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의 노래는 언제나 끝을 맺지 못했다. 대충 흥얼거리는 노랫말, 그나마 가사도 엉망이고 불쑥불쑥 끊겼다가 뜬금없이 뒷소절이 앞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가슴 도려내는 엄니의 노래라고는 애오라지 동백아가씨 하나뿐이었다.
좁디좁은 부엌의 구공탄 아궁이에 쪼그려 앉아 수제비를 뜯어 넣을 때도, 카바이드 불꽃이 일렁이는 매퀘한 포장마차의 화덕 앞에서도 타들어가는 곰장어의 몸무림처럼 멍이 든 동백꽃 가사는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억장이 무너지거나 울다 지친 날에는 라르고, 그것도 지독히 느린 박자의 죽죽 늘어진 가락이 되었다. 아주 아주 드물게 제법 경쾌한 동백아가씨가 읊조려지기도 했지만 결코 찾아옵니다 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엄니의 동백꽃은 언제나 뻘겋게 멍이 든 채 고작 두 소절 안에서만 되돌이표로 반복될 뿐이었다.
엄니가 지나간 걸음마다 송이 째 떨어진 동백꽃이 세월을 눅이며 딱지처럼 엉겨 붙었다. 그 멍울진 꽃길을 즈려밟고 또 다른 인생들이 나아갔다.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 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이미자, '동백아가씨' 가사)
노래 좀 가르쳐 달라면서 쑥 내민 노래가 '슬픈 계절에 만나요'였다.
누리끼리한 갱지에 잘 보이라고 시꺼먼 색의 싸인펜으로 가사를 꾹꾹 눌러 적었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글자를 빼곡히 채웠어도 칸이 부족했던 종이를 받아 든 엄니는 사뭇 진지한 학생이었다. 어린 아들은 선창을 하고, 가사 적힌 종이를 든 엄니는 열심히 이별의 노래를 뭐가 그렇게 좋은 거라고 또박또박 따라 불렀다. 마침내 이미자가 버림을 받는 순간이었다.
엄니는 한 소절씩 따라는 곧잘 불렀지만 도통 가사를 외우 지를 못했다. 두 소절만 넘어가면 깜깜이가 되어 버벅거리거나 가사가 뒤죽박죽으로 꼬여버렸다.
아, 쫌!
미안타, 다시 해보자.
어린 자식 놈에게 면박을 당하면서까지 매달려야 했던 슬픈 계절은 엄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불과 두 소절을 넘기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오는 엄니의 노래는 바람소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고마 치아뿌라. 보고도 못 따라 부리나.
어린 자식 놈의 패악질에 착한 학생이었던 엄니의 얼굴이 일순 벌겋게 달아오르나 싶더니 곧 주섬주섬 객쩍은 얼굴의 옅은 미소를 띠었다.
보고도 따라 못 부르나. 보고도...
엄니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들리기만 할 뿐, 갱지에 불과한 휴지조가리를 들고서 따라 부르는 흉내만 내고 있었던 엄니였다.
엄니가 삐뚤빼뚤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숫자 몇 개 떨어뜨린 거 외에는 글자를 쓰거나 읽는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다. 읽어도 어눌하게 몇 자 띄엄거리며 읽었던 게 다였을 뿐인데, 돌머리라고 야단치기에 바빴던 어린 자식 놈은 까맣게 놓치고 말았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가슴 깊이 파고드는데
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에 스쳐가는 바람소리뿐.
바람결에 보일 것 같아 그의 모습 기다렸지만
남기고 간 뒹구는 낙엽에 난 그만 울어버렸네.
엄니의 '슬픈 계절에 만나요'는 여기서 멈춰 서고 말았다. 동백꽃을 대신한 엄니의 슬픈 계절은 오래오래 입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영원한 미완성인 곡으로.
사랑인 줄은 알았지만 헤어질 줄 몰랐어요.
나 이렇게도 슬픈 노래를 간직할 줄 몰랐어요.
내 마음의 고향을 따라 병든 가슴 지워버리고
슬픈 계절에 우리 만나요 해맑은 모습으로.
(백영규, '슬픈 계절에 만나요'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