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엄마의 애도

by 티나

1. 애도의 심리학


겪어내는 여러 감정들을 이해하고 이름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인 나는 심리학책을 좋아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여러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책을 공유하고 책에서 나온 내용들을 우리 가족들이 경험하는 애도와 연결 지어 써보려 한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애도의 심리학>이라는 책이다.


<애도의 심리학>에서는 애도를 단순한 슬픔의 시간이 아니라, 수행해야 할 심리적 과업이라고 설명한다. 현대 애도 이론에서는 건강한 애도란 고인을 완전히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 나는 것이라고 했다. 상실의 현실을 인정하고 고통을 충분히 경험하고 고인이 없는 환경에 적응하며 마지막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것이며 애도는 잊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옮기는 일이 건강한 애도라고 연결했다.


특히 책에서 배우자의 상실은 더욱 복합적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일 뿐 아니라, 함께 형성해 온 생활의 리듬과 ‘아내’ 혹은 ‘남편’이라는 정체성의 붕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도는 슬픔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분노와 연민, 안도와 죄책감 같은 서로 모순된 감정이 동시에 떠오른다. 책에서 이런 감정을 양가감정이라고 부른다.


<애도의 심리학>에서는 애도를 단순한 슬픔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애도는 시간이 해결하는 감정이 아닌 수행해야 할 과업이라는 관점에서 이 과정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애도의 네 가지 과업은 보통 이렇게 정리된다.


1.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2. 상실의 고통을 충분히 경험하기


3. 고인이 없는 환경에 적응하기


4. 고인과의 정서적 연결을 재배치하고 삶을 계속하기



이 책에서 언급된 "배우자의 죽음은 부재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온 세계의 붕괴"라고 표현을 읽으며 나는 엄마가 떠올랐다.




2. 엄마가 배우자의 상실을 애도하는 법



<애도의 심리학>에서 언급한 네 가지 과업은 엄마가 겪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엄마가 배우자의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업은 장례식 절차를 통해 현실화되었던 것 같다. 생명이 사라진 배우자의 모습을 마주한 엄마는 의사가 써준 ‘사망 신고서’를 받았다. 여러 절차를 위해 필요한 ‘사망 신고서’는 종이 한 장일 뿐이지만 고인의 마지막을 점찍어주는 공식 서류이다. 엄마는 고인이 된 배우자의 장례식장을 마련하고 검정 한복을 입고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맞이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배우자의 여러 지인들, 가족들과 함께 그동안 고인의 삶과 죽음의 과정 등을 반복하여 언급하는 경험을 겪었다. 그리고 고인이 된 배우자가 깨끗하게 씻겨져 수의를 입은 모습으로 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마주했다. 이 관은 화장터에서 재가 되어 유골함에 담기게 되고 정사각형의 납골당 한 칸에 고인의 유골함이 담겼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엄마는 배우자의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엄마에게 배우자가 상실했다는 고통은 장례식으로 끝 맞음 되지 않았다. 고인이 사망한 차를 폐차하기 위해 여러 물품들을 수거하는 날, 고인의 흔적이 묻은 그곳에서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나와 오빠가 아빠를 추억하며 자주 오열을 할 때 엄마도 뒤에서 가슴 아프게 우셨다. 엄마는 배우자 상실의 고통을 충분히 경험하시는 중이었다.


고인의 유산과 유품 정리 절차를 끝낸 나와 오빠가 본가를 떠나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자 엄마는 혼자서 빈 집에 사시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작은 방에서 언제든 찌든 담배 연기를 내며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아빠의 모습이 매일같이 그려졌다고 했다. 고인이 밭에서 키운 여러 야채들이 아직도 냉장고에 남아있었다. 그 사람의 땀과 노력이 깃든 이 소중한 수확물들을 부지런히 반찬으로 만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혼자 끼니를 챙겼다. 이제는 배우자를 위해 매일 다른 국을 끓이지 않아도 되고 엄마가 먹고 싶은 반찬들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혼자 먹는 밥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엄마는 지금도 고인이 없는 환경에 적응하는 중이다.




