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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의식의 방엔 아기 고양이 양고가 산다

양고, 핑키, 그리고 초코

by 정선영

양고는 내 어린 시절 잠시 함께했던 고양이다.

고양을 거꾸로 해서 양고라 불렀다. 양고가 아주 어렸을 때 생후 2~3 주 밖에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웃집

할머니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엄마가 아가들 중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토록 어린 아기를 말이다.


나는 양고보다 그 어미 고양이를 더 또렷이 기억한다. 왜냐하면 한동안 정확한 시간에 양고에게 젖을 주기 위해 매일 우리 집으로 왔었기 때문이다.


양고는 어미가 올 시간 즈음이 되면 야옹 양 양 거리며

길게 울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어미가 몇 분 안에 나타났다.

그리고 젖을 먹이고는 또 돌아갔다. 자신의 아기는 절대 데려가지 않고 혼자 갔다.


나는 양고의 어미가 나타날 때마다 마음이 아려왔다.

아 저 아이도 새끼와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아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 시절에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지금처럼 귀히 여기지 않고 언제고 잡아먹거나 팔아 버리는 용도로만 취급했다.

그래서 개장수나 커다란 자루를 가지고 다니던 고양이 장수 아저씨들이 많았다. 우리 집 마당에서 키우던 개들도 학교 갔다 오면 목줄만 덜컥 남겨두고 사라지곤 했다.


한동안 오던 양고의 어미도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다. 그날 양고는 목이 쉬도록 울면서 돌아다녔다. 엄마에게 물으니 양고 어미가 고양이 장수에게 팔려 갔다고 했다.

나는 그날 저녁 가시가 걸린 듯 목이 따끔거려서 밥을 삼킬 수가 없었다. 그날은 생선 반찬이 없었는데도.


이후 며칠은 더 울다가 체념한 듯 양고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나는 양고가 예뻐서 잘 때마다 방에서 데리고 잤다. 금방 금방 쑥 크더니 제법 어른 고양이가 됐었던 양고에 대한 기억은 거기까지, 그 이후는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양고 역시 어미처럼 팔려 갔을 것이다. 그 기억이 싫어서 내 무의식이 도려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13살과 12살 먹은 늙은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집 앞에 고양이를 분양하는 가게가 있었는데 남편이 상의도 없이 어느 날 한 마리를 데려 오더니 그 아이가 다 컸을 무렵 둘째도 역시 데려왔었다.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고 몇 년 후에 동물농장 프로그램에서 강아지, 고양이 공장 이슈가 크게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을 분양받았던 그 가게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 알고 보니 가게 주인아저씨가 이곳 일대에서 악명 높은 고양이 공장을 운영했고, 그곳 출신의 아기들은 모두 학대받던 어미들이 쉴 새 없이 낳아야 했던 눈물의 새끼들이었던 거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우리 아이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내 어릴 적 양고와, 지금 함께인 핑키와 초코.

시대는 다르지만 먹잇감으로만 모든 동물들을 대했던 옛날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교묘히 이용되는 지금의 사정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양고, 핑키, 초코

이름만 불러도 가슴깊이 애달프고 또 애달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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