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둘 동갑내기 부부의 성장 이야기
1. 생산적으로 화를 내는 법, 심리 상담
남편과 나는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사님은 부부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었는데 맨 처음 상담은 남편과 둘이서 함께 했고 그다음 상담부터는 각각 개인 상담으로 이어졌다.
나는 상담을 통해 그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나의 답답한 마음을 토해냈다. 나이 서른둘에 별안간 암환자가 된 낯선 나를 마주하게 된 나의 심정은 참담했다. 암으로 포기했던 임상 레지던시의 꿈, 나의 보호자이지만 보호자 같지 않은 철없는 남편, 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딸 앞에서 담배와 술을 하는 답답한 위암 생존자 아빠, 어릴 적 상처를 많이 받았던 부모님 간의 갈등에 또다시 휘말려버린 답답함, 나에게 암을 준 세상과 신을 향한 원망, 그리고 감사할 이유가 충분히 많은데도 감사함이 느껴지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사실 한동안은 상담사가 하는 그 어떤 말도 마음속에 와닿지 않았다. 몇 번의 상담으로 나아질 정도로 내 상처는 그렇게 얕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자꾸만 나의 불행사를 늘여놓다 보면 내 신세가 처량해져서 더 불행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계속하려 했던 것은 지금 이 감정들을 토해내지 않으면 그동안 억압된 감정들이 뾰족한 칼날이 되어 나를 계속 찌를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또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몇 달간 따로 살게 되면서 부부 같지 않은 관계로 변화하고 있던 우리 부부관계를 다시금 돌아볼 계기가 필요했다.
20대 초에 폭식증이 심했을 때 상담이 주는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 덕택에 나는 이번에도 상담이 가져다 줄 긍정적인 치유의 힘을 믿었다. 잘못이 없는 선한 이들에게 아픈 일을 겪게 하는 이 빌어먹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상담으로 나의 감정들을 토해내면서 다시금 나를 돌아보고 나의 분노를 올바르게 승화시켜 자아를 성장시키는 기회로 만들고자 했다.
2. 부부 독립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남편에게 서운했던 이유를 꺼내어보았다. 암 환자인 나보다 시부모님을 보호하려고 한국에 온 것 같은 남편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보호자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상담사는 남편이 본가와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부부 관계에 큰 갈등을 주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나와 남편 둘 다 해외 살이를 하는 특성상 부모님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같다. 하지만 남편이 이번에 한국으로 온 목적은 와이프인 나의 치료에 보호자로 온 것이었다. 상담사는 6개월 정도 길게 지내게 된 이번 한국 생활동안에는 부부끼리 같이 지내는 것이 옳은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남편도 동의했고 우리 부부는 숙소를 구해서 둘이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일상을 남편과 대부분 같이 지내다 보니 소통이 더 매끄러워졌다. 부부 상담도 받으면서 우리 부부는 어떤 결정이든 부부가 우선이라는 점에 크게 유의하며 서로의 감정을 소통하고 결정을 내렸다. 남편과 나는 한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버럭 화를 낸 아빠한테는 암 환자가 되고 화가 많아졌는데 아빠한테 화풀이를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드렸다. 아빠는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며 본인도 겪었던 감정이라는 듯이 괜찮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집을 나가 살겠다는 것이 조금 걱정되지만 나의 곁에 남편이 있으니 참 다행이고 나의 복이라면서 안심된다고도 하셨다. 친정어머니는 부부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는 것이 걱정되었다면서 돈은 더 들겠지만 한국에 몇 달 동안 지내게 된 이상 본가와 친정을 분리해서 지내기로 한 것은 잘 생각했다고 하셨다.
반면에 시부모님은 본가에 빈 방이 두 개나 있는데 내가 친정이 불편하면 여기서 지내면 될 것을 왜 힘들게 번 미국 달러를 한국 숙소비에 쓰냐며 못 마땅해하셨다. 또한 아들이 상담을 하면서 느끼게 된 것들을 전혀 공유하지 않은 상태로 후딱 짐을 싸서 나가버려서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서운함 또한 크셨던 것 같다.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분리해야 하는 것을 말씀드리기 어렵고 죄송해서 감정 대화를 잘하지 못했고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아들이 집 나가겠다며 통보만 알렸으니 백번 서운해하실 일인 것이다.
