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아원을 다니고 있을 여름 무렵이었으니, 만 4살 막바지였다.
그날 하루의 단편적인 일은 아니었고, 나의 눈물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 중에 하나다.
나는 그 당시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눈물이라기 보단 울음, 그것도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대는 아이였다.
하루는 엄마가 "시장 다녀올 테니 집에 있어라. 이번에도 엄마가 돌아올 때 또 울고 있으면 쫓겨날 줄 알아!"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실은 너무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서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1분, 2분... 5분, 6분이 지나고 5분은 나에겐 5시간처럼 느껴지며 어김없이 나는 울고 있었다.
멀리서 돌아오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뚝 그쳤지만, 워낙 크게 울고 있어서인지,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결국 엄마 말대로 나는 쫓겨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 나는 엄마가 없어서 울고 있었던 것보다 더 큰소리로 더 과격하게 울며불며
"엄마,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울게요."
엄마를 붙잡기도 하고, 기둥을 붙잡기도 하고, 마지막엔 현관문을 꽉 붙잡고 안 나가려 했지만, 그 힘은 엄마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꽉 닫힌 현관문 앞에서 내 생각으론 한두 시간은 앉아있다가, 외숙모가 방문을 하는 특별한 상황에 극적으로 집에 들어가나 싶었지만, 실패했다.
얘가 왜 이러고 있냐며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외숙모 말에, 엄마가 얘는 들어오면 안 된다 하며 단호하게 다시 내보냈다.
수치심을 느꼈고, 나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로 갔다.
얘들은 내가 집에서 쫓겨났다는 걸 모르겠지?
아무렇지 않은 듯 놀아보려 했었던 기억.
4살 정도 아이가 우는 것은 아직은 생존 본능이다.
물론 성향 차이도 있겠지만, 나는 살려고 울어댔다.
그렇게도 순했었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동네 소문난 울보가 되어 있었다.
지금 7살과 3살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노출되어 있었던 시기에 기대감이 불안감으로 바뀌면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 것 같다.
물론 그때 엄마는 동생을 임신한 상태라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거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시골로의 이사, 달라진 친구들, 사라진 아빠, 이 모든 것들은 3, 4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랑을 갈망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때도 몰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몰랐고, 얼마 전까지도 몰랐었지만, 4살에 쫓겨났던 그 기억은 나의 트라우마로 마음속 깊숙이 남아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기억이 이렇게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그 내면아이가 제발 꺼내달라고 하는 함성소리였는지 모른다.
희한하지만 초등학생인 사월이는 아직까지도 "친구들은 엄마가 밉다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엄마가 좋고, 떨어지지를 못하는 거지?" 하며,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한다.
나도 그 기분을 알기에, 유치원까지는 받아줬지만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점차적으로 분리하고 떨어지는 연습을 했다.
내 기준에서는 아주 느린 속도로 단계를 올려갔지만, 사월이는 잘 따라와 주지 못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바다가 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나는 참기 힘든 고통을 느꼈다.
내가 고통스러울수록 나는 나의 엄마처럼 되어갔다.
더 단호해지고, 더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
"오늘은 횡단보도에서 만나기로 했지? 마치고 여기로 와."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담임선생님의 전화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오늘부터는 엘리베이터 혼자 타고 오기로 했지? 제발 울지 말고 와."
나는 그래도 애를 쫓아내서 혼자두지는 않는다며, 엄마보단 낫다고 생각하며 사월이도 울고, 나는 마음속으로 목놓아 울며 나의 마음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었다.
사월이가 혼자 다니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우는 모습을 매일 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그 약속을 단호히 지켜내려는 모습에서 나의 엄마가 보이는 것은 더 괴로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의 불리불안 문제로 상담사를 찾았지만, 사실 상담이 필요한 사람은 사월이가 아니라 정작 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아챘다.
다행히 상담을 받는 3개월 동안 사월이는 그 시간을 즐겼고,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선생님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었고, 그림 그리는 활동도 좋아했고, 엄마와 함께 상담소로 걸어가는 길도 재밌어했다.
상담 선생님은 여러 가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들을 알려주셨고, 열심히 따라 했고 사월이와 나의 성향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때 당시 사월이가 상담받는 시간 동안은 내가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 같은 힐링 시간이었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주었다.
사월이는 아직도 엄마를 너무 좋아해 떨어지는 것이 싫고 아직도 무섭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제 받아들일 수 있다.
나의 내면아이를 꺼내준 사월이에게 너무 감사하고, 혼자 있는 게 불안한 마음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다.
"사월아,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불안한 건 이상한 게 아니야. 불안감은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를 뿐이야. 사월이 너 1학년 때는 혼자서 등하교도 못해서 매일 울고 불고 했던 거 기억나? 지금은 왜 그랬었나 싶어 웃음만 나오잖아. 사월이가 무섭지만 한 번 용기를 내봤을 때 성공한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처럼 용기 있는 사월이가 된 거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용기를 기를 기회도 없어. 우리 사월이는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