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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현지 Aug 07. 2023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작품

국경의 밤


권현지



아주 무더운 날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파트리샤가 커피 교실에서 받아온 생두는 석 달 만에 푸른 잎사귀를 피워냈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내가 자가 치료하는 동안

새싹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며칠 뒤에 발견한 나는 푸른 잎사귀의 수고스러움에 대하여,

뭉뚝해져 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중입니다

격리를 마치고 오후엔 영화관에 갑니다


도착한 빈 화면에는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놀이공원, 곤돌라를 타고 회전하는 즐거운 웃음소리로 영화는 곧 시작을 알립니다

청년 조지가 밤새 키운 사육장의 말 닉은 테마파크 한편에 잠시, 증여되어 있습니다

얼른 데리러 오겠다며 말의 긴 콧등에 키스하며 떠나는 조지의 뒷모습

말뚝에 묶여 긴장된 말의 다리가 점점 팽팽해집니다

가지런히 곤두선 털들이 주인의 사랑을 증명합니다


화면 가득, 평화롭게 떠오르는 구름은 색색의 지붕 위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곧이어 이상기후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의 곤두선 직감으로부터

조지는 지프의 시동을 겁니다


재난이 세계에 방영되기 전

조지는 죽은 아비가 물려준 할리우드의 들판을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을 가장한 부리들이 얇은 막을 뚫고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모가지를 비트는 두려운 공포의 구름은

잠시 들른 바, 마티니 잔의 테두리에 붙은 설탕을 핥는 혀의 감촉으로,

따뜻한 감옥을 찾아 도심의 거리를 쏘다니는 이방인의 머리 위를 뒤덮습니다


조지는 판옵티콘의 거대한 구멍에 머리를 내밀고 바라봅니다

거꾸로 뒤집혀 형태를 알 수 없는 바비큐의 얼굴들, 매달려 있습니다

달리는 차들, 휠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는 속력

그 안장 아래, 그림자를 앉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도심의 거리를 쏘다니는 닉의 환영과

훔쳐보고 싶은 창문 위로 당신의 지문을 번갈아 봅니다

타오르지 못한 당신의 국경의 밤*은

아직, 숨을 죽이고

곳곳엔 징후들만이 폭풍 전야를 증명합니다

종일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면,




버블들



그것은 두려움 이후 공허함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무렵

평화롭게 구름은 머리 위로 하나둘 모여들었죠

버블들이 세기의 얇은 막을 뚫고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버블 속에서 우리는 떠다닙니다

저마다의 세계

버블 밖의 세계는 폐허이거나 갱신을 기다리고 있어서

탐사로봇만이 수신된 전파들 사이로 폐허가 된 행성을 걸어 다닙니다


종일 우리는 버블 안에서 밥을 먹거나 차를 우리고

생존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내 잠이 드는 것입니다

곧이어 새로운 이상기후가 나타날 것이라는 목소리가 스크린 위로 방영됩니다


버블은 종종 충돌합니다, 충돌을 도모합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버블이 무거워져 이내 터져버리니까

최소한의 눈물을 흘리고

최소한의 음식을 하고

최소한으로 사랑합니다

조금씩 자라나는 새싹은 드디어 잎사귀를 피워냈습니다


잎사귀 하나가 이름 모를 행인의 손등에 닿는다면,


해수면이 낮아지고 있었고

북극곰들은 두꺼운 발톱으로 종족의 가슴을 휘갈겨

죽음의 축제를 맞이할 상상을 합니다

우리는 투명한 버블 안에서

세계의 안과 밖을 가늠하는 일정을 추가합니다

버블 스크린 위에서 대기 중입니다


들리시나요?




핸들러



물에 빠진 생선요리는

정말 싫지만

나무꾼은 통째로 알이 박힌 양미리를 씹을 수 있겠습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전어의 식감으로

나뭇조각을 씹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생선을 먹지 못한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이 모순을 늘려 우리는 어디로든 떠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낡은 장화인가요

아니면 죽은 호랑나비의 마지막 착지 지점인가요

또는 어제 입고 벗어둔 살인자의 구겨진 비옷인가요

도무지 알지 못해서 어두운 숲길을 오래도록 걷습니다


왜 당신은 숲에서 나무 밑동을 쪼갰습니까?

