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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는 바람에 날리고...

by 김석철

어머니는...'쥐'였다.



어머니는 고작 스무 개 남짓한 계단을 끝내 넘어서지를 못했다.

내디뎌야 할 스무 번의 발자국은 단 하나의 디딤판도 밟아보지 못한 채 계단판에 소복이 뭉쳐져 있었다. 자식과의 1층 높이 간격이 돌려세운 뒷모습,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어렵사리 걸음 한 어머니의 뒤꿈치를 집요하게 물어뜯었던 것이다.


어둑하고 꿉꿉한 지하 계단을 내려서기가 무섭게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 엉겨붙었다

수 없이 지나쳤던 골목길에 이런 다방이 있었나. 그나저나 이 시간에 옴마가 우짠 일이지? 집에 또 뭔 일이라도 생겼나...


"김 군아, 전화 받아봐라. 엄마란다."


"내다. 요 밑 사거리 골목 지하에 다방이 있네. 고리로 잠깐 나올 수 있겄나?"

심장에서 쿵 소리가 났다. 온몸의 피가 발 끝으로 쏠렸는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땅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삼만리나 떨어진 깊은 땅 속 으슥진 다방의 구석 자리에 접혀 있었다. 마치, 사나운 고양이의 앞 발에 놀아나는 겁먹은 새앙쥐 같았다.

어머니가 짊어진 현실은 그렇게나 잔인했던 것이다.


어색한 침묵이 모자간의 사이를 기약 없이 갈랐다. 마냥 식어가는 커피잔, 갈 길 잃은 모자의 시선은 찻잔의 심연으로 깊이깊이 가라앉았다.


" 우짜노.자꾸 이런 부탁해서..."

을의 자리에 구겨지듯 웅크린 어머니의 커피잔이 딸그락 소리를 지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헛배만 불리면서 목구멍을 타고 넘는 커피는 한 끼의 땟거리였다. 타는 목마름, 사약일지라도 마셔야 했다.

아들은 한 뼘 앞에 마주 앉은 어머니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끌고 온 현실이 애써 외면하며 근근이 버티던 자신을 무너뜨릴 것만 같아 괜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우째, 가불이라도 좀 안되겄나."


구석진 자리를 잡은 것이 어머니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상거지 차림인 여인네가 영업에 껄끄러운 부담이 된 레지의 판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초라한 몰골의 어머니와, 소금이라도 뿌릴 눈치인 마담의 암묵적 합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배곯는 사람의 겨울은 더더욱 춥고 가혹하다. 아무리 위장을 채워도 허기는 가시지가 않는다. 추위와 배고픔은 비단 몸뚱아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웠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더 추웠다.


얇디얇은 스카프를 몇 겹이나 둘러 쓴 어머니.

변변한 외투 하나가 없어서...

가뜩이나 왜소한 몸뚱이가,

입고 입고, 또 겹쳐 입은 옷 때문에

똥그랗게 똥그랗게

굴러다녔다.


구석으로 내몰린 어머니는 오들오들 떨면서, 당구장 볼보이 신세인 열아홉 어린 아들 앞에서 구걸을 했다. 빌었다.


병든 아버지를 등에 업은 내 어머니는,

세상이 한없이 무서운

한 마리의, '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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