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 아래의 세상은 손 가는 대로 쓱쓱 환칠 한 도화지 같습니다. 파리한 불꽃이 몸을 뒤틀어도 흔들리는 것은 정작 자신일 뿐입니다.
등불이란 게 도시 매가리도 없고 춤을 추는 건지 비틀거리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호롱불 앞에서의 어둠은 여전히 감실감실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촛불을 밝힙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너무 환하고 시끄러워 가끔은 빛을 몰아내버립니다. 빛은 번잡한 소리들까지 덩달아 끌고 가버립니다. 고요, 어둠, 세상과의 단절이 쉼표가 있는 풍경 속으로 소복이 내려 쌓입니다.
촛불의 조도는 한 5촉쯤 될는지, 가시의 한계점인 건 분명합니다. 제 빛조차 가누지 못해 팔랑대니까 말입니다.
엄니의 포장마차에는 5촉짜리 카바이드 등이 있었습니다. 촛불이랑 다를 게 없는 밝기였지만 참으로 모진 녀석이었습니다. 바람 앞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독하게 불꽃을 지켜냈습니다. 고약한 연기를 게어내면서 맹렬하게 버텼더랬습니다.
칼슘카바이드가 물과 반응하면 발화성 가스인 아세틸렌을 토해냅니다. 하얀 카바이드 조각은 물에 닿기가 무섭게 미친 듯이 끓어오르며 거품들을 마구 쏟아 냅니다.
터진 물방울에서 빠져나온 연기는 곧 불꽃으로 산화가 되어 엄니 포장마차의 마수걸이 손님이 되었습니다.
호떡을 굽는 포장마차가 그랬고, 꼼장어랑 막걸리 쐬주를 파는 삼일상가 뒤편의 포장마차가 그랬습니다.
엄니는 평생을 5촉짜리 칼슘카바이드 아세틸렌가스 불빛에서 한 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다행입니다. 밝으면, 너무 밝으면 보지 않아 더 좋을 일들이 다 드러나 버리니까요.
엄니의 포장마차는 형체만 겨우 분간할 수 있는 간당거리는 카바이드 불꽃, 아세틸렌 냄새와 함께 모태 위의 꼼장어가 몸을 태우는 냄새가 늘 뒤엉킨 채 끈적였습니다. 지독했습니다. 매퀘한 연기로 둘러싸인 어둑한 포장마차에는 늘 화가 난 취객들이 제 할 말만 하느라 시끄러웠습니다. 엄니는 주정으로 떠들어대는 소음이 되려 고마웠던 모양입니다. 콜록대면서도 아짐, 여 쏘주 주고 어갈비나 좀 궈 주소 그러면 예하는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카바이드의 아슬한 불꽃은 사연 많은 인생들을 적당히 감춰주고 뻔한 허세를 용인했습니다. 당연히 예하는 목소리와는 달리 주름 골골이 어둠이 내린 엄니의 표정도 숨겨주었습니다. 모두는 알았습니다. 푸념, 억울함, 절망이 희석되는 곳, 카바이드 불꽃만 일렁이는 엄니의 포장마차에서는 일상의 풍경이었습니다.
나는 불빛 트라우마가 깊은 흉터로 남아있습니다.
어디서건 불빛이 보여야 합니다. 밝기와는 무관하게 사방이 깜깜하면 마치 목이 졸리는 듯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설마 다 죽어 버렸나, 몰래 약이라도 마셔버렸나 생각하며 치를 떨었던 어린날의 기억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카바이드 불꽃이 형편없이 초라한 빛으로 흔들거렸음에도 세상 어떤 빛보다 따뜻했던 이유는 엄니나 어린 나나 꼭 같았을 겁니다.
어둠도, 밝음도 다 무서웠습니다.
5촉에도 미치지 못하는 꺼지지 않는 희미한 불꽃, 어머니의 젊은 날을 실은 포장마차는 흔들릴 망정 스러지지 않았던 카바이트 불꽃놀이가 오랫동안 계속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