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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현지 Aug 02. 2023

국경의 밤*

아주 무더운 날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파트리샤가 커피 교실에서 받아온 생두는 석 달 만에 푸른 잎사귀를 피워냈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내가 자가 치료하는 동안

새싹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며칠 뒤에 발견한 나는 푸른 잎사귀의 수고스러움에 대하여,

뭉뚝해져 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중입니다

격리를 마치고 오후엔 영화관에 갑니다


도착한 빈 화면에는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놀이공원, 곤돌라를 타고 회전하는 즐거운 웃음소리로 영화는 곧 시작을 알립니다

청년 조지가 밤새 키운 사육장의 말 닉은 테마파크 한편에 잠시, 증여되어 있습니다

얼른 데리러 오겠다며 말의 긴 콧등에 키스하며 떠나는 조지의 뒷모습

말뚝에 묶여 긴장된 말의 다리가 점점 팽팽해집니다

가지런히 곤두선 털들이 주인의 사랑을 증명합니다


화면 가득, 평화롭게 떠오르는 구름은 색색의 지붕 위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이상기후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의 곤두선 직감으로부터

조지는 지프의 시동을 겁니다


재난이 세계에 방영되기 전

조지는 죽은 아비가 물려준 할리우드의 들판을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을 가장한 부리들이 얇은 막을 뚫고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모가지를 비트는 두려운 공포의 구름은

잠시 들른 바, 마티니 잔의 테두리에 붙은 설탕을 핥는 혀의 감촉으로,

따뜻한 감옥을 찾아 도심의 거리를 쏘다니는 이방인의 머리 위를 뒤덮습니다


조지는 판옵티콘의 거대한 구멍에 머리를 내밀고 바라봅니다

거꾸로 뒤집혀 형태를 알 수 없는 바비큐의 얼굴들, 매달려 있습니다

달리는 차들, 휠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는 속력

그 안장 아래, 그림자를 앉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도심의 거리를 쏘다니는 닉의 환영과

훔쳐보고 싶은 창문 위로 당신의 지문을 번갈아 봅니다

타오르지 못한 당신의 국경의 밤*은

아직, 숨을 죽이고

곳곳엔 징후들만이 폭풍 전야를 증명합니다

종일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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