3. 애도의 마지막 과업


이제 마지막 과업인 ‘고인과의 정서적 연결을 재배치하고 삶을 계속하기’는 엄마에게 끝맺음을 맺을 수 없는 과업인 것 같다.


엄마는 아빠를 많이 원망했었다. 지난주에 공유했던 편지들에서도 보았듯이 엄마는 아빠에게 많이 서운함을 느꼈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은 느낀 적이 없다고 했었다. 아빠가 부모와 형제들을 더 챙기느라 새로 이룬 가정보다 본가족을 더 우선시했던 시간들과 서운했던 말들을 떠올리면 나는 엄마가 그럴 만도 하다고 느꼈다. 젊은 날에 엄마는 이혼을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으셨다. 가장 최근에는 오빠가 결혼하기 전, 아빠의 친한 지인이 ‘아빠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결혼식 웨딩카에 새 신랑 옆에 앉았던 그 여자’ 때문에 황혼 이혼을 생각하셨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가 떠나면 엄마는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적어도 오랜 원망 하나는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엄마는 전혀 홀가분해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살아 계실 때, 엄마는 밥은 늘 따뜻하게 차려놓았다. 국이 없으면 식사를 잘 못 드시는 아빠를 위해 국을 매일 끓이셨으며 아빠가 좋아하는 계절 반찬들을 직접 만드시고는 했다. 아빠가 위암 수술을 받으시고 나서부터 식단에 더 신경을 쓰시는 듯 보였다. 엄마는 나에게 아빠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말해오셨지만, 엄마의 손길은 아빠를 향해있었다. 말은 미움이었지만, 행동은 습관이었고, 그 습관은 애착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위해 매일 기도하신다. 나는 원망스러운 아빠가 밉지도 않냐며 엄마에게 좋은 배우자가 아니었는데 왜 기도를 하냐고 물어봤다.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네 아빠가… 부모랑 형제들 챙기느라 자기 인생을 못 산 것 같아. 참 불쌍한 사람이야…”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그렇게 서운해했고, 그렇게 화를 냈던 사람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그런 배우자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불쌍하다고 말하다니…


<애도의 심리학>은 배우자의 상실을 “양가감정의 재정렬”이라고 설명한다. 사랑과 미움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한 사람 안에 공존했던 시간들이, 죽음 이후 다시 떠오른다고… 그래서 애도는 슬픔을 정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복잡했던 감정을 다시 배열하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엄마의 말은 아빠를 용서했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아빠의 선택을 모두 이해한다는 뜻도 아니었다. 다만, 한 인간의 생을 멀리서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었다. 미웠던 남편이 아니라, 부모에게 매여 있었던 아들, 형제들 사이에서 책임을 짊어졌던 사람, 자기 욕망을 미루며 살아낸 한 남자. 엄마는 남편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한 인간을 애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애도는 사랑했던 사람만을 향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 미워하고, 함께 버텨내고, 함께 살아낸 사람을 향한 감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여전히 아빠를 현재형으로 말하시고는 한다. 계절이 바뀌면 아빠가 좋아하시는 반찬을 해서 가끔 아빠의 영정 사진 앞에 두시고 기도를 하신다.


아빠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다고 말하던 엄마가…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지금에서야 아빠를 사랑하시는 것 같다.





저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애도의 감정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글을 마치고 보니 결국 제 자신을 설명하는 글이 된 것도 같네요.


저는 엄마를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미워했던 배우자를 슬퍼하며 애도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자주 흑백으로 정리하려 합니다.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행복했는지 아니었는지…. 그러나 오래된 관계는 언제나 그 중간 어딘가에 머물지요. 그래서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자들이 하는 큰 과업인 애도라는 과정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관계를 재정렬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애도는 고인과의 관계를 일편적으로 끝내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과 미움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애도는 정답이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결국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할 존재들이 아니던가요? 애도는 모순적인 양가감정 속에서 계속 변화합니다. 어쩌면 복잡한 감정의 모순을 그대로 두는 용기를 갖는 과정이 애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글이 애도를 겪고 있는 또 앞으로 수많이 겪을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혼란을 덜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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