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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현지 Aug 04. 2023

프로페셔널

겁 많은 빨간 목도리 안으로

한쪽 눈만 보여주는 표범 무리가 있다

의심스럽게 반짝이는 숲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물 위로 떠다니는 구멍 난 치즈처럼

맨다리의 촉감을 생각하며 준비운동을 한다

호루라기를 문 오리들의 삐, 신호음이 들려와

나는 연못 안으로 뛰어든다

움직이면 조금 더 커지는 바다를, 떠올리며

바닥 위로 자라나는 가시들은 온통

촉감 인형처럼 간지럽다


양동이를 뒤집어쓴 마을은 내게 걸어온다

온통 머리는 하얗고 들판처럼 투명하다

나는 두 다리를 가슴 쪽으로 모으고

조금씩 작아지려는 태아처럼,

피리들의 아지트 안에서

빈 병을 바라본다


너는 이제 울어야 해,

물 위로 둥둥 떠오르는 식빵의 마음으로

트리 위에 양말을 걸고 싶다


저 멀리, 검은 표범을 타고 파란 수염의 여자가

달려온다 돋보기로 나를 확대한다

나는 인중을 최대한 오므린다, 눈을 가운대로 모은다

그러나 웃을 때 치아가 보이지 않는 콤플랙스는

가장 높은 빨간 에나멜 구두가 되고 싶다

조금씩 방향을 다투어 회전하는 숲들

진열장을 휘청거리고, 병들은 바닥 위로 굴러떨어진다

유리 파편 사이로 집게를 버린 전갈들

유심히 나를 바라본다


*시작메모

'프로페셔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치열한 입시의 현장에서 고등학생 때부터 가져온 이 물음은

십여 년 후 <프로페셔널>이라는 작품, 나의 등단작이 되었다.



*2016 하반기 《시로여는세상》 등단 대표작



권현지, 「발룻」,『우리는 어제 만난 사이라서』, 천년의시작, 2018, p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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