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근무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김지은 팀장이 산하를 자신의 자리로 불렀다.
"서산하 대리, 조금 후 있을 FW 마케팅 관련 회의 나랑 같이 들어 가."
"제가요? 그 회의 팀장급 이상만 참석하는 자리잖아요."
"기획팀이니까 마케팅 운영 방향 미리 알고 있어야 업무 진행할 때 수월 할 거야. 다른 팀원들 업무 체크할 때도 도움이 될 거고."
"네, 알겠습니다."
산하는 어제 이후 찬영과 다시 마주칠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회의에 참석하라는 김지은 팀장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찬영을 만나게 되면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다 동네 주민으로 같은 회사 내에서 인사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이인데 이상하게 찬영을 만나는 것에 자신이 유독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회의는 마케팅팀 주관 회의이다 보니 십 삼층 회의실에서 진행을 하기 때문에 산하와 김지은 팀장은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산하는 상품개발본부가 있는 십사층을 제외하고 다른 층에 방문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김지은 팀장이 마케팅 팀 직원들과 회의에 참석한 다른 팀장들에게 산하를 소개해 주었다.
"여기는 기획팀 서산하 대리입니다.
앞으로 업무 관련 회의는 저랑 같이 참석하니까 저한테 전달할 자료나 내용 있으면 서산하 대리한테도 같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지은 팀장님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산하가 직원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찬영은 회의실 문 앞에 도착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인사가 끝난 후 산하를 가볍게 한번 바라본 후 자리에 착석했다.
회의 시간이 늘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찬영의 업무 스타일을 아는 직원들이 모인 자리라 군더더기 없이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오늘 회의 안건은 차기 시즌 메인 노출 상품 선정, 신상품 출고 일정 확정, 광고 방향 및 콘셉트 확정, 광고 노출 매체 선정 등이었으며 모든 안건에 대해 일차 구두 보고를 받았던 터라 찬영도 꼭 필요한 질문 외에는 하지 않았다.
산하는 처음 참석하는 회의였지만 자신이 마케팅 팀 업무를 위해 챙겨야 할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회의 내용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중이다.
찬영은 회의 중간중간 산하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면서 여유롭게 회의 내용을 검토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회의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는 건 자신만 아는 비밀이다.
찬영은 마케팅 직원들에게 고생했다는 인사로 회의를 끝냈다.
회의가 끝난 후에야 산하가 찬영이 앉아 있었던 자리를 얼굴을 돌려 바라보는데 찬영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회의실을 이미 나갔을 거라 생각하고 보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찬영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자신이 더 놀라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서산하 대리님, 저랑 차 한잔 할 시간 있으세요?"
비상구로 향하는 산하를 찬영이 불러 세웠다.
산하가 당황한 얼굴로 김지은 팀장을 바라보자,
"서산하 대리 시간 있어요, 본부장님"
김지은 팀장은 산하에게 동네 주민끼리 차 한잔 마시고 오라며 산하와 찬영을 엘리베이터에 태워 내려 보내고 십 삼층에 있던 직원들은 윤찬영 본부장이 서산하 대리랑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 카페로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자기들끼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 층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이동하는 동안 별 다른 얘기는 하지는 않았다.
카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찬영은 에스프레소를 산하는 밀크 티를 각각 주문하고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회사에서 다시 만나서 깜짝 놀랐어요."
찬영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저는 처음에 본부장님 닮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나 어디서 봤어요?"
"월요일 날 식당 가는 데 제 앞쪽에서 가고 계셨거든요. 그때는 비슷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인사하러 오신 모습 보고 놀랐어요."
"그때 처음 보셨구나."
카페 직원이 주문한 차를 직접 가져다주었다.
"저는 월요일 날 십사층 대회의실로 가는 길에 기획팀 사무실에 있는 서산하 씨를 봤어요. 그때는 스치면서 본 거라 진짜 서산하 씨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구내식당도 잘 안 가는 데 그날은 식당에 일찍 내려가서 들어오는 사람 얼굴 일일이 다 확인했어요."
"아 … "
"제가 인사 갔을 때 많이 놀라던데 지금은 괜찮아요?"
"이제는 괜찮아요. 그때는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을 봐서 놀랬던 거라서요."
"저랑 다시 볼 일 없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저는 정말 정말 필요한 순간이 오면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아예 볼일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해서요. 그것도 직장 상사로"
"직장 상사로 다시 만나서 부담스러우신 거예요?"
"아니라고는 말 못 해요. 이렇게 둘이 차만 마셔도 사람들이 수근거릴 테니까요.
뒷말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출근한 지 이 주 밖에 안 된 직원이 본부장님이랑 친하다고 소문나는 건 원치 않아서요."
"그럼, 회사에서는 공적으로만 만나는 걸로 해야 할까요?"
