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팀장님, 이건 취업 사기 아닌가요?

feat_인사담당자, 임금체불을 경험하다

by 썬과장

01_팀장님, 이건 취업 사기 아닌가요?



세상에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길과 방법이 있다. 하지만 나는 외골수 기질이 있는건지, 두려움이 많은건지, 다양한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명확해 보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경영학과'에 들어가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이 목표 때문에 대학교의 명성을 선택하기보다는 내 성적으로 경영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좋고 유명한 학교에 입학해서 복수 전공을 할 수도 있었고, 전과를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당시 수능을 평상시보다 훨씬 못 봤기 때문에 그 당시의 선택이 매우 아쉬운 점 중 하나이다.


그래도 대학교에서 내가 열심히 하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생활을 했고, 나름 학문의 즐거움도 느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사'업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인사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대학교 4학년 막 학기, 공기업 경영지원팀에 채용 전환형 인턴으로 다니게 되었다. 회사도 나쁘지 않았고, 사람들도 좋았지만, 순환근무를 한다는 말에 퇴사를 결정했다. 또 다시 외골수 병이 도진 것이다. 그리고 취업사이트에서 인사팀이 있는 회사를 열심히 검색했다. 지방에서 인사팀이 별도로 있는 회사는 찾기 힘들었지만, 운이 좋게 인사팀 신입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나름 경영학과 졸업생으로써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내용이 있었기에 회사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잡플래닛도 확인하고, 재무제표도 보고, 관련 기사도 검색했다. 부채 비율이 조금 높아 걱정되었지만, 회사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었고, 당시 정부에서 밀어주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제출했고, 다행히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은 다대일로 약 40분 정도 진행되었다. 수많은 질문 중에 한가지는 명확하게 기억난다.


"만약에 급여가 지연되면 어떻게 할껀가요?"

듣자마다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는데, 인사팀이니까... 인성을 물어보려는 상황면접인가? 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잠깐의 어려움으로 인해 밀리는 거라면 조금은 기다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지속되고, 회사 사업적인 지속성이 어려워 보인다면 회사와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급여가 밀리는 상황인가요?"


"아! 아니예요!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어요~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당시 팀장님께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지만 마음 한편이 쎄하면서도 찝찝했다. 면접을 잘 마무리하고, 이틀 뒤 합격 통보를 받았고 이렇게 인사담당자로써의 핑크빛 미래가 시작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예전부터 찝찝하고 싸한 느낌을 받을 때면 이런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그 느낌은 적중하고 말았다. 월급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하루 이틀이었지만, 한 달, 두 달, 심하게는 5개월 이상 월급이 밀렸다.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언제 급여가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은 사람을 피 마르게 했고, 나의 제정 상태는 점점 더 피폐해 졌다. 기존에 저축한 돈을 사용하게 되었고, 소비 습관은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입사하기 전에도 가끔 급여가 지연되었다고 한다)


어처구니 없게도 면접 때 급여가 밀리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팀장님은 나에게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임원진들은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약 3년의 임금지연 및 체불 기간 동안에 단 한 번도 대표이사의 사과를 받아 본적이 없었다. 처음엔 지연된 급여가 언제 지급되는지 공지도 하고 안내도 했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팀장급, 임원급만 급여 지연에 대해 공유 할뿐 직원들에게 안내조차 해주지 않았다. 직원들이 급여에 대해 문의 할 때면, 인사담당자로써 아무 답변을 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흔히들 주변 사람들에게 급여가 밀렸다고 말하면 당장 회사를 나오라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왜 퇴사 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임금체불을 당해본 우리도 상식적으론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았다. 직원들마다 각자의 가정형편과 경제사정이 다 달랐으며, 밖에는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침체 되고 있었고, 해당 회사가 나름 급여 수준이 높은 편이기도 했고, 같이 일한는 직원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엔 지방에 인사팀이 있는 회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쉽게 퇴사를 선택하지 못했다. 퇴사도 용기와 결단력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구리를 차가운 비커에 넣어놓고 서서히 가열하다 보면 익어서 죽게 된다는 이야기처럼, 처음에는 하루 이틀 밀렸던 임금체불 상황에 조금씩 익숙해져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잘 마무리 되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회사의 말을 믿었기에 이런 결과가 만들어 졌다.




인사담당자는 임금지연과 체불이 일어나는 상황속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직원들의 커리어와 삶을 위해선 퇴사하라고 말하는게 당연하겠지만, 인사팀 입장에선 회사 내 핵심인재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했다. 그래서 나도 임금체불 때문에 힘들어도 직원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그들을 더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 하면서, 급여 외 불만 사항이 없도록 관리하기 시작했다. 힘든시기를 같이 이겨내 보자! 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보면 정으로 사람을 붙잡았던 것 같다.


임금지연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보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체불근로자생계비'제도와 '간이대지급금(소액체당금)'제도를 발견했다. 직원들을 생각하면 해당 방법을 공유해서 필요한 직원들이 신청 할 수 있도록 해야했지만, 회사입장에선 체불확인서를 발급해야 하기 때문에 추후 근로감독이 들어올 수 있다는 리스크와 임원진들의 반대로 인해 어려움을 직면하게 되었다.


퇴사를 앞둔 인사팀 차장님께서는 "썬, 너가 정말 인사담당자라면 위에서 반대 할지라도 당연히 직원들에게 이런 정보를 안내해야 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 인사팀으로 발령을 받으신 차장님께서는 철저히 임원진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이 맞는 건지 혼란이 왔다. 평상시에는 내부 직원들을 위해 일하면서도, 회사의 이익이 달려 있는 일에는 철저히 회사만을 생각해야 하는 인사담당자의 이중적인 삶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물론 당시에는 다행히 임원진을 잘 설득해서 직원들에게 안내하는 방향으로 진행 되었지만, 이 상황과 수 많은 인사 업무를 진행하면서 지금도 딜레마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과연 어떤 행동이 옳은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답을 찾기위한 여정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Prologue_중소기업 인사팀 4년차 썬과장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