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관의 경우 거의 한 달 주기로 간판이 새롭게 걸린다면 재개봉관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바뀌어 걸린다. 당달봉사의 눈으로 봐도 그림의 격에는 확연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티라노사우르스가 눈알을 부라리며 금방이라도 도심의 거리로 튀어나올 기세와 개발새발 졸다 그린 영구와 티라노의 발톱 이상의, 비교를 한다는 자체가 가당챦다.
피카디리 극장과 개봉관인 연흥 극장은 4차선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으니 자연 두 극장의 간판 그림은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피카디리 극장의 그림쟁이는 억울하게도 제대로 된 실력 검증 한 번 없이 늘상 조롱거리가 되었다.
우리 극장의 간판부장 한 씨의 작업장에는 벽이건 바닥이건 눈이 닿는 곳에는 온통 알록달록한 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고, 어김없이 빈 소주병과 반쯤 남겨진 술병이 널브러진 채 굴러다녔다.
극장의 뒤편에 숨겨진 화실 속에 사는 한 화백의 몸에서는 언제나 물감, 신나, 그리고 알코올에 쩔은 냄새가 진득하게 풍겼다.
신나에 담가 휘휘 저어 씻은 붓에 여전히 물감이 엉겨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충 툭툭 털어 던져두고 물감병 또한 여기저기서 발에 걷어차였다.
차기 상영작이 확정되면 열댓 장의 스틸사진을 한 부장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면 한 부장은 선택한 사진에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로 칸을 분할한 뒤 진한 연필로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 부장의 칸 나눔은 거기서 끝이었다. 정작 극장의 전면에 거대하게 걸릴 천막지 캔버스에는 자질 이라곤 아예 하지를 않았다. 그럴 바에야 굳이 스틸사진에 칸 나눔은 왜 했을까.
끝이 닿지 않는 큼지막한 간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거침없이 세모, 네모의 윤곽을 쓱싹 그려 넣었다. 오로지 감에 기댄 채 통밥으로 붓질을 하는 것 같은데, 기가 막히게 균형이나 이미지가 형태를 갖추었다.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이 녹아있는 손짓과 수십만 번도 더 번뜩였을 눈이 빈 공간을 나누고 색채를 덧입혀나갔다.
보름 전에 그려졌던 그림 위로 또 다른 그림이 올라선다. 결국 지워지고 잊히는 그림을 위해 또 다른 그림을 그려대는 것이었다.
글이든 그림이든 대게는 기억되고 남겨지기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시공을 건너온 날들이 흔적이 되고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한 부장의 한 획 한 획 그어대는 붓질 역시 한 때는 누군가는 기억해 주는 작품이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재개봉 2류 극장의 붙박이 화가로 주저앉은 한 부장의 오늘은 단지 먹고살기 위해 잊히고 지워지는 그림을 습관처럼 그린다. 그림 나부랭이로 한 잔의 쐬주잔을 채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피카디리 극장의 노쇠한 화가는 개구멍으로 극장을 숨어들 때부터 인연을 맺은 그림밥을 반백년이 넘도록 먹었다.
그림 그리신 지는 얼마나 되셨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세는 걸 까먹었다고 했다. 단지, 요만할 때부터 라며 편 손바닥을 페인트로 딱지 앉은 바닥을 향한 채 느리게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손바닥이 바닥에서 멀어지는 느릿한 움직임에서 한 인생이 꼬맹이에서 청년으로, 또 주름살과 함께 저물어가는 여정이 설핏 비쳐 보였다.
열서너 살 적 영화가 너무 좋아 몰래 도둑 구경을 하다 극장에서 잡심부름을 해주면 공짜로 맘껏 볼 수 있다는 말에 혹 해 극장 언저리에서 비볐던 게 평생 이 바닥에 붙들려 벗어나지 못한 팔자가 되고 말았다며 깊은 주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극장과의 연이 끝나고 몇 해나 더 흘렀을까, 지방 일간신문의 사회면 구석진 자리에 피카디리의 화백이 은퇴를 하며 가진 인터뷰가 실린 것을 우연챦게 보았다.
기자의 질문은 도발로 느껴질 만큼 꽤나 노골적이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지워지는 그림을 평생 그리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이었다.
"어느 날 나도 내 그림이란 걸 그리고 싶어 지더라고요. 비록 학교라고는 문턱도 못 밟아본 그림쟁이에 그 어떤 이도 눈여겨보지 않는 간판 화가에 불과하지만, 어느 순간 그린다는 행위가 덧없고 너무 공허하더라고."
복사하듯 실사에 가깝게 그릴수록 잘 된 그림이라는 세간의 평에 의문이 들었던 게 늦깎이 쉰 줄도 한참 지나서였단다.
굵고 강한 선과 거친 터치.
평생을 붓 하나에 기대어 살면서 비로소 천착을 거듭한 자기 그림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고, 조롱과 알력에도 불구하고 그리는 일에 의미와 설렘을 느꼈다고 은퇴의 소감을 밝혔다.
늘 술에 찌들어 살았던 한 부장 역시 자기만의 세계에서 남 모를 홍역을 치르던 중이었을까?
어중잽이 내가 그럴싸한 작품 하나 제대로 써내지 못하면서도 밤낮없이 질문과 고민 속에 갇혀 허우적대는 것처럼...
한 부장님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냐고 물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