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하 선생님!
나는 인생길이 막판에 몰린 사람의 눈빛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냥 그냥 살아지니까 사는, 그런 걸 어떤 이는 죽지 못해서 산다고도 하죠, 미래는 암울하고, 과거는 슬픈 그런 이들의 눈빛 말입니다.
살을 에는 눈발을 몰고 온 당신이 새벽이라 하기에는 여전히 깜깜한 시각에 외진 교회당의 문을 밀치고 들어 선 그날, 동공 잃은 처연한 눈빛은 오히려 살기마저 느끼게 했었지요. 어떤 겹겹이 쌓인 사연들이 침몰 직전의 당신을 생면부지의 낯선 땅, 낯선 이들, 낯선 창조주에게 이끌었을까요.
한눈에 봐도 당신이 온몸으로 짊어진 짐은 잔인할 정도로 무거워 보였습니다. 처진 어깻죽지, 후들거리는 다리, 긴 긴 통곡과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르는 끈적한 액체들. 기도가 아니라 목이 메인 절규였습니다.
그날 새벽 끅끅거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가련한 인생을 곁눈으로 한동안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당신이 밀고 들어온 색 바랜 교회당 문짝은 또 얼마나 완강히 버티던지 한참을 손잡이에 기댄 채 굳어 있었지요. 뒤에 붙어 따라온 매서운 바람이 당신의 등짝을 밀어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해 혹독했던 겨울의 칼바람 끝에는 포대기에 둘둘 말린 젖비린내 나는 아기를 온몸으로 감싸 안은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키 작은, 눈망울이 똘망한 꼬마 숙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여인의 바짓가랑이를 꼬옥 움켜쥐고 있는 것도 보았지요. 꼬맹이와 여인의 떨림은 단지 겨울바람 탓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신이 깨트린 교회당의 평온은 삐걱이는 문짝의 신음소리나 등에 업고 온 매서운 공기가 다는 아니었습니다. 빠져나가는 빛들과 기어코 밀고 들어오려는 어둠의 중간에 끼어버린 당신과 가족이 그려낸 한없이 슬픈 그림 때문이었습니다. 정지된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진 새벽이었습니다.
원칙이냐 타협이냐.
여느 사람 같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쉬이 선택할 일조차 하 선생님은 조목조목 따지고 가늠질을 했지요.
주위에선 고지식하다느니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느니 제 잘난 맛에 사는 피곤한 인물로 입방아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름처럼 둥둥 떠오른 호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당신을 곱게 봐 줄리가 없었지요.
서슬 퍼런 작두날 위에 맨발로 올라서 춤을 추는 망나니 같았던 당신이 서는 자리는 늘 아슬했습니다. 굴러온 선무당이 사람 여럿 잡는다는고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수군댔더랬습니다. 물론 정점에는 갈팡질팡하는 목사님과 목사님의 목을 쥔 입심 좋은 장로가 있었고요. 나야 뭐 극단적 원칙론자인 다혈질의 당신에게 은밀하게 기름을 부으면서 늘 한 발짝 뒤에서 숨어 있었지요. 비겁했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당시 나는 교회에서 차비쪼로 몇 푼 던져주는 장학금 신세를 지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늦깎이 대학생이었으니 중립이란 명분 아래 간에 붙었다 쓸게 붙었다 시소를 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선생님도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라 굳게 믿는 현실적인 기회주의자 아니겠습니까.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뭔 얼어 죽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힌 들 어떠하리
나도 이같이 얽혀 백 년 만년까지 누리는 편을 여과 없이 선택했을 겁니다.
하선생님 입장에서야 혀를 찰 노릇이겠지만, 대놓고 말해서 그렇게 옹고집을 피워대며 버팅겨서 무슨 좋은 꼴을 봤습니까. 죄 없는 처자식 고립무원의 객지로 끌고 와서 쫄쫄 굶기기 밖에 더했습니까.
그렇게나 잘 나가던 공무원 생활, 내부고발자로 배신자 낙인이 찍혀 기세 좋게 때려치울 때도 그랬고, 청송 봉화 최상급 고추 수급 받아 질 좋은 우리 농산물 판매할 거라 식당가를 기웃거릴 때 역시 제가 분명히 망할 거라고 쌍수 들고 뜯어말리지 않던가요. 식당에서야 말이 좋아 손님들을 위해 질 좋은 식자재 고집한다고 설레발을 치지만, 십중팔구 개구라라고 그랬잖습니까. 돈 앞에서는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을 텐데, 무슨 용빼는 재주로 중국산의 서너 배나 비싼 최상급 국산 고춧가루를 납품할 수 있을 거냐고 누차 말리지 않던가 말입니다. 망해보니까 그때서야 앗뜨! 싶었지요? 하선생님의 외골수 자기 신념은 그야말로 마이너스의 손이었습니다. 손대는 족족 쪽박을 차고 거덜이 났지요. 간 쓸개 다 빼줘도 살아남을까 말까 한 바닥에서 명분만 그럴싸하다고 누가 알아주기라도 한답디까?
앞뒤 꽉 막힌 양반 월급이라도 따박따박 받아 처자식 고생 좀 그만시키라고 고물상 취직을 시켜줬더니 석 달도 못돼 더러운 꼴 더는 이상 못 보겠다며 튀어나오는 바람에 제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었는지, 기억은 나시지요? 고물상은 계근 장난치는 거랑 고철가격 등락 타이밍을 잘 노려 배팅 치는 걸로 돈을 버는 건데, 저울질 속여가며 더러운 돈 번다고 발끈해서 삿대질을 해버리면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어차피 업체에서도 알면서 적당히 눈감아 주는 사실이고 담당자들 회식 용돈으로 몇 닢씩 찔러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그게 그렇게나 쳐 죽일 만큼의 거대악으로 여겨지던가요. 리어카 힘겹게 끌면서 폐지를 줒어온다든지, 구닥다리 트럭으로 동네 골목 누비면서 고철쪼가리 수거해 온 양반들 등을 치거나 눈속임을 일삼았더라면 하선생님의 공분에 백번 편을 들어줬을 겁니다. 서로 사바사바 해가며 알면서 속아주고, 그래서 또 뒷배도 좀 봐줘가면서 칡넝쿨처럼 어우렁더우렁 뒤엉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 아니겠습니까. 초록은 동색이라고 세상이 온통 동색 칠갑인데 나 홀로 독야청청해본들 엇따 쓰겠냐고요. 그 잘난 '나 홀로 정의'가 밥 멕여 주던가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하선생님 생각만 하면 제 숨통이 막혀 언성이 자꾸만 높아집니다.
마음이 좀 누그러지면 글을 이어야겠습니다.
그는 실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