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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현지 Aug 04. 2023

양파의 시간

새파랗게 돋아나는 양파의 싹은 왠지 불안했습니다

물안경을 쓰고 커피하우스를 지날 때

나무에서 떨어진 부엉이 한 마리

정도껏 날았어야지, 너 어쩌다가 내 손에 담겼니


다리가 부러진 부엉이를 가방 안에 담고

지퍼를 올리면, 폭죽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군가의 결혼기념일 같습니다

초콜릿 케이크 위 빨간 리본을 풀듯

나는 재빨리 재킷을 벗습니다

온몸에 크림이 묻었습니다


조용한 숲으로

뒷짐을 진 두 손으로

말 걸고 싶은 고목들에게 다가갑니다

흔들리는 잎사귀들, 손전등으로 비추면

침묵의 웅덩이 밖으로 거기,

회전문을 밀고 나오는 양파


새파랗게 돋아나는 양파의 싹

파란 세계를 꿈꾸는 뒤통수는

바라보면 눈물이 납니다

울면서 크림을 핥아 먹습니다

이제, 요리할 시간입니다



*시작메모

요리하는 시간, 거기서 떠올리다



권현지, 「양파의 시간」,『우리는 어제 만난 사이라서』, 천년의시작, 2018, p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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