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엄마

by SAHAS



집에 도착한 진서와 찬영은 윗집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손녀딸의 안부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 먼저 방문했다. 운동하러 나간 부녀 중 아빠만 돌아오고 손녀딸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두 분 모두 계속 걱정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잠시 들러 진서 얼굴을 보이기로 한 것이다.


손녀딸이 예쁘게 인사하며 현관에 들어서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제야 한숨 돌리시며 재미있게 놀다 왔느냐고 물어보시면서 반갑게 맞이 하셨다. 태어나서 자기 아빠를 떠나 혼자 놀다 온 것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어느 집 누구랑 놀다 온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하신 모양이다.


"진서야, 놀러 간 집에서 뭐하고 놀았어?"


"오빠가 책도 읽어주고 성도 만들어 줬어요"


"오빠가 있었어?"


"네"


“옷 예쁘게 입고 왔네, 이 옷 입고 놀러 간 거야?”


“아니, 엄마가 갈아입혀 줬어요”


진서는 할머니 물음에 대답을 하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장난감 방으로 휙 사라져 버렸다.

진서의 대답에 물어보고 싶은 게 더 많아졌지만 할아버지랑 사라져 버리니 자신의 아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진서, 엄마가 데리고 놀러 갔던 거야?”


“아니요, 같이 놀아 준 오빠네 엄마가 갈아입혀 준 걸 엄마라고 한 거 같아요”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아?"


"산책하면서 만난 사람이라 자세히는 잘 몰라요"


" ??? "


어머니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진서 아빠를 쳐다본다.


"진서랑 산책 나가서 만난 사람이라 집이랑 연락처만 아는 정도예요. 진서가 그 집에서 논다고 해서 놀다 온 거예요"


“엄마라고 말하는데 궁금하지도 않아?”


“같이 놀아 준 오빠가 엄마 부르는 소리 듣고 따라 하는 거 같은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러세요”


어머니가 더 물어보기 전에 진서를 데리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할아버지랑 놀고 있는 진서를 불렀다. 진서 할머니는 진서가 어린이 집에 다녀온 후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현관을 나서는 부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른 나이에 한 결혼도 아니었는데 너무 빨리 이혼을 해 마음이 좋지 않은 찬영 부모님 들은 자신들의 아들이 더 늦기 전에 좋은 여자를 다시 만나길 기대하고 계신다.



진서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내려온 찬영은 옷 가방에서 진서가 아침 산책에 입었던 옷들을 꺼내 빨래 통에 넣으려 했는데 깨끗하게 빨아진 옷을 보고는 다시 한번 산하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껴졌다.

핸드폰을 들어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진서 잘 도착했습니다. 진서 옷까지 세탁도 해주시고, 여러 가지로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그 여자에게 잘 도착했다는 내용과 함께 진서 옷까지 깨끗하게 세탁까지 해서 보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문자로 보냈다.


진서가 그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해서 거실에서 놀고 있는 딸을 불렀다.


"진서야, 아줌마 집에서 재미있었어?"


"응, 오빠도 있었고 엄마가 밥도 맛있게 해 줬어."


"엄마?"


"응, 진서 엄마"


"진서, 아줌마한테 엄마라고 얘기했어?"


"....."


진서의 대답이 끊어졌다.


"괜찮아, 아빠한테 얘기해도 돼"


"... 아니.... 말은 안 했어."


"그랬구나, 오빠는 몇 살이야?"


"몰라, 근데 진서보다 컸어"


"집에 다른 사람은 없었어?"


"응, 오빠한테 또 놀러 간다고 했어."


"그랬어!? "


진서가 그 집에서 노는 게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지금까지 자신의 친구 집에 같이 놀러 가거나 사촌, 친척 집에 놀러 가더라도 다시 놀러 가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한 적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잠시 놀랐다.

헤어지기 전 ‘오빠가 보고 싶다거나 진서가 많이 보채는 날’에는 연락을 달라고 한 것이 아마도 이 약속 때문이었나 보다.


찬영이 거실 바닥에 앉아 놀고 있는 진서를 불렀다.


“진서야”


“응, 왜”


진서가 놀던 것을 멈추고 아빠를 바라보면서 대답을 하다.


“아줌마를 왜 진서 엄마라고 불렀어?”


“음…. 진서를 데리고 집에 가서”


“그럼, 진서 데리고 집에 가는 사람은 다 진서 엄마 되는 거야?”


“음… 진서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맛있게 해 주고, 같이 놀아도 줬어”


“진서한테 잘해 줘서 엄마라고 하는 거야?”


“응, 오빠도 진서랑 잘 놀아줬어”


“집에 아줌마랑 오빠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어?”


“응, 그런데 아줌마 아니고 진서 엄마”


“진서, 엄마 좋아?”


“응, 다연이도 효진이도 집에 엄마가 있어, 근데 진서 집에는 엄마가 없어”


“그런데, 진서야. 아줌마는 진짜 진서 엄마가 아니니까 엄마라고 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럼 진서 엄마는?”


