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겪는 사람에게 필요한 위로란
<상실을 겪는 이를 위한 진정한 위로>
계절이 바뀔 때,
우리는 겨울의 상실을 떠올립니다.
나무는 잎을 떨구고,
자연은 색을 잃습니다.
따뜻함은
세상을 붙잡고 있던 힘을 놓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언가를 그리워합니다.
푸르른 잎,
눈부신 색들,
햇살이 얼굴을 덮던 그 따뜻함.
자연은 매년
상실을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매년 자연이 보여준 상실은
그 어떤 것도
미리 준비시켜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준비가 되어
다시 잎을 틔운다 해도
그 나무는
이전의 그 나무와는
같지 않습니다.
때로 사회는 상실을 겪은 우리들에게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라고 말하게 만들고,
우리 스스로를 비난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믿음은
억압과 회피를 낳고
결국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상실을 겪고 있는 그 사람에게
치료를 제시하지 마세요.
약이나 말로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그저 그 사람의 고통을 지켜봐 주세요.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부드럽게 대해 주세요.
상실을 겪고 있는 그는 이걸 “극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을 그 길로 몰아가지 마세요.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날에도
그 고통은 피부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지 마세요.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방식으로,
그 사람의 시간 안에서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 새로운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 상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그 부재를 느끼지 않는 시간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선택한 길은 아니지만
그 사람만 오로지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 사람은
온몸의 모든 세포가 아픕니다.
쉽게 화가 나고,
쉽게 지치고,
자주 울게 됩니다.
어떤 날은 숨 쉬는 것조차 아픕니다.
그러니 부탁입니다.
그저 그 사람 옆에 있어만 주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판단이 아니라
사랑과 연민이 있는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만
우리는 슬픔과 함께 공존하는 기쁨으로
조금씩 피어날 수 있습니다.
이 고통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이 슬픔을 정당하게 얻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자연스럽게 약해진다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슬픔은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닙니다.
해결해야 할 영적 위기도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고쳐할 문젯거리도 아닙니다.
슬픔은 그저,
느껴야 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슬픔은 끝이 아니라,
사랑을 계속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연습을 통해 우리들은
살아있는 것과
떠나간 이들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슬픔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만 봐주세요.
평안히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얼마 전 도서관에서 외상적 상실과 슬픔을 전문으로 공부한 심리 치료사 조앤 카차토레
(Joanne Cacciatore)의 애도는 사랑이다 (Grieving is Loving)이라는 책을 빌려왔어요. 이 책의 첫 장을 읽자마자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어요! 많이 위로가 되었거든요.
제가 초보 브런치 작가라 연재를 완료하려면 최소 10화가 필요한 조건을 모르고 연재를 끝내버려서 좀 아쉬웠는데 이 책의 내용을 너무 공유하고 싶어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 이번 글을 포함해서 4개의 글을 올릴 건데요, 이 글들에 상실을 겪으신 분들에게 손을 잡아드리고 옆에 있어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