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철든다'는기 어떤 거라고 생각 하노?"
"....."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난 놈인 줄 알았거든. 근데, 세상에는 나 보다 잘난 놈이 수두룩 하게 많더라꼬. 이제서야 철드는 갑제?"
벌겋게 달아오른 모테 위의 꼼장어가 매퀘한 연기 속에서 토막 난 몸뚱아리를 심하게 비틀어댔다. 주인장은 매사가 따분한 듯 시종 건조한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소주 두 병에 혀가 꼬부라져 언성이 올라간 스물 중반의 청년 셋이 두 시간째 희뿌연한 담배연기에 갇혀있다.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새파란 것들이 뭔 놈의 세상을 안다고....고등어 대가리를 잘라냈던 칼을 물에 대충 담궜다 휘휘 건져 올리며 나즈막이 읊조렸다.
해거름에, 삐걱이는 포장마차를 열다섯 난 큰 놈이 앞에서 연신 구시렁대면서 끌어당겼다. 열두 살 난 둘째 놈은 멀찌감치 뒤처진 걸음으로 꾸역꾸역 따라붙기는 했지만, 심사가 꼬였는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꺾어 신은 운동화에서 비명이 들렸다.
" 빨랑 안 오나, 새끼야!"
"와 내한테 지랄인데! 쪽 팔려 죽겠는데!"
"마, 둘 다 주디 안 닥치나!"
포장마차 뒤편에 매달린 애미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큰 놈이 놀랐는지 육중한 포장마차가 움찔거렸다.
"벌교댁이, 소문 들었나?"
머리가 희끗한 함안댁이 천막 귀퉁이로 머리만 들이민 채 나지막이 물었다. 수심 그득한 얼굴이 흰머리칼 탓인지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무신?"
"이번에 시에서 포장마차 타운을 맹글어서 싸그리 이동을 시킬 거라네? 도시 미관에 안 좋다고 상가에서 민원을 자꾸 넣어가지고..."
벌교댁은 벼락 맞은 사람처럼 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라리 단속반한테 쫓기고 벌금을 무는 편이 낫지, 자리 다 잡힌 여기서 옮기면 도대체 어디로 옮긴다는 말이며, 세월이 다져온 단골들은 또 다 어떡하란 말인가.
한 고개 깔딱 넘어서면 또 막다른 골목. 이 썩을 놈의 팔자, 지겹다 지겨워.
취기 오른 손님들은 죽일 놈의 세상을, 벌교댁은 더 살고 싶지 않은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사흘째 도시는 회색을 띤 비에 젖었다.
"어, 김 군 이제 마쳤는갑지?"
벌교댁은 고개도 들지 않고 눈을 찔러대는 매운 숯불연기에 자지러지듯 콜록이며 인사를 건넸다. 가스 배달하는 김 군이 온 걸 봐서는 열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따끈한 촌국수와 소주 한 병을 말없이 올려놓았다. 덩치 좋은 녀석들 조차 사흘이 멀다 하고 도망치는 힘든 가스 배달일을 스물도 채 안 돼 보이는 김 군은 일 년이 넘도록 신보를 하고 있다. 자식 같은 김 군에게 벌교댁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촌국수 한 줌 더 올려주는 게 다였다.
제 말로는 스물하나라는 도로 건너 길다방 홍양은 일찌감시 놈팽이 한놈과 시시덕거리고 있다. 오늘 두 장 끊었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분위기를 봐서는 지금도 티켓을 끊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홍양은 오토바이를 모는 오봉순이라 배달 장부를 채우는 장 수도 많았고, 그만큼 수입도 월등히 좋았다.
쟈는 무슨 어린것이 돈독이 올랐는지 밤낮도 없노. 참 독하게 산다, 살아. 벌교댁은 부러 잔을 소리나게 탁 내려놓았다.
짙은 화장 속에 숨겨진 홍양의 진짜 얼굴을 굳이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빨간 립스틱 보다 더 예쁜 빨강 입술을 가졌는지 모를 일이다. 왜 그렇게 젊은애가 악착같이 돈을 좇는지 역시 알 길은 없었다.
어떤 이는 울고 어떤 이는 멱살 드잡이를 한다. 어떤 이는 한 많은 세상, 또 어떤 이들은 더럽고 아니꼬운 세상이라며 삿대질에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사랑 때문에 울고, 그리움에 지쳐 쓴잔을 비운다.
좁아터진 천막 안에는 대하드라마가 있고, 리얼 다큐가 돌고 도는 레파토리로 재생된다.
어제와 오늘이 뒤섞이고, 철학과 문학, 노래가 함께 버무려진다. 고작, 2평 남짓한 공간 안에서 말이다.
짙은 담배연기 사이로 많고 많은 사연들이 흘러가는 이곳,
사람들은 '포장마차'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