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쇠 아재네의 한 해 농사가 끝을 맺습니다.
땅콩을 수확하는 첫날이었거든요.
게으른 반푼수 농사꾼이 다년간 숫한 작물을 재배해 본 결과 선택한 주생산 품목은 '땅콩'입니다.
일단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장점은 최고의 매력입니다. 태평농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갖다 붙이기는 했지만 실상은 방치형 농사입니다. 살 놈은 살고 죽을 팔자면 죽는 거지요. 그러니 퇴비, 비료는 물론 병충해를 잡을 거라 그 흔해빠진 농약 한번 치지를 않습니다.
작년, 재작년 속청 서리태를 심었더랬습니다. 콩 역시 잔손이 크게 가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버텨내는 작물이라 덤벼들었던 것이죠. 왠 걸요? 두해 동안 날씬한 몸매를 한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의 극성맞은 파상공세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습니다. 이슬이 마르기 전인 이른 시간이면 눈 뜨기가 무섭게 날개를 말리러 나온 노린재 사냥을 시작합니다. 빨간 반코팅 장갑의 저승사자가 되어 눈에 띄는 족족 압사를 시키다 보면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살육에 은근한 재미가 붙습니다. 두 손바닥으로 박수를 치듯 때려잡기, 손가락만으로 잽싸게 낚아채기, 마빡에 꿈밤 먹이듯 손가락을 퉁겨 날려버리는 스킬 등등 점차 노린재를 상대로 한 사디스트가 되어갑니다. 따땃한 햇빛 한번 쬐려다 졸지에 황천길로 가버린 노린재는 날마다 숫자를 더해갑니다. 여느 노린재들과는 달리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에게는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올해는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에게 무릎을 꿇고 깨끗이 서리태 농사에 손을 떼고 말았습니다.
오이, 호박 잎사귀에 환장하는 오이잎벌레, 대파 쪽파 뿌리에 기생하는 고자리파리, 고추는 칼라병을 옮기는 꽃노랑총채벌레를 위시한 온갖 병과 충의 잔치상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재배 목록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게으른 농부인 저는 자연과의 다툼은 질색팔색 합니다. 차라리 피하고 말지 애터지게 목을 매거나 맞서는 짓은 부질없는 아둔함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거든요. 어쩌면 배부른 자의 시건방일 수도 있습니다만.
미주알고주알 따지다 보니 땅콩만한 안성맞춤이 어딨겠습니까. 비바람이나 혹독한 가뭄 홍수는 물론 파밤 같은 충의 노략질에도 끄떡없는 생명력에 더해, 볶아 먹고, 삶아 먹고, 조려 먹고, 하다 하다 생으로 먹어도 자꾸만 손이 가는 고소한 맛, 게다가 해를 넘겨도 쌩쌩한 저장성까지. 땅콩을 마다 할 껀덕지가 없습니다.
농사에 대해서는 늘 맘이 할랑한 돌쇠네는 항상 파종시기가 남들보다 두어 박자 뒤쳐집니다. 엄밀히 말하면 남들이 빠른 겁니다. 온난화나 나아진 재배기술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돈이 만든 조급함은 아닐까 싶습니다.
올해 역시 남들은 수확을 하는 판국에 파종조차 안 한 밭을 보며 늑장을 부린다는 핀잔을 무지 들어야 했습니다.
자연에는 자신들만의 시간표라는 게 있습니다. 장미랑 국화의 시간이 따로 흐르고 밀물과 썰물의 때가 다릅니다. 세상만사가 발만 동동 구른다고 어디 맘대로 되지는 않쟌습니까. 다 때가 있게 마련인데 자연에서는 순리라고 그럽디다. 그냥 가만 냅둬도 흘러가는 길, 어쩌면 인간들의 노고는 순리와는 반대의 길로만 역행하는 것 같습니다.
고구마, 깨, 땅콩은 대표적인 여름작물입니다. 작열하는 뙤약볕이 긋는 선이 이들이 왕성하게 살아가는 최고의 시간표지요. 그러니 오월에 심은 녀석이랑 저처럼 유월하고 중순을 넘겨 심은 녀석들이랑 수확에는 거반 차이가 없습니다.
가끔 계절을 턱없이 훌쩍 넘긴 새싹이 고개를 삐죽이 내민 들판을 보게 됩니다. 저 녀석, 어쩌자고 이제서야 세상에 나오나 싶어 애처롭습니다. 기우입니다. 놀랍게도 이 녀석의 시간은 무지막지하게 빨리 흐릅니다. 싹을 틔우고 줄기가 뻗고, 또 다른 엽수가 더해지고를 반복하다 기어코 앙증맞은 꽃봉오리를 피워 올립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단지 짜리 몽땅한 키의 왜소함만 제하면 한 일생이 완벽하게 압축되어 피었다 집니다. 자연 속에는 시간마저 한 생명을 위해 따로 움직이는 신의 놀라운 은총이 엿보입니다.
고구마가, 고추가 추위에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떱니다. 오월의 강추위도 모자라 비닐까지 씌워가면서 사월로, 삼월로 내몹니다.
반푼수 농꾼인 저는 달이 차고 씨앗을 뿌리고, 비가 내리고 김을 매고, 허리 한번 쭉 펴고 바람을 느끼고... 그렇게 뉘엿뉘엿 내 땅콩들과 공존을 했습니다.
느지막이 심기운 땅콩이 이제 벗들의 요란한 수다 속에서 알찬 속을 드러낸 겁니다.
게으른 농꾼의 밭에는, '쉼표가 있는 풍경'이란 이름표가 붙어있습니다.
눈길이 닿는 곳 지천에 허벅지만 한 몸통을 가진 맹종죽이 하늘과 키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한 그루의 대나무 속에 몽땅 아우러져있습니다.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넓고 깊은 뿌리에 오랜 기다림, 그리고 마디라고 하는 '쉼'이 함께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땅콩을 캔 첫날.
그리운 이들이 한 움큼 들고 나선 땅콩이 주전부리 입가심이 되고, 알싸한 쏘주의 안주가 되고, 가족이 함께 나눌 고소한 자반으로 밥상에 오를 그림을 그려봅니다.
참으로 행복한 날.
마음과 가을이 함께 익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