시부모님의 서운함에 공감하고 죄송했던 나는 남편에게 소통교육을 시켰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연습시켜서 남편이 부모님과의 감정 대화를 할 수 있게 물꼬를 틀어주게 된 셈이다. 남편이 건넨 감정 대화에 시부모님도 서운함을 토하셨고 결혼한 우리 부부에게 원가족으로부터 분리가 필요하다는 상담사의 조언에 공감한 우리가 내린 독립 결정을 더 자세히 설명드렸다.
생각해 보니 우리 부부는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해 양가 가족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뤘음을 실감하지 못한 게 큰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에 오래 머물게 된 이 참에 한국에서의 결혼식을 올려 모두에게 우리의 새 출발을 선언하고 싶었다.
3. 이 와중에 결혼 준비를 한다고?
두 번의 난자 동결 시도를 끝마치고 나는 타목시펜이라는 호르몬제 복용과 난자 억제 주사를 시작하였고 그 쯤부터 우리의 결혼식 준비도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대다수 인원이 모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소수 인원이 모여서 하는 작은 결혼식이 다시 허용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결혼식장 예약은 어렵지 않았다. 이듬해 5월에 한 성당에서 토요일 황금 시간대에 결혼식을 잘 예약했다.
결혼식 준비는 결정할 것도 참 많았지만 재미있었다. 가장 저렴한 웨딩 패키지를 구매하였는데 혹시 후회할까 봐 생략하는 것 없이 골고루 다 선택했다. 수많은 결정들을 내려야 했는데 유방암 진단 후 내려야 했던 고통스러운 결정들에 비하면 참 행복한 결정들이었다.
양가 어머님의 한복 고르기, 나와 남편의 한복 맞추기, 웨딩 촬영용 턱시도와 드레스 고르기, 웨딩 촬영 업체 고르기, 액자 디자인 고르기, 본식 턱시도와 드레스 고르기, 본식 촬영 업체 고르기, 혼배 미사에 쓸 꽃 장식 고르기, 하객들 점심 식사 캐터링 업체 결정하기, 식사 메뉴 결정하기, 혼배 미사 집전할 신부님 섭외하기, 사진 촬영 업체 선정하기, 청첩장 디자인과 문구 고르기, 예상 하객 수 추려보기…
이렇게 여러 가지 결정들을 하고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꼭 행복하고 평범한 결혼식에 아름다운 신부가 될 수 있길 바랐다. 이 모든 계획들은 나의 암 치료가 잘 진행되고 내가 건강을 회복하면 가능한 일이었으니 당연히 내년쯤에는 건강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게 있어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세상에게 “세상아! 나 암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 거야!”라고 큰소리치며 저지른 내 나름의 제2의 인생 데뷔무대였다.
유방암 환자로 큰 수술을 했지만 사실 몸의 상처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제 마음의 상처였던 것 같습니다. 계획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상실감과 서른둘의 나이에 암 환자가 되었다는 두려움… 이 감정들은 오롯이 저의 몫이었고 보호자로 온 남편은 저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야속했습니다.
다행히도 저희 부부가 시도한 부부 상담은 저희 부부의 문제점들을 파악하여 갈등을 해소하고 결속력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희 둘 다 제삼자인 상담사에게는 눈치 보지 않고 다 털어놓을 수 있었거든요. 그 어떤 사람보다 갈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3인칭 시점에서 듣는 저희 부부의 이야기는 많은 깨달음을 주었어요.
부부로서 한 팀을 이루는 과정이 어느 부부나 쉬울 리가 없겠지요? 저희 부부는 결혼 1년 차에 그것도 코로나 19 때문에 가족들과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별안간 저의 암 진단과 치료까지…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덕에 저희 부부 사이가 더 깊어졌네요. 정말 한 팀이 되어가는 수고 많은 남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주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