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 학년 중퇴.
공식적 학벌은 중졸이다.
어린 날에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중졸이라는 초라한 훈장을 달아주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 까지는 어림잡아 10분 가량의 거리. 섬처럼 뎅그렁이 떠있는 동네의 밤은 점점이 박힌 불빛들이 이정표가 됐다. 다들 돌아갈 자리가 있었다. 누군가의 기다림, 발 뻗을 쉼이 빛 속에 녹아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따뜻이 맞아주는 기다림도 잠시 내려놓을 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빛이 있어서 따라가는 걸음이 아니었다.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걷는 10분 내내 다리는 공중에 떠있는 듯 후들거리고 숨통은 턱턱 막힌다.
다 같이 자살을 해버렸나? 머릿속은 하얗게 연소되어 버렸다.
고3 소년이 감당한 극단의 삶의 무게는, 불빛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을 따라붙은 껌딱지가 되었다.
"행님아, 내 담배 좀 피워도 되겠나?"
이미 알고 있었다. 17세 중졸 가스배달부 동생의 흡연 사실을.
"내가 일 마치고 와 맨날 12시나 돼서 집에 들어가는 줄 아나?"
병든 아버지를 어거지로 병원에 맡긴 날,
담배에 불을 붙인 동생이 머리를 푹 처박은 채 독백처럼 물었다. 잘 안다. 하지만, 차마 대답을 못했다, 아니, 할 자신이 없었다.
가스통에 발이 찍혀 시커멓게 멍이 든 동생을 애써 피한 이유와 같다. 그냥 미안했다.
좀 더 큰 형이란 놈은 고등학교 졸업장만큼이라도 따야 한다고 학교로 내몰리고, 열일곱의 어린 동생이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몫을 다 떠안은 것이다. 아직은 응석이나 부릴 앳된 동생의 어깨에 몸집만 한 가스통이 매달렸다. 밤낮도 모르는 암울함도 같이 엉겨 붙었다.
말기 암과 동거하던 아버지가 병원비를 떼어먹고 환자복 차림으로 담장을 넘어 야반도주를 했다. 00병원의 소유물이라는 압류딱지 같은 글씨가 박힌 퍼런 슬리퍼를 끌고서말이다.
그날 우리는 많이도 울었다.
고등학교 졸업장 일련번호의 끝에 이름 석자를 올렸다. 늘 맨 끝점은 내 차지였다.
밀린 학비를 내지 않아 졸업이 안된다는 청천벽력의 통보. 먹고 죽을 돈조차 없는데... 병든 아버지는 죽음을 각오하고서 병원에서 야반도주까지 했는데, 참담한 현실 앞에 한숨조차 메말라버렸다.
협소한 5층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는 동생의 벅찬 삶을 저당 잡아끌고 온 학교 생활이 밀린 학비 앞에서 맥없이 고꾸라질 판이었다. 남들에게는 탄탄한 평지길이, 내겐 피 맛을 본 이리떼가 드글거리는 광야길이었다.
중동에 돈 벌러 갔던 사촌 형님이 애지중지 아끼던 녹음기를 팔아 졸업식 이틀 전 극적으로 졸업장을 '샀다'. 공식적 고졸이 되는 순간이었다.
"미안하다, 대학도 못 보내고..."
이모와 마주 앉은 어머니는 눈물로 말꼬리를 흘렸다.
"괜찮습니더. 지금 까지 우리 안 버린 것 만도 고맙심더."
한 사람의 환자는 집안을 거덜내고 여러 명의 삶을 송두리째 헝클어 놓았다. 불가항력이지만, 어쨌든 그랬다.
첫 월급.
초등학교 서사 보조로 일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 목을 옥죄는 침울한 분위기에서 멀리, 아주 멀리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먹고 재워 준다는 조건 하나에 훌쩍 집을 떠나 당구장 볼보이로 주저앉았다.
삼시 세끼 그 흔해빠진 달걀 하나 구경 못하고 맹탕 국물만 흥건한 라면 외에는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잠은 당구장 한켠에 개별 의자 세 개를 붙여놓고 쪽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면 뼈마디마디 안 아픈 곳이라곤 없었다.
쿤타킨테였다. 피부색만 다른.
'김 군 월급'.
하얀 편지 봉투에 담긴 생의 첫 월급, 이 얇은 봉투 하나를 가지기 위해 19년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피 같은 돈이 만 원권으로 10만 원이나 숨겨져 있었다. 10만 원이면 병든 아버지와 수발하는 어머니를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 돈이다. 노예의 대가는 내 가족의 생명값이었다.
2층 당구장 아래의 은행으로 향했다. 난생처음으로, 들락거리는 수없이 많은 고객 중의 한 명이 된 날이었다.
첫 월급, 그 기념비적인 첫 월급을 창구에 들러 몽땅 1,000원권으로 환전을 했다. 갑자기 부자가 됐다. 무게가, 부피가 다르지 않은가. 한 다발씩 주머니란 주머니에 꾹꾹 다 쟁겨넣었다. 자나 깨나 염불처럼 뇌까리던 어머니의 돈 돈 타령, 역시나 돈은 좋은 거였다.
어머니 빨간 내복을 사야지.
고생하는 동생, 동생에게는...그래, 기타를 사주자. 미안하고 고마운 내 동생이 외로울 때 뚱땅거리게 기타를 사줘야지!
첫 월급의 인연이었는지, 늘 미안하고 고마운 내 동생은 머지않은 날에 나이트클럽 밴드 기타 맨이 되었다.
삶의 무게를 홀로 버텨낸 내 동생.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