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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연두 Jul 10. 2024

[한국작가(3)] 여자들의 이야기

[ BOOKREVIEW12. 2024.07.10 ]  손보미&백수린


손보미의 장편소설 "디어랄프로렌"을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독후감 공모전에 선택한 이유였다. 그러나 한달 뒤, 이 책 대신 다른 작가의 책으로 바꾸어 독후감을 작성해 제출했다. 내겐 잘 읽히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지난 번에 썼던 김금희의 연작소설과는 또다른 느낌이 들어서다. 특히 내가 생각한 십대 여자 아이의 시선과는 달라서였다.


<해변의 피크닉>에서 '나'는 엄마에게 "나는 커서 배신자가 될 거예요. 진짜 배신자."라고 말하며, 엄마는 '나'에게 "꼭 그렇게 되어라. 제발 꼭."라며 흥미도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말하는 장면은 이 책이 단순한 십대 소녀의 세계를 비추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여섯 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밤이 지나면", "불장난", "사랑의 꿈", "해변의 피크닉", "첫사랑", "이사"까지다. 출판사의 홍보 소개처럼 비밀스런 공모부터 첫사랑의 시작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손보미식 일인칭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작품들에 나오는 십대 초중반 소녀들은 자신 앞에 펼쳐진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상처받는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삼촌네 집에 맡겨지거나("밤이 지나면"),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함께 살거나("불장난"), 새아빠와 함께("첫사랑"), 어머니와 둘이서 ("해변의 피크닉". "이사") 산다. 불안정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366쪽)

소녀들에게 응시와 매혹의 대상은 또다른 여자들이다. 곧 여자들의 세계는 '소문'과 '비밀'로 둘러싸여 있다. (그렇게 젠더화되어 있다, 369쪽) "밤이 지나면"의 "영예은"이나 "불장난"의 "양우정", "사랑의 꿈"의 "공주연"등은 '나'를 통해 바라보는 여자들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소설은 십대 소녀들의 성장 서사를 다루지만, 그 성장이 아름답지도 매끄럽지도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작가의 그 시절 이야기가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읽고 나서 "뭘까?", 다시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백수린의 첫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를 전자책으로 3~4일 만에 완독했다. 책에 나오는 편지를 오디오북으로 들을 수 있어서 머리 속에 그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작가의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그의 문장이 아름답고 눈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표현력에 있어서 말이다.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이해미)는 도시가스 폭발사고로 언니를 잃은 후, 엄마와 해나(동생)과 함께 독일로 떠난다.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안은 채, 다른 이들을 안심 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배운 '나'는 친 이모인 행자이모와 자유로운 삶을 위해 독일로 온 '마리아 이모', 그리고 '첫사랑'을 잊지 못한 선자 이모와 같은 파독 간호사 이모들과 함께하며 서서히 치유된다. 그러나 뇌종양에 걸린 선자 이모의 일기 속 첫사랑 K.H 에 대해 추리하다가,  IMF로 인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어른이 된 해미는 기자로 생활하다가 다시금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읽게 되고 K.H에 대해 추적해나간다. 일기장에는 해미가 어렸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음을 스스로 느낀다. 우재와의 관계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지만, '나'(해미)와 그는 어딘가 다른 시선을 두고 있다. 

어느 날, 해미는 선자 이모의 아들인 한수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에게 편지와 일기장을 전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 그래서 해미는 이영오를 만나고 여러모로 추리해 가다가 K.H가 '천근호'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모의 첫사랑 찾기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찾아 만난 "천근호"란 인물에는 비밀이 있었다. 곧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사실이었다. 선자 이모와 천근호는 소녀 시절에 만나 독일로 같이 유학 가자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채 각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한 천근호는 해미에게 선자 이모에게 한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이 장편 소설은 언니의 죽음이라는 슬픔의 터널에서 벗어나 눈부신 치유의 빛을 찾아가는 '해미'와 주변 인물들의 성장과 가족들을 위해 독일로 이주한 한인 간호사(파독 간호사)들의 이야기 등이 멋지고 섬세한 문장으로 잘 그려져 있다. 


 '백수린'이라는 소설가의 첫 장편 소설을 읽어보면서, 이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소설을 통해서 짧은 소설이나 단편 소설과는 다른 장편 소설이 주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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