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연령에 따라 나의 직업은 변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2026년 1월 12일.
나는 오늘,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한동안 고민의 중심에서 맴돌았다.
영어학원에서 1년 10개월 동안 해왔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이어갈 것인지,
아이들의 책 읽기를 도와주는 작은 독서 센터에서 새로운 배움을 시작할 것인지.
정후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그동안 우리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문제가 없는 독서를 해왔다.
즐기는 독서, 머무는 독서, 말없이 다가가는 이야기 속 산책들.
하지만 초등학교라는 말 앞에서
내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이제는 문제를 푸는 독서를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나라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작은 독서 센터 같은 곳에서
문해력을 키우는 방식의 독서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정후에게 더 나은 지도를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불안’에서 비롯된 결정일지도 모른다.
반면,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나서 영어학원에 취업을 한 것은 분명히 ‘내 길’이었다.
2024년 3월부터 오늘까지
나는 거의 매일 아침 2시간씩 영어 공부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말했고,
그 안에서 나도 배웠다.
그리고 듣기 실력이 쌓이고 있다는 걸,
내 귀가 말해주었다.
이건 단순한 루틴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으로 만든 나만의 기반,
나를 일으키는 리듬이었다.
그 감각을 놓는 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동안 나는 이렇게 타협하려 했다.
“이 정도만 하고,
이제 한글 독서 쪽을 조금 배워보자.”
하지만 나 자신이 금방 알아차렸다.
“이 정도만 하기에는,
나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영어 초급에서 중급으로 막 넘어가려는 지점에 있다.
이 시점에서 멈추면,
그동안 쌓아온 것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그건 아깝다는 말로도 부족한, 정말로 아픈 후회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결정했다.
나는 이 영어 루틴을 이어간다. 영어 공부를 1년 더 지속한다.
지금의 감각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책을 중심으로 하는 그 배움의 공간도 분명 좋은 곳이다.
언젠가 정후가 독서법에 흥미를 갖게 된다면,
그때, 내가 다시 그 길을 고민해보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만들어온 언어의 리듬을 놓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정후의 독서도 지금처럼 즐기며 충분히 자라날 것이다.
'초등학교'라는 이름 앞에서 너무 일찍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정후도 그렇게 자신의 길을 자연스럽게 찾아갈 것 같다.
나는 오늘 이 글을 올리고, 다시 영어 공부를 하러 간다.
조용히 책을 펴고, 귀를 열고, 말을 내뱉고,
내가 만들어온 시간 위에 또 하루를 더 쌓을 것이다.
나는 아직 초급자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 초급자다.
그래서 나는 결국 중급자가 될 것이다.
언젠가, 내가 말한 대로
**“영어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 방황은 끝났다.
이제는 선택의 시간도,
확신의 시간도 지나
살아내는 시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