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지, 『우리는 어제 만난 사이라서』, 천년의시작, 2018.
권현지 시인의 첫 시집 『우리는 어제 만난 사이라서』가 시작시인선 0282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2016년 『시로 여는 세상』 신인상에 「프로페셔널」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한 후 젊고 새로운 목소리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어둡고 불온한 세계를 헤매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현실보다 생생한 꿈으로 나타나면서, 환청과도 같은 속삭임이 단단하기만 했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시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해설의 말처럼 시인은 “한없이 길게 늘어지는 머리칼처럼 계속 출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의 리듬”을 구사하고 때론 “어른이 하는 아이의 말 또는 아이가 하는 어른의 말과 같은 시들”을 펼쳐 보이며 독창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해설을 쓴 장은석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에 대하여 “여러 동화로부터 모티프를 빌리고 있는 그의 시는 어른들의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거나 아이의 순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금기를 부수고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고 평했다. …(중략)… 또한 시어와 시어의 간극을 통해 만드는 시인의 낯선 감각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배반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펼쳐 보인다”라고 평했다.
권현지 시인의 경계 허물어뜨리기는 비단 ‘어른’과 ‘아이’, ‘지상’과 ‘환영’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파파인애플’과 같이 완전히 다른 대상을 돌연히 연결하는 언어적 모험에서도 잘 드러난다. 요컨대 불합리한 체계의 완고한 경계를 뒤흔들고 돌파하려는 시인의 시적 태도에는 경계의 안과 밖 혹은 경계에 걸쳐져 있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표4를 쓴 김수복 시인의 말처럼 권현지의 시는 “리본을 매만지듯 달리는 기차”가 되어준다.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우리 존재의 자의식과 주체와, 탈경계와, 해체와 자유라는 역사驛舍들을 경유”할 수 있을 것이다.
Ⅰ.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바나나 한 다발
불시착한 텐트 13
프로페셔널 14
양파의 시간 16
발룻Balut 18
지포 라이터 20
프레스Press 22
하울링Howling 24
스크린Screen 26
클리토스의 정원 28
이구아나 나누기 30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바나나 한 다발 31
편두통 32
토크쇼 34
어덜트 베이비Adult Baby 36
접속 38
빛나는 고양이 40
(중략)
출처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92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