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까지는 풀타임 약사, 오늘부터는 풀타임 백수?
살다 보니 현실 감각이 사라져 버리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너무 행복할 때, 그리고 두 번째는 너무 끔찍할 때이다. 이번 나의 한국행은 영주권 취득과 레지던시 합격으로 인한 금의환향이었다가 청천벽력 같던 암 진단으로 인해 인생의 최정점에서 최저점으로 떨어졌기에 앞의 두 예시를 모두 겪은 드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임상 약사 레지던시 시작 전에 2개월 동안 휴가를 계획했던 한국 여행은 유방암 수술, 난자 냉동, 방사선 치료, 남편과의 불화, 아빠와의 다툼, 오빠네와의 서운한 일로 인해 정말 현실 같지 않은, 아니 부디 현실이 아니었으면 했던 ‘꿈, 혹은 악몽 같은 휴가’였다.
긴 한국 여정을 마치고 5월의 결혼식 전에 잠시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 부부. 앞으로 뭐를 하며 먹고살아야 하나 통장 잔고를 자꾸 확인했다. 남편은 다행히 레지던시를 마친 직장에 기간제 자리가 생겨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계획이 없다. 아니, 계획을 세울 힘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백수가 되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백수. 미국에서 학생, 또는 직장인으로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이 나라에서 쫓겨날 수 없는 영주권자가 되었고, 또 일상생활은 불편함이 없지만 암이라는 큰 수술을 받은 환자로서 일을 잠시 쉬는 것은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당분간 일을 쉬고 싶다는 나의 말에 남편도 흔쾌히 그동안 영주권 노예로 고생했으니 쉬어도 좋다고 말해주어서 눈치 보지 않고 백수의 삶을 시작했다.
미국에 돌아오고 한 달은 정말 푹 쉬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돈을 벌어오는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씩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일을 했을 때는 급한 집안일만 해치웠기 때문에 생존에 직결되는 청소만 신경 썼지만 이제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남편의 점심 메뉴를 준비했다. 남편 직장은 집에서 10분 거리여서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는데 아침잠 이슈로 아침은 싸주지 못하지만 점심이라도 따뜻하게 먹고 갈 수 있게 차려주었다. 온메밀, 오므라이스, 김밥, 감태 주먹밥, 어묵 가락국수, 새우 완자탕, 샌드위치, 덮밥 요리 등 최대한 겹치지 않는 메뉴를 골라서 만들었다. 물론 남편 퇴근 후 저녁 준비도 대부분 내가 하게 되었다. 밖에서 일하다 온 사람보다 집에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내가 차리는 것이 당연했다. 남편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그날 나의 숙제는 성공한 느낌이었다. 집안일은 요리 말고도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주부가 되니 신경 쓰이지 않던 수납장 맨 위 먼지도 보이고 낡은 옷들도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오랜 유학 생활동안 많이 떠돌아다니면서 많이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맥시멀리스트인 나는 정말 안 쓰는 물건들이 참 많았다. 백수 시절 이때의 나는 정말 많이 비워내고 버렸다.
그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 오로지 휴식에 초점을 맞췄었다. 집안일은 최소한으로 했고 최대한 재충전을 하려 했다. 그랬던 나에게 주부로서 집안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은 명상과 비슷했다. 수납장, 옷장, 서랍 안을 각을 세우고 색색이 맞춰 정리하고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 일을 반복하는 집안일은 내게 수도자의 생활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퇴근 후 나의 노고를 알아차려주면 ‘인정’과 ‘성과’에 고픈 나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 값진 뿌듯함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과거의 내가 직면해야 했던 암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 정리를 하면서 잊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정리를 알아차려주고 인정해 주는 남편이 있어서 참 감사한 주부였다.
2. 서른둘에 얼굴 화끈거리고 잠 못 자는 갱년기라니...
