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영은 업무 회의를 위해 회의실로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난 토요일 우연히 만났던 여자가 기획팀 사무실에 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딸 진서가 자신에게 준 선물 같다는 생각했던 여자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늘 그렇듯 사무실을 지나오면서 스치듯 본 얼굴이라 확신을 할 수 없어서 돌아가 다시 확인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 만 회의 시간이 다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쳐야 했다.
회의를 하는 내내 자신이 본 여자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회의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다.
늘 월요일 오전 회의가 끝나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 오전 회의로 인해 처리하지 못했던 업무를 처리하는데, 오늘은 회의가 끝난 후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내려가서 자신이 그 여자를 제대로 본 것이 맞는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찬영은 구내 식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중 한 사람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식사를 시작하지도 않고 천천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잠시 후 기획팀 김지은 팀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오는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 여자 이름이 '서산하' 라고 했다.
여기서 자신이 인사를 건네면 저 여자는 분명히 깜짝 놀랄 것이다. 다시는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이렇게 이어진 인연을 그냥 흘려 보내는 건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여자에게 향했다.
"서산하씨 안녕하세요? 여기서 다시 만나네요"
" ........ "
역시나 저 여자는 깜짝 놀라 자신의 얼굴을 바라 볼 뿐 대답이 없다.
"본부장님, 식사하러 오셨어요? 서산하씨 저희 기획팀 새로 온 대리예요"
산하를 대신해 김지은 팀장이 대답을 해 준다.
"새로 출근하는 직원이 서산하 대리였군요.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럼 식사마저 하세요"
윤찬영 본부장은 산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자신의 자리로 가서 식사를 시작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많은 직원들은 사적으로 여직원과 인사 나누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윤찬영 본부장이 새로 온 기획팀 대리한테 먼저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 삼삼오오 테이블에 있는 직원들끼리 수근 거리기도 했다.
기획팀 미팅 룸에서 해외 출장 일정을 정리하고 있는 산하 옆자리로 김지은 팀장이 살며시 다가와 앉으면서 윤찬영 본부장이랑 친한지 물어봤다.
"윤찬영 본부장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동네 주민이에요. 우연히 만나서 이름만 아는 정도예요."
"그래?!"
"윤찬영 본부장 나랑 입사 동기이면서 절친이야. 나이는 나랑 동갑 서른여덟. 싱글, 네 살 딸이 있어."
두 사람이 친한 동기라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사적인 내용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니 ,
"네"
"산하 대리! 본부장 돌싱이지만 성격도 괜찮아. 비주얼도 저 정도면 좋은 편에 속해, 딸이 네 살인데 아주 귀엽고 예뻐. 네 아들 준수하고 나이차도 딱 좋고"
"애들 소개팅 시키라고요?"
"뭐! 방금 그 말 너답지 않게 재미있었어"
"애들 말고 너랑 본부장이랑 잘해보라는 얘기야"
"...."
“식당에서 보니까 본부장이 너한테 호감 있어 하는 거 같아서 말하는 거야, 근데 본부장 너 싱글 인 거는 아직 모르는 거지?”
“네”
"지금 당장 뭘 하라는 게 아니야, 괜찮은 사람이 호감 표시하면 그냥 넘기지 말라는 거야"
"같은 회사 사람이랑 얽히는 거 부담스러워서 싫어요. 아시잖아요."
"알지, 알아, 근데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너한테 먼저 인사하는 거 보면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거야”
"입사 한지 얼마 안 된 직원이 본부장이랑 인사만 주고받아도 뒤에서 수군대요. 점심에 식당에서 본부장님이 인사만 하고 가셨는데도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어보잖아요"
“네가 사람들한테 주목 받는 거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 나도 잘 알지, 오늘 일로 서산하 대리 기획팀 직원인 거 한 번에 알려져서 앞으로 일하기 편하게 됐다고 좋게 생각해. 그리고 지금은 십 년 전하고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 … "
"왜? 혹시 준수 아빠한테 얘기 들어갈까 봐 그러는 거야?"
"남남된 게 언젠데 걱정을 해요. 그냥 이번에는 조용하고 순탄하게 직장생활 오래 오래 하고 싶어서요"
김지은 팀장은 산하가 대학을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산하의 사수이자 멘토였다.
나이답지 않게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음으로 양으로 옆에 끼고 다니면서 아꼈던 후배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직장 내 타 선배나 동료들에게도 나쁜 말 한번 나오지 않는 바른 사람이어서 동기인 찬영과 소개팅을 주선하려고 했었는데, 서산하라는 보석을 알아 본 직장 선배가 먼저 가로채 가는 바람에 자신이 추진하려고 했던 소개팅 얘기는 꺼내 보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찬영이 산하를 먼저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조금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하가 어린 나이에 나이 차가 꽤 나는 사람과 사내 연애를 하는 게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선배도 산하에 비해 나이가 좀 많은 것만 빼면 비주얼, 학벌, 인성 모두 괜찮은 사람이라 잘해보라고 했었다.
그렇게 이 년 조금 안되게 연애를 하던 산하는 선배인 자신보다도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서 청첩장을 내밀었다.
가장 예쁜 나이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너무나 예뻤던 산하는 그렇게 결혼을 했고 매번 자신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했었는데 어느 날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준서와 둘이서만 살게 되었다고 좋은 자리 있으면 연락 달라고 문자가 왔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기획팀 티오가 생기면서 경력직으로 이력서를 제출해 보라는 자신의 말에 알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한 후 한 달여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경력직 채용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보내 왔다.
똑. 똑똑똑. 이 노크 소리는 기획팀 김지은 팀장이다.