쪼갠 나무를 바라보는 그림자의 형상을

사원을 오르는 계단마다 보이는 지렁이들, 죄책감처럼 웅크려 있습니다

나무꾼은 트럭에 생선을 싣고 다닙니다

생선을 대중화하려고

온 동네에 확성기로

음성 변조된 목소리로


생선 타는 냄새가 납니다

동굴 전체는 개방되어 있지만

냄새의 근원은 생선인지,

또는 사체가 타들어 가는 냄새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동굴 앞에는

빛나는 코코넛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 아래 모자를 벗으면

당신의 얼굴이 보일 것도 같은데

나무꾼은 액세서리를 진열하듯 제멋대로 문장을 진열하다가

무심코 페달을 밟고 어딘가로 떠나버립니다


우리 지금, 따라가야 할까요?




고백들



속삭이는 나무늘보

나무늘보가 천천히 도로에서부터 나무 위까지 거리를 가늠하며 기어 올라갑니다

모든 운전자가 너를 기다려줄 때까지

자신의 집을 버리고 새로운 거처를 찾아 나서는 소라게처럼

마티니 잔에 걸친 올리브와

신호등에 걸린 신호를 번갈아 봅니다


높이가 다른 시소

나뒹구는 것들 속에 비밀이 적혀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종이를 펼쳐 해독한 적 없습니다

뭉툭해진 연필과 소파만이 잠자코 있는 봄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근원에는 배반당한 악기의 기원이 잠들어 있나요?

당신의 두 손은 양손을 허리에 얹고 화가 났다는 표식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는 허리를 잡고 키스하는 도구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뜨거워진 머리를 잠시 들어 올리는 힘으로부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초인종이 울립니다

머리 위에 얹은 두껍고 무거운 두 팔을 버리고

새로운 공구들을 구경하러 현관 앞으로 갑니다


수중 도시의 여자

그녀는 상자 안에서 새로 배달된 그녀를 꺼냅니다

어둠마저 사라진 오래된 흙길, 맨발로 온종일 걷는 발목

갈림길에서 머뭇거리자 이정표가 나타날 때까지

누군가 손을 내밀 때까지

낯선 도시, 오랫동안 묶여있던 개의 목줄을 끊어버리듯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여름 사마귀

TV 다큐멘터리

나체 위의 나체

거꾸로 겹친 몸들이 클로즈업된다

암컷 사마귀에게 목을 베여서 잘려 나가는 것도 잊은 채

수컷 사마귀의 발기된 성기는 계속 움직인다

뒷모습만 보고 닮아서 따라갔어요

나는 단지 내 아비가 사라진 길을 따라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누군가 건네준 빵과 주스를 힐끔힐끔 마시고

뒤돌아 낯선 이에게 반갑게 인사했을 뿐


배우들

그의 단발머리는 흥건히 땀에 젖어있다

방금 샤워하고 나온 것일까

매번 호환되듯 움푹 파인 볼,

팔뚝 위 덕지덕지 아무는 피딱지의 속도로

침잠하듯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하품들,

여름 사마귀의 몸을 빌려

빈 몸의 밀도를 가늠해본다

사방을 향해 사지를 자유롭게 움직여본다


눈오리 날다

내가 아끼는 오리는 날고 싶어서

온종일 잠자코 있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퀘스천 마크가 붙어 있는 곳까지 샅샅이 살핍니다

그런데 아무도 오리를 마중 나오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 만난 소녀와 한 침대에서 상하 다른 방향으로 잠이 듭니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 날기 위해 태어났다는 비밀 이야기를 합니다


금빛 오렌지 두건

결혼에 낭만이 없다는 말은

상대에게 상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가

번식하는 낱말들에 너의 동작을 보여줘,

탁자 위 모서리에 걸친 여자의 오렌지색 두건은 위치가 불분명한 채로 자주 흘러내

린다

금빛 오렌지 여자가 머리에서 천천히 두건을 푸는 순간은

검은 살결 위 금빛 섀도의 미처 다하지 못한 느릿한 고백과 같지


밤이 오고 아침이 와서 내가 거기서 다시 출발한다면

당신, 거기서 반갑게 악수해줄래요?