“진서 엄마는 우리 집에서 먼 곳에서 살고 있어서 지금은 만날 수가 없어”


“진서는 진서 엄마가 좋아”


엄마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더 말을 하고 싶지만 심각한 진서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어 찬영은 일단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얘기를 해줘야 하는 건지 말하는 방법도 잘 모르지만 저 아이가 쉽게 이해하고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선뜻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찬영이 진서를 불러 아빠에게 오라고 손 짓을 한 후 진서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히고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했다.


“진서야”


“응”


“다음부터는 오늘처럼 모르는 사람한테 달려가거나 모르는 사람 다리 붙들고 그러면 안돼”


“왜?”


“오늘 진서를 잡아 준 아줌마는 착한 사람이어서 진서를 잘 받아 주신 거지만, 나쁜 사람한테 부딪혔으면 진서가 크게 다쳤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음…”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고모부, 진서 친구들처럼 진서가 잘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밖에 나가면 진서가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지?”

찬영의 물음에 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서가 잘 모르는 그 많은 사람들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야. 나중에 진서가 혼자 밖에 서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도와 달라고 하거나,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거 사준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하거나 그러면 절대 혼자 따라가면 안 되는 거야. 아주 아주 나쁜 사람들은 진서가 다시는 아빠를 만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어, 알았지”


“응”


“절대로 혼자서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거나 쫓아가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찬영은 자신의 다리 위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고 보고 있는 진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면서 이 세상에 좋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기 시작하였다.





그 여자 집에 진서를 놓고 온 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문자가 도착했다.


"진서가 집에 와서 목욕하고 오빠랑 점심도 잘 먹고 지금은 낮잠 자는 중이에요"


“진서 일어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진서 친엄마도 아닌 낯선 여자에게서 딸에 대한 안부 문자를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진서가 낮잠을 자고 있다고 하니 서둘러 집안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집 청소나 빨래 같은 건 어머니와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어서 자신이 신경 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진서에 관련된 것들은 자신이 직접 챙기는 편이다. 특히나 어린이 집 알림 장 체크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봄에는 어린이 집 행사가 많은데 진서는 대부분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참석을 해 주신다. 어린이집 행사에는 대부분 엄마들이 참석을 하다 보니 혼자 아이를 키운 지 삼 년이 다 되어가도 자신이 직접 참석하는 건 아직까지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집 정리를 어느 정도 해놓고 진서 없이 혼자 점심을 먹으니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서 그런지 식사도 일찍 끝났다.


진서 안부 문자 후 두 시간 정도 지난 후 진서가 자고 일어났으니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데리러 오라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진서가 입을 옷을 챙겨 옷 가방에 넣고 백화점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탓에 가까운 대형 마트에서 과일바구니 하나를 구입했다.

반 강제로 아이를 맡겨놓고 빈손으로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닐 뿐 아니라, 하루 중 반나절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여자에게는 아들도 있다고 했으니 미 취학 아이 둘을 보는 건 몇 배로 힘든 일이라는 걸 자신의 누나를 보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옷 가방을 가지러 그 여자가 아파트 입구까지 내려왔다.

아빠를 보러 진서가 따라올 줄 알았는데, 자신의 딸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없이도 이렇게 잘 노는 아이였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왜인지 딸이 서서히 자신의 품에서 멀어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십 여분이 지난 후 여자가 진서를 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상체 크기만 한 진서를 안고 있는 여자를 보니 몸이 먼저 달려가 진서를 받아 안았다. 아무래도 자신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나 보다.

또다시 무심결에 그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핸드폰 문자 알림 음에 정신이 들어 확인하니 그 여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저희 아들 빨래하면서 같이 한 거라 번거롭지 않았어요. 주신 과일은 잘 먹을게요,

진서는 집에 가서 잘 놀고 있나요?"


찬영이 보낸 문자에 산하가 답장을 한 것이다.


"네 다행히 집에서 잘 놀고 있어요, 오빠랑 재미있게 놀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점심도 맛있었다고 하네요"


“재미있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신세를 많이 지기도 했지만 이렇게 끝내는 것이 아쉬운 찬영은 여자에게,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문자를 보낸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답장이 왔다.


"서산하 에요"


핸드폰에 찍힌 글자를 보는 찬영의 얼굴에 살포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는 윤찬영이라고 합니다."


찬영은 서둘러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오늘 다시 한번 정말 감사했습니다. 서산하 씨"


“저도 아들 말고 딸이랑 노는 건 처음이라서 재미있었어요."


'딸이랑 노는 게 처음이라 재미있었다'라고 하는 답장을 보는 순간 찬영은 가슴 설레는 쿵쿵거림을 느꼈다.

자신의 옆에서 얌전히 앉아 티브이를 보는 진서를 보면서 딸이 오늘 아빠한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을 해 준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했다.

찬영의 핸드폰에 저장되었던 ‘그 여자’는 어느새 ‘서산하’로 바뀌어졌다.


찬영은 저장된 산하의 연락처를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핸드폰을 닫아 버렸다.

지금까지 이상형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오늘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자신의 이상형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여자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마음에 든다고 해도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진서가 오빠가 보고 싶다고 해도 연락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그 여자에게 가고 있는데 진서를 핑계로 만남을 가지는 건 절대 안 되는 일이다.

다른 무엇보다 진서에게 친엄마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서가 그 여자를 자주 만나게 되면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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