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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현지 Aug 04. 2023

발룻Balut

 요트 안으로 멈춘 오후 3시,

 당신을 내려다보며 파라솔 위의 점심을 추억하는 중이다


 피의 사원으로 나온 여행자 가족들은 즐거운 저녁 메뉴를 떠올린다

 거리의 산책자처럼, 당신도 유유히 흘러가는 중이다

 금발의 여인들은 받침을 걸친 듯 비문 없는 완전한 언덕을 향해 걸어간다 구두를 잃어버린 주인처럼, 당신은 가끔

 고독에 합류한다 이편을 향해 탈출하고 싶다

 방전된 핸드폰 안으로는 소속되지 않은 전화번호들이 넘쳐나고, 당신은 언제나 번호들을 폐기하고 싶지만


 들개들이 기지개를 켜는 오후는 지루하다 긴 소매의 구멍, 검은 제복을 입은 신부들의 목청에서 성가의 화음이 지붕을 휘감으면 역사는 반취되는가, 액자 위에 걸린 왕비의 붉은 웃음은, 사진 안에서만 영원히 흡혈하는가

 초상화의 액자 위로 빛이 반짝, 이면 사원의 과실수는 허기를 느낀다 사과 한 알이 바닥 위로 툭, 떨어지면 균열 사이로 노을이 깃든다


 유폐된 요트로부터 해가 들어서면 당신의 하루는 천천히, 시작을 더듬는다

 당신에게는 냄새가 없다 달걀의 얇은 막처럼,

 주머니를 뒤집으면 말라비틀어진 담배 한 개비가 만져질 뿐이다


 네바강을 바라보는 요트 안의 시체

 녹슨 캠벨 통조림과 말라비틀어진 과일 조각

 염분으로 보존된 책상 앞에 시선은

 녹슨 철제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파라솔이 접힌다

 당신은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부화 직전의 발룻.



*발룻Balut : 부화직전의 오리알을 삶은 것.



*시작메모

유폐된 요트 안에서 염분으로 보존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외국 기사를 본다.

한 사람의 고독과 그 반대편, 즐거운 관광객들의 대비된 모습을 떠올린다.

작품의 무대는 러시아의 피의 사원과 네바강이다.

이름 모를 당신의 모습은 어쩌면, 부화 직전의 발룻이 아니었는지

오늘, 당신의 안녕을 빈다.



권현지, 「발룻」,『우리는 어제 만난 사이라서』, 천년의시작, 2018, p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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