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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던 날 겪은 기묘한 일들

by 정선영

참으로 오랜만에 집을 옮기게 되었다.

짐을 들여놓고 새로운 동네를 한번 걸어보자 싶어서 나섰다.

그날은 살짝 흐린 날이었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가 또 지나갔다를 반복했다.


그때 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는데 정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누가 쳐다보면 왠지 알겠는 그것 있지 않은가. 구름 저 편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존재의 느낌. 더 신기한 건 그쪽에서도 나를 보다가 딱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당황해하는 듯했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알았다. 그때 구름이 다시 해를 가렸고 이후엔 그게 사라졌다. 개미는 인간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사람의 존재를 알아차린 개미가 된 것 같았다. 걸어가면서도 꿈결인 듯 아닌 듯 정신이 산란했다. 다시 이사한 집으로 갔다.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정수기를 보았다. 이사오기 며칠 전 사용 중인 커피머신 정수기의 실리콘 커버 부품이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AS 문의를 했더니 새 부품을 신청해 받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이참에 신제품으로 교환하라고 했다. 얄팍한 마케팅을 생각하니 화가 나서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실리콘 부품이 없어서 얼음을 꺼낼 때마다 마구 튀어 달아났다.


그날 정수기를 새로 세팅하러 기사님이 오셨다. 싱크대 아래에 전기 연결을 하실 때 아래를 열고 작업 중에 뭔가를 꺼냈다. 이게 여기 들어있네요 하면서.


그 실리콘 부품이었다.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씻어서 끼워보니 딱 들어맞았다. 어떻게 이걸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부품이 미리 이곳에 이사라도 와 있었던 걸까. 합리적으로 보자면 그전에 살던 분이 나와 동일한 정수기 모델을 사용하다가 같은 부품을 잃어버렸고 그게 거기 있었다는 추론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과연...


시 공간이 뒤죽박죽 된 이상한 느낌 속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양자역학과 평행우주에 심취한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암튼 나는 내 몸과 마음보다 먼저 새집에 와 있었던(?)

정수기의 한 부분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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