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로 보이냐는 질문에 케이블 타이라고 답했다가 주삿바늘 같다고 자신 없이 대답을 흐렸다. 혹 답을 맞혔나 슬쩍 흘겨보다 눈길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 찰라같은 순간에도 상대의 표정이나 눈빛에서 적어도 예닐곱은 족히 넘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놀라웠다. 말보다 내밀하고 깊은 표현은 단연 눈빛이란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던 와중에도 피차간의 중간 어디쯤에 끼어버린 어색함을 견디기에는 일 이초도 아득하기만 했다.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님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질문 뒤에 줄줄이 끌려 나올 서사, 싱겁건 심오하건 스치는 눈빛 하나로써 가늠이 충분했다.
볼펜심 다발이라고 했다.
교원 임용 시험을 치른 딸아이가 합격 통지와 함께 다 닳은 볼펜심 사진을 제 아비에게로 보내온 것이다. 자기 최면과 투쟁의 끝에서 당당히 월계관을 썼노라 선포하는 승자의 함성이 분명했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음은 국가가 승인을 한 셈이다. 훨씬 많은 청춘들을 나락에 빠뜨리고 니가 못난 탓이라고 슬며시 발뼘을 하는 잔인한 이중성을 깔고서 말이다.
엉덩이가 짓무르고 손가락에 멍울이 질 만큼 처절했던 시간들이 있었음을 기억해 달라는 응석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억해야 한다. 아쉽고, 억울하고 비탄에 빠져 스스로를 쥐어뜯으며 조명 꺼진 뒤안길에 쪼그리고 앉은 청춘들 까지도.
고사장으로 뛰어가는 여덟 살의 어린 딸을 보았다고 했다. 제 몸만 한 가방을 들쳐업은 어린 딸이 어느 틈에 지 애미만큼이나 키를 더한 채 고사장의 문으로 향하는 걸음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뚝뚝 떨어지고 있더라는 말이 아련한 고동소리처럼 들렸다.
힘내라, 이 땅의 지치고 수고로운 젊은 청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