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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OA ②

누구에게나 힘든게 10대 시절이야.

by SAHAS






소아는 자신의 초등학생으로 살아오던 삶이 조금은 힘들게 느껴졌지만 모나지 않게 잘 자라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학교 아니라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20분, 버스를 타고 30분, 버스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서 10분. 한 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비해 많이 커진 모습이었지만, 또래 친구들 중에서는 언제나 가장 작은 학생이었다.


한 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의 중학교에 입학을 할 때는 교복보다 사복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그 학교의 가장 좋은 장점으로 느껴졌는데 그 사복이 아이들의 집안 형편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교복을 입는 친구들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입학한 중학교에는 같은 초등학교 졸업생 중 오직 5명만이 배치되어 처음 초등학교 입학 때처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정글 속에 혼자가 된 것 같은 막막한 마음이 느꼈다.

졸업할 때쯤에는 좋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좋은 친구들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도 언니도 있어 친구들의 보이지 않는 보살핌도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했었는데 이제 아는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낯가림이 있어 아는 이 하나 없는 중학교 생활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힘들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에 한 시간이나 소요되는 통학 시간도 부담이지만 아침마다 타야 하는 만원 버스와 자기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다녀야 하는 것이 엄청나게 부담스러웠지만, 그렇게 힘들게 가는 학교에 아는 친구 하나 없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였다.


정글 같은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친구를 사귀어야 되고, 처음 본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야 한다는 것도 어렵게 느껴지기만 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정착하는 시간이 다소 더 걸리긴 했지만 마음 맞고 성격 맞는 친구들도 만나고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도 찾게 되면서 사건 사고 없이 평탄하고 평온한 중학교 생활을 이어 나갔다.


중학교 졸업반이 된 소아는 자신도 언니와 다름없이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을 할 거라 생각을 했지만 입학 상담을 하고 간 엄마는 담임 선생님한테 집안 형편으로 인해 상업계 학교 진학을 원한다 뜻을 밝히셨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사실을 듣게 되었고 그날의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집에 가서 엄마랑 잘 상의해 보라'라는 말은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담임 선생님도 엄마에게 일반 고등학교를 보내기를 권하셨으나 엄마의 생각이 너무나 확고하셨다고 한다.


집에서 엄마한테도 담임 선생님과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자신의 미래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낯선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던 그 순간 본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아는 엄마가 원하는 데로 상업계열의 고등학교의 전산과로 입학원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일반 상업과 대신 경쟁률이 높은 전산과에 입학한 것은 소아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전산과를 운영하는 학교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이 이렇게 발전된 시대를 살고 있다 보니 전산과를 선택한 건 미래 지향적인 탁월한 선택이다는 생각이다.



소아 아빠는 젊은 시절 백내장으로 인해 실명에 가까운 시력을 갖게 되어 일정하고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는 백내장이 치료가 어려운 질병이 아니지만 40년 전에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병명이었다. 이런 상황으로 아빠가 직업을 갖지 못해 엄마가 가장 역할을 하게 되었고 엄마 월급으로 자녀 셋을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부모님이 말해주지 않았어도 어렸을 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5살 소아는 티브 시청료를 받으러 온 아저씨와 낼 돈이 없으니 대신 티브를 가져가라며 실랑이하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교 육성회비,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정해진 기간 내에 내본 적 없는 수업료로 학교생활 내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교무실로 오라는 소리가 나오는 건 아닌지 눈치를 봐야 했던 것들을 잊지 않고 있다.


두 딸의 수업료 납부 통지서를 받는 달이면 동네 달러 아줌마한테서 돈을 빌리는 엄마를 보면서 몸으로 머리로 체감했다.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일곱시까지 지하공장에서 일하면서 월급 팔십만 원을 받았아 중. 고등학교 수업료를 내야 할 때는 매번 달러 빚을 얻어 내야 했던 엄마로서는 그 시절에 이백만 원이 넘는 대학 수업료를 어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연년생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혼자 감당하기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으리라 짐작했다.

