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부추 꽃
보면 볼수록 기특하면서도 신통방통한 녀석이 내 밭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퍼석한 식감과 끈적한 진액으로 인해 그 누구에게 나눔을 해도 푸대접만 받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몇 번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같은 자리에서 끝내 살아남았다.
귀촌과 동시에 두 종의 식물에게 새 땅을 안겨주었다.
척박한 울릉도민의 생명을 지켜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명이, 곧 산마늘이다. 고작 1년만 내 땅의 냄새를 맡고는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잎사귀 달랑 세 장. 그것도 광합성을 위해 최소한의 엽수를 남겨두면 고작 한 장의 잎사귀만 채취할 수 있는 데다, 실오라기 같이 빈약한 잎새를 제구실할 정도로 만들려면 최소 삼 년 이상이 걸린다. 무슨 인삼을 재배하는 것도 아니고, 몸 값에 비한다면 자리값도 나오지 않는 작물의 운명은 하나였다.
'부추', 세 가지 맛이 난다는 '삼채', 그리고 야생에서는 채취 금지 품목으로 지정된 보호종, 깊은 심산유곡에서 자란다 해서 얻은 이름 '두메부추', 이 세 종류의 부추과 작물 중에 결국 작년에 삼채가 퇴출이 되고 말았다.
부추야 워낙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기 때문에, 삼채는 까탈스러운 내 입맛에 잘 맞는다는 이유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어오다 결국 작년에서야 인연을 끝냈지만, '두메부추'는 생뚱맞게 무슨 연줄로 인해 끈질기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얼마 전 나눔 모임 때 발에 걷어 차인 두메부추 한 무더기가 몇 날 며칠을 뿌리를 하늘로 향한 채 배를 뒤집고 있다. 근 한 달을 물 한 모금 구경조차 못하면서도 나 죽네 하며 살아있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이미 그런 믿음을 충분히 준 당당한 녀석이다.
한겨울 살을 에는 삭풍한설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당차게 맞서는 식물이 얼마나 있을까?
다들 깊이, 더 깊이 꼬랑지를 말며 파고들 때, 두메부추 이 경이로운 생명체는 오히려 보란 듯이 반대로 뿌리를 주저 없이 한겨울에 맞서 추켜올린다. 한 발짝도 물러 설 기미 없이 맞서 싸운다. 맹추위가 극성을 부리든 말든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당당한 기세로 옹골차게 떡 버텨낸다. 단 한 번도 푸르름이 시드는 경우는 없다. 용맹한 전사다.
억수장마가 들든, 극심한 가뭄으로 대지가 다 갈라 터지건 말건, 혹한 혹서를 꿋꿋이 다 버텨낸다.
경이롭지 않은 생명체가 어디에 있을까만, '두메부추'는 아예 격이 다르다.
당찬 저항과 불굴의 생명력이 안겨준 벅찬 감동.
두메부추는 나의 농장에서도 비록 천덕꾸러기 신세지만 당당히 살아남았다.
낫을 든 농부의 손길은 저승사자의 서슬보다 냉정하고 잔인하다. 전사는 농부마저 돌려세웠다.
곧 겨울이 온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시들고 사라지고 몸을 사리며 한겨울의 맹공에 주눅이 들어 깊이깊이 뿌리들을 숨길 것이다.
나의 두메부추야.
당당함을 드러내라.
다시 한번 위대한 저항을 보여라.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법.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나는 기억한다.
한겨울을 뚫고 불굴의 기세로 일어서는
이 땅의 이름 없는 민초들과
감격스러운 나의 두메부추를!
맞서라!
또, 맞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