어떻게 나를 가졌는지 자체가 미스터리 한데 순종 진돗개라니 어처구니 없지?
요 아래 이삿짐센터 사장은 자기네 백구는 '풍산개'라고 동네방네 외고패고 다니면서 자랑질을 해댔어. 슬쩍 물어봤지.
대답 대신 피식 웃고 말더라구. 그래, 지나 내나 족보가 어딨겠어, 그냥 시골 똥개지.
재작 년에 주인 놈이 느닷없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동백나무 주변으로 휘뚜루마뚜루 부실하기 짝이 없는 울타리를 후닥닥 둘러치더니 목줄을 풀어주었어. 사실, 목줄 이거 여간 성가시고 괴로운 게 아니거든.
근 오 년 만에 처음으로 옭매였던 목줄에서 벗어난 기념비적인 날이었으니 나도 주인 놈도 신이 나서 한동안 미친 듯이 뛰어놀았더랬어.
막상 목줄에서 자유를 얻으니까 바깥세상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는 거야. 그보다는 솔직히 끓어오르는 왕성한 종족 번식의 욕구를 참아내기가 힘들었던 거지. 묶여있을 때는 몰랐던 건장한 수컷의 본능, 뭔 말인지 알지?
마치 쇼생크 감옥의 듀프레인처럼 멋지게 탈출을 감행했지. 부실한 울타리 따위는 발정 난 숫컷의 말초적 본능 앞에서는 애당초 장애물이 될 수가 없었던 거지.
숫총각의 딱지를 떼고 삼일 만에 으스대면서 귀가한 날 다시 목줄이라는 쇠고랑이 기다리고 있었어. 한여름밤의 꿈같은 일탈은 삼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이후로는 아무리 애절하게 가련한 척을 해도 주인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어. 그나마 한은 풀었으니 그게 어디야.
인간이란 존재도 알고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만 열면 우리 개들더러 속박당하는 신세라고 측은해하는데, 따져보면 인간인들 별반 다른 게 없을 듯싶어.
허용된 공간의 반경이야 인간들이 월등히 넓을지는 모르지만, 속박이란 게 비단 공간에만 국한된 게 아니지 않겠어?
인간들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용한 재주가 있는 헛똑똑이가 분명해.
온갖 관습이랑 법, 도덕률, 사상 같은 걸로 촘촘하게 빈틈없는 그물을 쳐. 우리가 볼 때는 시시하기 그지없는 것들인데 뭐가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극성을 부리는지.
명분이라는 이름으로 속박하고, 이성이라는 틀로 재단해서 가두지. 인간의 형이상학적 가치라는 게 정말 그런 거라면, 우리 개가 백배 낫다고 봐. 내가 개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가끔씩 든다니깐.
새벽녘에도 주인 놈은 먹고살 거라고 축 처진 어깨를 끌고 출근이란 걸 했어. 밥 먹다 흘겨보니까 뒷모습이 그렇게 처량하게 보일 수 없는 거야.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폼이 더라니까.
제 식구 건사하기도 버거울 텐데 나랑 몬난이 가족까지 먹여 살리려면 사는 게 얼마나 힘들까 싶은 게 맘이 영 짠하더라구.
개 팔자가 상 팔자란 말, 괜히 하는 말이 아닌 거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