백수로서 일상은 때때로 뿌듯했지만 사실 에스트로겐 억제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대부분의 일상은 짜증 나고 힘들었다. 암세포의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나는 유전적 요인이 거의 해당하지 않는 경우로 선제적 항암 치료는 크게 이익이 없었다. 그래서 암 제거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와 호르몬제 복용만 하게 된 것이었다. 방사선 치료는 8회 정도였어서 크게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루프린이라는 난소 억제 주사와 에스트로겐 억제제인 타목시펜은 꽤 부작용이 있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작용은 화끈 거림이었다.
예상치 못한 때에 천둥과 번개처럼 목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주 뜨거운 용광로가 가슴부터 머리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 뜨거움이 얼굴과 머리에 닿으면 피부가 급격하게 빨개졌다. 갑자기 화끈거림이 올라오면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차가운 물이나 바람에 식히고 싶어졌다. 집에 있을 때는 화끈거림에 대처하는 것이 다소 수월했지만 밖에서는 달랐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콧등과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목과 등에는 순식간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런 화끈거림과 신체의 변화를 참아야 하는 게 창피했다. 내가 아픈 것을 모르는 친구들이나 지인, 또는 낯선 사람들에게 최대한 나의 이야기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화끈거림이 느껴질 때면 나는 얼른 휴지나 손수건, 옷소매로 얼른 땀을 숨겼다.
밤에 자다가 화끈거림이 찾아올 때면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땀이 나고 덮고 있던 이불이 갑자기 너무 더워져서 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 잠이 많은 사람이다. 학교 다닐 때 시험 전 공부를 할 때면 졸음 때문에 공부를 원하는 만큼 못한 적이 많았다. 알람이 안 울리는 주말이면 10시간씩 자는 것은 기본이고 일정만 없다면 낮잠도 1시간씩 잘 자고도 밤에 잠이 잘 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불면증은 괴로웠다. 혼자 잠을 못 자고 깨어있는 밤이면 온갖 생각이 많아져서 온갖 부정적인 내면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밤에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다음날 하루가 아예 망가졌다. 졸리고 피곤해서 잘 집중도 안 됐다. 정작 암은 내 몸에서 사라졌다고 하는데 나의 마음에는 암 같은 우울감이 오히려 자라고 있었다.
서른둘의 나이에 갱년기를 겪게 된 것이다.
3. 우울한 소비요정의 탄생
남편이 일한 직장은 보건소와 비슷한 치과였는데 남편이 버는 월급으로 집세를 내고 최소한의 연금 저축을 하고 생활비를 해결하기에도 빠듯한 적이 많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결혼 전까지는 내가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 인지한 적이 없다. 월급이 들어오면 반은 저금을 하고 나머지 반은 내가 다 쓰는 정도였다. 그 저금은 한국에 갈 때 현금으로 찾아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도 했고 종종 갖고 싶은 물건들이 있을 때 소비했다. 투자는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몰랐고 큰 목돈이 모여도 혹시 써야 할까 봐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입출금이 자유로운 계좌에 넣어두었다. 그 저축 덕분에 한국에서의 병원비와 결혼 준비 비용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 마저도 거의 바닥이 나서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남편은 작은 소비도 허투루 하지 않는 경향의 사람이고 미니멀리스트다. 반면에 나는 욕심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자주 생겨서 소비 유혹이 많이 찾아오고 그 유혹을 떨치기가 자주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 반대 성향인 데다가 백수가 돼버린 나는 더욱더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근무 시간이 길 때는 돈 버느라 돈을 쓸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지만 백수가 된 나에게 남아도는 것은 에너지와 시간이지 않은가. 물건을 사면 남편이 뭐라 하기 전에 이 물건이 필요한 그럴싸한 이유를 설명하며 이 물건의 당위성을 남편에게 설득했다. 필요는 없지만 갖고 싶은 물건을 샀을 경우에는 오랜 기간 고민하고 심사 숙고한 것을 남편에게 설명했다.