지금처럼 학자금 대출 서비스도 없었을뿐더러 일반 대출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대,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었기에 때가 되면 전세 자금도 올려야 했고 달동네 재개발촌에 살고는 소아 네로서는 돈 나가야 할 곳은 많지만 들어오는 금액은 너무나 적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꼭 보내고 싶어 했던 부모님은 소아를 제외한 두 명의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는 걸 보면서 겉으로 말을 못 했지만 언니와 동생은 학교로 가는데 직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소아를 볼 때만 착잡하고 마음 쓰리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미래에 대한 투자는 생각도 못 할 만큼 엄마는 힘들었을 테니 당장 먹고살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고 자녀 중 하나라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가정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더 컸으리라.


열일곱의 소아는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머리로는 이해 하나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했고, 능숙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자신의 일렁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질풍노도의 시간의 보내고 있는 소녀였을 뿐이다.

상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적잖은 시간을 방황 속에 보내야 했다.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는 언니와 자신이 하는 공부가 완전히 달랐음을 알았고 자신의 미래는 언니와는 확연히 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아서였을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 사춘기의 '사'라는 것조차 담을 쌓고 살았던 소아는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뒤늦게 사춘기를 세게 맡고 있었고, 그런 자식을 보면서 엄마는 속으로 많이 애태우셨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따로 외출 한번 한적 없던 엄마는 소아랑 단둘이 동네 산책을 가자면서 앞장서 길을 나섰다.

말없이 길을 걷던 엄마가 꺼낸 첫마디는 '미안해'라는 세 글자였다.

그 짧은 세 글자에 마음이 아려왔고 아팠지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고 열일곱 살의 소아는 엄마가 그 한마디를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미안했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자신의 인생이 자신이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과 속상함이 더 컸었다.

다만, 좋지 않은 집안 사정이지만 두 분 모두 열심히 사셨고 자녀를 위해 노력하는 걸 알았기에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 있지만 정도에서 크게 엇나가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 있던 소아가 학교생활에 흥미를 갖게 만든 것은 컴퓨터였다.


학교에서 태어나 처음 사용한 컴퓨터는 '486', 처음 배운 교육은 'MS-MOS', '비주얼 베이식'.

이렇게 배운 것을 활용하여 재미있고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되면서 컴퓨터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학교생활에도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소아가 고등학교에서 배운 컴퓨터 교육은 대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의 완성도보다는 낮을지언정 앞으로 그녀가 살아갈 인생에 정말 큰 자산이 되어주었다.



'대학 졸업장'이라는 것이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준비할 때 내 몸에 꼭 있어야 하는 팔, 다리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의 한국 사회에서 '학연', '지연', '혈연'은 어디를 가도 꼭 필요한 조건이며, 일반 사람들은 혈연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을 '학연'과 '지연'으로 채울 수 있기에 대한민국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대학 졸업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이것은 지금까지도 모든 사람들의 '인생 필수 아이템' 이 되었다.

이런 필수 아이템이 없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것에 '힘겨움'이라는 '불필요한 옵션'이 따라붙는 것을 의미하며, 필수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력에 노력을 더한다고 해도 '필수 아이템'을 장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는 불빛 한번 내보지 못하고 자신의 직장 생활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까지도 새로운 곳의 이직을 준비하거나 헤드헌터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을 때 능력이나 경력사항보다는 최종학력이 문제가 되곤 한다.

소아는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형제 지간에도 이런 부족함은 은연중에 표현되고 그건 자신들의 미래와도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형제 사이에서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고 소아는 늘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최선 크다 했 임했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형제들은 즐겁고 행복한 대학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 시간의 공허함과 우울감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최종학력 졸업장은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달라지게 했으며 미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가끔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횟수만큼이나 적은 숫자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노력에 노력을 더하고 더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소아도 이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갖추지 못한 필수 아이템을 대신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쉼 없이 일하였으며 ,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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