전광판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기 위해 짐가방을 쌌습니다

날지 못한다고 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당신의 몸은 온전한가


창틀 위 암컷 사마귀가 무언(無言)의 흰 알을 낳고 있습니다




시치미를 달다*



나는 너를 응시한다

구멍 속에서 이파리들이 들썩인다

숨이 가빠온다

언덕을 오르는 장면


바위에 웅크린

뱀 한 마리,

입 또는 항문으로

무늬를 뱉어내고 있다

누군가 당신의 모습을

삼 달러에 판다


너머에 기차가 달린다

매를 푼다

발목에 끈을 묶어 횃대에 앉히고

공포심과 적개심을 없애도록

연습해본다

어깨 위 당신을 바라보는 도마뱀

도마뱀은 자꾸만 번식한다

도마뱀은 도마뱀으로 쌓여간다


무릎만으로 기어갈 수 있는가

가장 내부의 썩고 곪은 상처를 더듬으며

사과를 깎는다

얼룩은 내부로 번져가니까

상처 난 사과는 누군가 빨리 먹어야 한다고 답한다

바구니에서 기어 나온다

바구니는

차분하게 담길 열매를 기다린다

매가 뱀의 사지를 찢는다


매를 받는다

식탁 앞에 앉아 창문을 바라본다

호텔 건물은 부서짐을 반복한다

머리를 말린다

날카로운 못의 길이를 가늠하면서

바람의 세기를 조절한다

머리에 끼워둔 인조 사자 깃털이 사방에서 휘날린다



*시치미를 단 평범하지 않은 야생 매




신체 인식 데스크 앞에 서 있습니다



광장 한복판, 사과는 군데군데 놓여 있습니다

제 몸보다 큰 사과에 뺨을 비비는 사과들

사과를 장식처럼 또는 장식 삼아 사과 뒤에 숨는 사과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사과들

눈으로 사과의 표정을 읽지만, 여전히 입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과는 이제 이 외투를 벗어야겠습니다


어제의 꿈은 식물이었습니다

부캐가 된 손 다발들이

신체 인식 데스크 앞에 서 있습니다

고개를 뒤로 젖혀 사과꽃 향기를 맡습니다

이 장면은 얼음, 땡 하면 사라지는 놀이일까요

사과는 되돌아올 수 있다는 어떠한 믿음이나 무모함을 청바지 안, 권총으로 장전하고

안과 밖의 세계를 맴돌며 들판에 서 있습니다


컴컴한 거미 숲을 헤집고 들어섭니다

나뭇가지 사이 아득하게 매달린 손잡이들

한 손에는 채집한 입 모양들이 있습니다


사과를 닮은 아이는

알맹이를 감싸 안고

잠들어 있습니다

사과의 벌어진 틈 속에서

오래전 자신을 가두었던

다정한 사과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사각사각 이를 갈기도 합니다


다시, 광장 한복판

사과 속에 갇힌 사과들이 울고 있습니다

(레인코트를 입은 배달원은

철문 앞에 봉투를 들고 서 있습니다)

앞을 향해 걸으려던 사과들 잠시 머뭇거립니다

미안해,

사과가 사과하면 사과는 그 손길을 받아줄까요?

얼음 땡, 하고 사과는 사과로부터 풀려날 수 있을까요?


오크와 바닐라 향이 나는 사과들

신체 인식 테스트 앞에 서 있습니다

단단하고 윤이 나는 멋쟁이 사과를 떠올리며

모자를 쓰고 차례를 기다립니다

신체 이곳저곳을 바코드로 찍어봅니다




새해 파티를 위해 구워야 할 빛나는 트리



버펄로를 멈추는 손가락의 의지 또는 방향

이 폭력을 있는 지팡이 그대로 부르세요

즐기는 펍의 남자들은 남성성을 해체하고

에밀리는 아직 파리에 있어요, 왜 우리는 여전히 지켜보고 있습니까?

70세 이후 섹스의 기쁨(그리고 도전)

나는 애플 에어 태그와 GPS 추적기를 사용하여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할렘 생활은 계속 부름을 받았습니다

수요일 저녁 브리핑

과거의 시간 읽기

아기는 통로의 어느 쪽에 있습니까?

미완성 지하실은 탈출과 재창조를 허용할 수 있다고 작가는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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