남편은 내가 불필요한 물건에 돈을 소비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갖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세상이 어디 있겠냐며 지금 나의 소비가 분수에 맞지 않는다며 나를 다그쳤다. 나의 소비 중에서 남편이 인정할 것 같은 소비는 남편 월급으로 샀고 남편이 인정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은 눈치가 보여 내가 결혼 전 모아둔 저축 통장에서 썼다. 지금 백수 주제에 불필요한 소비를 하면 안 된다고 억누르려고 하다 보니 더 소비욕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암세포처럼 점점 자라났던 자기 파괴적 소비욕구의 시작.
4. 감정적 쇼핑을 줄이고 싶다면 HALT를 피해보자
내가 소비하는 물건의 종류는 다양했는데 대부분은 옷부터 그릇, 인테리어 제품들이었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것들도 있었지만 드라마,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보고 구매 자극을 받은 물건들도 많았다. 꽂히는 물건이 생기면 그 물건이 하루 종일 생각나서 구매 버튼을 클릭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괴로움은 구매 버튼을 눌러야 끝이 났다. 하지만 구매를 하면 또 다른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그 괴로운 감정은 죄책감이다. 내가 쓸모없는 소비를 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죄책감.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의 반복을 언젠가 경험한 적이 있었다. 바로 내가 20대 초반에 겪은 폭식증 증상과 매우 흡사했던 것이다. 폭식증과 쇼핑 중독은 모두 괴로운 감정을 피하고 싶어 내면에서 소리치는 시그널이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HALT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H: Hungry, A: Angry, L: Lonely, T: Tired , 즉 중독 치료에 있어서 배고픔, 분노, 고독, 피로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면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했다. 글을 쓰면서 꾹꾹 누르려고 노력했던 나의 감정들을 글로 표현했다. 하지만 HALT 중에 유독 해소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었다.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화가 나면 화를 내면 되고 피곤하면 자면 되는데,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쉽게 해소할 수가 없었다. 깨진 독에 물을 채우듯 외로움은 채워지는 듯하다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세상에 나 혼자라는 공허함이 내 마음 안에 가득 찼다.
사람들은 인간이 외로운 동물이라고 말하며 외로움은 인간이 가지는 피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들 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외로운 감정을 많이 느꼈었다. 우리 가족은 겉으로는 평범한 가족이었지만 소통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룸메이트끼리의 동거 같았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외로움을 많이 토로했지만 그 감정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어른 흉내는 간신히 내고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속 깊은 방에 숨긴 어린아이의 외로운 목소리는 폭식증으로 발현되었다. 다행히 폭식증은 상담을 받고 휴식을 취하자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내면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었나 보다.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다시 증상이 도지는 대상 포진처럼 내가 느낀 이 공허한 외로움은 다시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이 내면의 괴물은 서른둘에 갑작스레 암을 진단받고 하던 일들을 다 그만두었던 그 이후에 더 커졌던 것 같다. 암 치료를 씩씩하게 잘 받으며 그 시기를 잘 견뎠다고 생각했는데 쇼핑 중독이 온 걸 보면 나의 충족되지 않은 외로움이 또다시 포효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 옆에 있어도 충족되지 않는 이 괴로운 외로움의 감정… 내가 느끼는 이 외로움의 근원은 어디일까? 사람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며 사는 걸까?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일상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습니다. 집안일과 담쌓고 살던 직장인 시절을 청산하고 집안일을 시작하게 되니 서투른 것 투성이라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고는 있었지만 ‘하면 티가 나지 않고 안 하면 티가 금방 나는’ 집안일을 반복하는 것이 때로는 지루하고 따분했습니다. 그나마 좋아했던 것이 요리였어요. 남편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걸로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쇼핑 중독이라는 ‘병’이 생겼어요. 20대 초반 폭식증을 겪으며 괴로웠던 감정들과 다시 재회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잠시 숨어있던 것이었어요. 마치 조용히 숨어있다가 몸이 약할 때 공격하는 대상 포진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외로움을 느끼실 때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모든 감정은 강물처럼 결국 흘러간다고 하던데 외로움도 그럴까요?
우울한 저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주셔서 이번 주도 정말 감사합니다. 공감과 응원의 말들에 큰 힘을 받으며 계속 글을 잘 써내려 가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