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자음, 모음은 영어의 파닉스다.

7살 아들, 한글의 자음, 모음 조합과 영어의 파닉스 익히기

by 멜리챌리

26.1.8. 목요일 아침 9시 47분.


정후는 월요일과 금요일마다 화상 수업을 듣는다.
미국 선생님과 파닉스 수업 중인데, 몸을 자꾸 배배 꼬며 집중을 못 한다.
선생님은


"서두르지 마세요"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만,

정후는 자신이 아는 단어를 떠올려 자꾸 유추해버린다.

나는 정후에게 학습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서
지금까지 어떤 학습도 강제로 시킨 적이 없다.


하지만 수업 콘텐츠가 점점 어려워지고, 영어 말하기만으로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글을 스스로 읽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래서 영어 읽기를 위해 파닉스 수업을 요청했고, 지금은 그 수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3달이 지나도 정후는 파닉스를 잘 흡수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복습이나 백업을 해주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곧, 정후를 앉혀 놓고 직접 파닉스 학습을 시작하게 했다.



막상 함께해 보니, 정후는 아직 'ip' 같은 기본 음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긴 철자 조합을 읽어내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화상 수업을 그만두는 게 맞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내 지혜의 파트너는 영어 입시 전문가다.

엉터리 전문가가 아닌,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분이라서 그분의 말은 늘 신뢰가 간다.
오늘 학원에서 “정후는 영어 잘하고 있나요?”라는 말에
내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말로 하는 수업은 잘하는데, 읽지를 못하니 수업에 벽이 느껴져요.
그래서 파닉스를 시작했는데 정후가 어려워해서요.
화상 수업을 그만두고 내가 직접 PK부터 GK까지 다 해줘야 하나,
아니면 미국 선생님을 고용해 매일 30문장 정도 자유롭게 대화를 시켜볼까,
그런 고민 중이에요.
무엇보다 지금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그만두면 아쉬울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을 잘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왜 읽어야 해요?’라고 묻기도 해요.”


그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을 정리하게 됐다.
나는 정후가 잘 이끌려 가길 바란다.
그래서 구멍 없이 차근차근 도와주고 싶다.
읽기를 통해 스스로 영어책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지금의 파닉스 수업을 이어가야 한다.



이런 생각 끝에, 정후에게도 직접 물어봤다.
화상 수업을 하는 당사자는 바로 정후니까.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 수업 재미있어. 하루 더 하고 싶어!”


그럼, 수업할 때 왜 그렇게 몸을 배배 꼬았던 걸까?
도대체... 몸을 꼬는 것과 집중은 다른 걸까?
혹시 수업 시간대가 피곤한 시간이라 그런 걸까?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화상 수업 시간을 오후 6시로 조정해
정후의 피로감을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한국어, 영어 단어 학습>

정후는 5년 동안 문자 학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6살이 되자 유치원에서 한글 쓰기를 시작했다.
쓰기라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
나는 자음과 모음, 쓰는 순서, 자리를 조금씩 알려줬다.
한 번에 다 가르치기보다, 정후가 필요할 때, 궁금해할 때마다
가볍게 반복해서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영어는 화상 수업을 통해 반강제로 시작하게 된 경우다.
어제는 함께 파닉스에서 -ix를 배우고 나서, 정후가 갑자기 말했다.


“expecto patronum에도 ix가 들어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ex’야. ‘ix’랑 철자는 다르지만, 소리는 비슷하게 들릴 수 있어.”



"write에서 That's right에서도 라이트가 들어가잖아~!"


"맞아 wr에서 w은 뭐지?"


"묵음이지."


"그래, 그래서 rite (롸이트)이고,


right에는 gh가 묵음이라서 ri_t가 되어서 또 롸이트로 소리나는거야. "


정후는 한글의 자모 소리와 영어의 자모 소리를
자기만의 속도로, 동시에 익혀가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파닉스를 배우지 않아도 영어를 잘 읽는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영어를 배웠다.
그래서 쉬운 글자는 읽지만, 복잡한 철자나 긴 단어 앞에서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다.

그 구멍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물론 파닉스를 배워도, 실제 영어 말하기에서는
들리지 않는 소리도 많다.
하지만 나는 정후에게 소리의 원리를 알려주는 것,
그 기초만큼은 꼭 알려주고 싶다.

튼튼한 기반 위에 쌓인 지식은 오랫동안 아이의 것이 되니까.
내가 전부 쌓아주지 않더라도,
정후 스스로 그 위에 무언가를 더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한국의 영어 교육 현실에 대해 늘 회의적이었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많은 영어 수업에서
선생님들은 한국어로 설명을 너무 많이 한다.

그 설명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이 되었다.

아이의 시선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해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한국어 설명과 영어 단어가 섞인 수업은
혼란을 두 배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정후에게 발음이 정확한 미국 선생님과 함께
반복적인 사운드를 듣고 따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같은 소리를 자주 들으면서, 귀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내가 생각하기에 전 세계의 많은 아이들이 영어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생각이 짧은 어른들 때문이라는 걸 점점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능력 있는 아이의 가능성을 막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정후에게만큼은 그런 벽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자연스럽고 불편하지 않은 환경에서
언어를 받아들이게 해주고 싶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또 한 가지.
많은 박사들이 말하는 이론은 현실에서 맞지 않는다는 것.
나는 정후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사들의 연구 결과는 멋질 수 있지만,
내 아이의 눈빛을 직접 보지 않고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식으로는 똑똑할지 몰라도,
아이의 마음을 읽는 데는 서툰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정후만의 박사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정후를 진짜로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내 앞에 놓인 ‘시험’은 여전히 어렵다.




나는 아이와 잘 지내는 엄마가 되고 싶다.
정후가 나를 피하지 않기를 바라고,

내가 나이가 들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정후가 나를 떠올릴 때,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미래에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내 마음이
정후를 ‘마마보이’로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언젠가 정후가 나를 멀리하게 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



나는 ‘자립’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사회로 내보내기 위해, 후회 없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키운 뒤 보내줘야 한다는 그 말.

그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정후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언젠가 정후가 그 말에 질려서
“이젠 말 안 해도 돼”라고 할까 봐,
지금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런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사실은 건강한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아들의 건강한 자립이라는 개념을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정의해 보기로 했다.





건강한 부모 자식 관계란,


끊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것’.

서로의 삶을 지켜봐 줄 수 있는 거리,
도움이 필요할 땐 주저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서로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믿어주는 거리.




그 거리감이야말로,
진짜 정서적인 연결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나는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의 이런 매일의 기록이 결국은
아이와 나, 우리 둘의 성장이라는 걸 알기에.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려간다.
지금보다 더 단단한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서로의 거리를 조절하며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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