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미자연인 돌쇠 아재는 태반의 사람들이 가지는 '명함'이란 게 없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넓은 '화장실'을 가지고 있다.
폰 커버에 딸린 포켓에서 뭔가 후드득 토해져 나와 아스팔트 위에 들이 붙었다. 신용카드인가 싶어 잽싸게 집어 들려는 순간, 사방이 날카로운 날로 곤두세워진 '명함'이란걸 알았다.
누굴까?
어떤 이가 건네준 비공인 신분증일까? 암만 더듬어도 딱히 공유할만한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보면 대충 기억이야 날 테지만 탁 하고 스쳐가는 정보가 없다.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손바닥 보다 작은 종이쪼가리 안에 붙들려있던 낯선 이름이 놓아달라고 보챈다.
친한 지인 간에는 얼굴이, 목소리가, 함께 깔깔대던 순간순간들이 명함이다. 거기에 뭐가 더 필요할까.
명함의 첫머리, 이름 앞에 버티고 서서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드러내는 직함이 정작 본인의 이름보다 크게 와닿는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고 암암리에 강요하는 듯하다. 삐까번쩍한 타이틀이 앞섰으니 머리를 조아리고 알아서 기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때론 봉건시대 계급을 규정해 둔 신분증명서 같게도 느껴진다. 정작 내게 필요한 정보는 이름 석자, 연락처 정도면 충분히 족한데 말이다.
어쩌다 건네받은 명함이 턱도 아니게 무거운 경우가 종종 있다. 앞뒤로 빼곡히 채워진 활자들이 '나 이런 사람이야'를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참으로 피곤한 양반이다.
아스팔트에서 뜯겨 나온 명함은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얇아져가는 건 지갑만이 아니다. 반추할 기억들과 명함첩이 동시에 삶으로부터 점차 얇아지고 있다.
포켓으로부터 풀려난 명함 덕분인지, 도서관으로 향하는 돌쇠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