"들어오세요"
"본부장님, 내일 마케팅 팀에서 진행하는 회의 참석하시죠?"
김지은 팀장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다른 팀이랑 조율하고 최종 시안이라고 해서 저도 참석합니다"
"그 회의에 저희 기획팀 서산하 대리 참석시키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팀장급 이상만 참석하는 회의에 기획팀 대리를 참석시키려고 하는 이유가 있나요?"
"대리이기는 하지만 차기 팀장 자리 이어받을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미리 적응 좀 시키고 싶어서요"
김지은 팀장은 첫 출산 후 산후조리 한 달 만에 업무에 바로 복귀할 정도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욕심만큼 능력도 있는 사람이라 직원들 평판도 좋기 때문에 기획 팀장을 오래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갑자기 차기 팀장 자리를 왜 걱정하고 그래. 앞으로 십 년은 더 할 것처럼 일 하면서"
"동기님 아, 이 년만 있으면 내 나이가 사십이야, 팀장 자리 그렇게 오래 차지하고 있으면 밑에 직원들이 욕해. 산하 대리 과장되면 팀장 자격 생기니까 그때까지 업무 조금씩 넘겨주면서 트레이닝 좀 시키려고"
"음"
찬영이 대답을 잠시 보류하고 있는 사이 김지은 팀장은 찬영 사무실 소파에 앉으면서 산하에 대해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찬영, 혹시 우리 서산하 대리한테 관심 있어?"
"무슨 말이야?"
"그 사람 많은 식당에서 굳이 우리 자리까지 찾아와서 남들이 다 보는 데도 인사 할 정도면 관심 있다는 뜻 아닌가요?"
"아는 얼굴이라 반가워서 인사 한 건데, 그렇게 티가 났어?"
"흐흐흐, 내가 윤찬영 본부장님 성격을 모르면 모를까, 남자도 아니고 여자한테 네가 먼저 아는 척하는 거 나 회사 입사이래 처음 봐"
찬영은 김지은 팀장 말에 별 다른 대꾸 없이 그냥 듣고 만 있는 중이다.
"산하 첫 직장이 이 회사였어, 신입사원 때 내가 사수였고, 결혼하면서 직장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하고는 연락 끊었지만 나하고는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었어"
"여기서 직장 생활했었어?"
"응, 산하 얼굴도 예쁘지만 차분하고 조용하고 똑똑하기도 하고 일도 잘해서 내가 엄청 예뻐했었어"
"오래 일한 건 아닌가 봐,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 보니까"
"이 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결혼했어. 나이는 올해 서른 네 살, 일곱 살 아들이 있어. 잘 생겨서 내가 둘째 사위로 점찍어 뒀어"
찬영은 둘째 사위로 점 찍었다는 김지은 팀장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편이 뭐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일찍 결혼을 했어?"
"결혼할 때는 회사 씨씨였는데 지금은 다른 업계에서 일하고 있어,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다른 업계로 옮겼어. 남편이랑 나이차가 좀 났는데 남자 집안에서 산하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엄청 서둘렀어"
"회사 씨씨?"
"어, 우리 회사 전산팀 선배였어"
"아! "
"근데 지금은 싱글이야, 아들이랑 둘만 살아"
" ??? "
찬영은 무슨 뜻이냐는 듯 놀란 얼굴로 김지은 팀장을 바라보았다.
"이혼한지 올 해 이 년 됐어."
"그러면, 이혼하면서 생계유지 때문에 다시 취업한 거야?"
"그건 아니야, 남편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랑 재산 분할도 꽤 해줘서 먹고 사는 건 문제 없어.
산하 이혼할 때도 남자 집안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 반대할 만하지 어디서 저런 애를 다시 만나겠어"
“그렇긴 하지, 그런 사람 또 없지”
“오, 그 말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진심인데! 하하하"
김지은 팀장이 찬영을 놀리는 듯 크게 웃었다.
"산하가 직장 생활 오래 한 거는 아니지만 내가 볼 때 능력 있는 사람이야.
결혼하고도 관련 업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거 남들 좋은 일 시키는 거 같아서 기획팀 티오 생겼을 때 원서 넣어보라고 내가 귀 뜸해 줬는데 합격했더라고 인사팀 총괄하는 본부장님! 당신이 면접 봤는데 기억 안나?"
"면접을 하루에 몇 십 명을 보잖아. 일하는 중에 여자 얼굴 보는 것도 아니고"
김지은 팀장은 찬영에 말에 동의를 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산하에 대한 정보는 여기까지.
네가 마음은 있는데 기혼자라 생각하고 포기할까 봐 기본 정보만 알려주려고 온 거야. 내가 보기에 너한테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네가 생각하기에도 저 여자다 싶은 생각 들어지면 누가 또 채 가기 전에 얼른 서둘러"
"누가 또 채 가다니?"
"그런 게 있어요. 그건 나중에 잘 되면 그때 얘기해 줄게.
본부장님, 그래서 서산하 대리 회의 참석 여부는 어떻게 할까요?"
"아, 그렇게 해. 김지은 팀장이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고 하니 회사에서는 땡큐 지”
"알겠어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볼 테니 우리 서산하 대리 생각 너무 많이 하지는 마세요. 애 닳아 없어질라"
김지은 팀장은 마지막까지 찬영을 놀리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윤찬영 본부장은 산하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김지은 팀장 얘기에 오히려 주말에 만났던 산하의 모습이 떠 올라 일이 더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자기가 산하에게 관심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와 자신이 알고 싶어 했던 것들을 알려주고 가는 걸 보니 동기 하나는 잘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