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이방인 두 번째 이야기...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 생활
오늘의 리뷰는 [친밀한 이방인]의 두 번째 이야기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 연애, 결혼에 관한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 속 작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되었던 이유미 이야기도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지만, 소설 속 작가의 결혼 생활, 사랑, 연애에 대한 소외를 적은 글 또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것 같아 몇 글자 적어보려고 한다.
작가는 책에서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 생활에 대한 소회를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 표현으로 사랑, 연애, 결혼 삼종 세트 중 하나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음직한 내용들이다.
사람들은 언제라도 로맨스에 감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가장 쉽고 빠른 마취제다.
남녀 사이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각기 다른 형태의 관계가 있고, 그 나름의 행복의 기준이 있는 법이죠.
결혼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개입된다. 사랑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자체가 결혼의 동인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결혼한다.
사랑에 빠진 여자들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젊은 시절 한 때의 달콤함에 빠져 내게 주저앉은 아내를 봐도, 쉽게 알 수 있지요.
나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더욱 크게 발을 구르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속는 자와 속이는 자는 함께 쾌락에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후자의 것보다 전자의 것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사람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꿈꾸고 미래를 계획해보기도 한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을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에서의 결혼은 사랑과 함께 이 사람과 결혼해서 내가 얻게 되는 이득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자기가 바라는 이득이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을 누군가는 나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을 누군가는 자신의 이상을 같이 실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하게 될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당신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선택하셨나요?
프로 소설가로 세 권의 책을 펴냈고, 영국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땄지만, 그것으로 당장 구할 수 있는 정규직은 하나도 없었다. 그 상태가 지금까지 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일찌감치 대학에 자리를 잡은 남편 덕분이었다. 그가 유능해질수록 나는 무능해지고 있었지만, 좋을 대로 그 평균치를 나의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나는 이미 경제적 쓸모를 잃어버렸고, 밖에서 돈벌이를 하는 남편이 적어도 집에서는 쉴 수 있도록 아이를 그에게서 멀리 데려가야 했다. 새벽에 거실에서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노라면 방에서 남편이 코를 고는 소리와, 아기가 젖병 꼭지를 쌕쌕 빨아 당기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아이는 사랑을 갈구하듯 내 옷을 움켜쥐었다.
머릿속이 짓뭉개진 진흙 같았고, 두통이 끊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시작도 못한 소설이 새하얀 백지로 뭉치째 쌓여 있었다.
온종일 작은 아파트에 갇혀 아이를 돌보면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 존재가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젊음, 내 자질, 내 영혼, 위대한 것을 이루고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이라는 구멍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대기 상태로 인생을 흘려보내는 동안 남편은 차곡차곡 논문을 썼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우리는 밤을 새워 떠들었는데, 대화를 이어가느라 밥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곤 했는데, 이제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한때 자신에게 있었던 생기와 아름다움을 남편과 아이에게 빼앗겼다고 믿으며, 그들을 남몰래 증오했다. 그러면서도 그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그 여자의 이름이고, 집이고,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깊은 바다 밑바닥의 난파선, 그 안을 둥둥 떠다니는 부속물. 해수에 불어 형체를 잃고 미끄덩거리는 이끼류, 그것이 바로 자신인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 평범하게 걷고 있는 길 위의 풍경처럼 그들의 결혼생활도 그랬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삶은 늘 곤궁했고, 그럴듯한 성취도 없었고, 애를 쓴 만큼의 반도 보상받지 못했죠.
혼자 사는 것은 편안하고, 압박감이 적고 이십사 시간을 오롯이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있다.
결혼 생활은 나를 버리고 우리가 되어야 하며, 나보다 너를 위해 존재해야 하고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기에 안테나를 늘 세우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결혼생활의 가장 피곤함이 아닐까....
이십사 시간 중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은 존재하기가 힘들다. 남자와 여자 누가 더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고 있다는 이분법적인 단순 논리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혼 생활을 하는 당사자 모두 시간과 체력과 에너지를 희생해 그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서로가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 더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결혼생활은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다만, 위 책 속의 내용처럼 여자들은 결혼을 한 후 육아를 위해 직장생활을 휴직하게 되면 다시 재 취업을 하기 힘든 건 사회 시스템이 문제로 봐야 한다. 재 취업이 힘든 것은 저학력보다 고학력 여성들인데 현재는 남녀 모두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니 이왕이면 기업에서는 늦게까지 야근도 가능한 미혼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엄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현재를 살고 있는 모두의 엄마가 자신을 낳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니 기혼 여성들의 재 취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 그리고 기업도 함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한다.
행복이라는 말은 너무 가볍고 환해요.
행복이란 이해할 수 없는 낙관과 희망에 가깝다는 것을요.
일 년 삼백육십오일 생활을 하면서 매일매일 이십사 시간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의 순간은 찰나이고 시간은 짧지만 그 여운은 길고 오랫동안 각자의 마음속에 잔상으로 남기에 아프고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시간이 더 길더라도 인내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몸의 한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 같았다.
비록 곪아가고 있는 부분이라고 해도, 그것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부분이 저절로 괴사 하여 떨어져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결혼 생활을 종료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부분이라 무어라 표현하기가 힘든 내용이지만, 이혼을 생각하게 할 만큼 힘들었던 기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위에서 결혼 생활에 대해 언급한 부분처럼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희생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한 번쯤은 오게 된다. 그 시간이 오게 되면 누구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독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힘든 마음이 안정되면서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직장생활 중 윗사람에게 깨졌을 때, 동기보다 승진에서 늦어질 때,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부 영향에 의해 일이 진행된 후 그 결과를 자신이 짊어져야 할 때 등 사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때와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일 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사표를 열 번도 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십 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번 정도 마음속으로 사표를 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인생은 사람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발생된다.
한 사람과 결혼하여 백년해로하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의 결과는 저 세상으로 떠나는 순간 나오는 것이리라. 우리는 그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고 그 선택이 최악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