"최대한 그렇게 해 주시면 제가 좀 편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얼마나요?"
"네?"
"회사에서 공적 만남만 해야 하는 시간을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음... 회사에서 제가 본부장님이랑 사적으로 만날 일이 있을까요?"
"이렇게 둘이서만 차 마실 때, 둘이서만 점심 먹고 싶을 때도 있을 거 같아서요"
"혹시, 본부장님 저한테 사적으로 관심 있으세요?"
"네, 관심 있어요. 우리 회사 직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적으로 관심 가져보고 싶은 사람이에요. 서산하 씨는"
망설임 없는 찬영의 직진 고백을 들은 산하는 놀라서 주위에 누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제가,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럴게요, 근데 대답을 오늘 중으로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오늘이라고 하시면?"
"퇴근할 때 제 차로 같이 가요. 같은 동네니까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그때까지 시간 드리면 될까요?"
"저, 오늘 야근해야 하는데, 길게는 아니고 두 시간 정도 늦어질 거 같아요"
"그 정도 늦는 건 일상이니까 괜찮아요. 그럼 퇴근 시간쯤 제가 문자 할 테니까 그때 다시 봐요"
"네. 그럼 먼저 일어나 볼게요"
"그러세요"
산하 대리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오는 내내 산하는 찬영이 자신에게 한 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김지은 팀장 말처럼 식당에서 자신에게 인사를 했을 때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고백을 받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남자는 실행력이 좋은 사람인지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이 큰 사람인지 구분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혼을 하고 난 후 다시 연애를 하는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인지 막상 기습적인 고백을 받게 되니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복잡한 마음으로 자리로 돌아온 산하는 컴퓨터를 켜고 자리 앉았지만 해야 하는 일은 진도가 나가지 않아 모니터 화면은 처음 그대로 인 상태로 머물러 있다.
김지은 팀장도 그런 산하가 눈에 들어왔는지 산하를 불렀다.
똑똑 산하의 책상을 두드리는 데도 반응이 없어서 산하를 부르면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서산하 대리?”
“어, 팀장님 죄송해요. 무슨 일 있어요?”
“미팅 룸에서 차 한잔 할 까?”
“네”
두 사람은 기획팀 미팅 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왜, 윤찬영 본부장이랑 무슨 일 있어?”
“그게 … “
“네 표정을 보니까 대충 무슨 일인지 알겠네”
산하는 별다른 얘기 없이 김지은 팀장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다.
“정확하게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너한테는 물어보지 않을게.
그냥 내가 아는 윤찬영이라면 너한테 어떤 말을 했을지는 알 것 같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나쁜 방향 말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라는 거야.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거지만 한 번 실패했기 때문에 두 번째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만든다는 건 알지, 꼭 남자 만나서 같이 살아야 하는 게 좋은 인생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이 다가왔을 때 잘 잡는 것도 능력이야. 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김지은 팀장은 산하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미팅 룸에서 나온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하던 업무를 계속 이어 나갔다. 김지은 팀장이 미팅 룸에서 나간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산하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했다.
김지은 팀장은 보고 있던 지난주 매장 별 판매실적 보고서에 사인을 한 후 담당자 민석에게 결제 판을 넘겨준 후 사무실을 나가 한층 아래에 있는 찬영의 사무실로 향했다.
똑. 똑똑똑
“들어오세요”
“본부장님, 지금 많이 바쁘세요?”
“퇴근 시간 다 되어가는데 김지은 팀장이 무슨 일이야? 설마 한잔하자고 온건 아니지?”
“저도 자식이 기다리는 사람이에요. 본부장님”
“이 시간에 무슨 일 있어?”
“응,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물어보려고 왔어”
“물어봐”
“어허, 아시면서 왜 모르는 척하실까요?”
“모르니까 물어보지, 뭔데”
“서산하 대리한테 무슨 말했어?”
“그걸 네가 왜 궁금해하는데”
“서산하 대리가 갑자기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어서 네가 뭐라고 했길래 그러는지 궁금해서 그런다”
“일에 집중 못할 만큼 충격적이었나!”
“그러니까 뭐라고 그랬냐고”
“사적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고 고백했어”
“헐 … 진짜!? 고백했다고?”
“뭘 그렇게 놀라는데, 그러라고 서산하 씨에 대해서 말해준 거 아니야?”
“그러라고 말해 주기는 한 거지만 이렇게 실행력이 뛰어날 줄은 몰랐지”
“오늘까지 대답해 달라고 해서 그런 건가?”
“뭐야, 답도 그렇게 빨리 해 달라고 한 거야! 이런 나쁜 남자 같으니라고”
“야근해야 된다고 하더니 더 늦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뭐야, 벌써 걱정하는 거야”
찬영은 김지은 팀장의 말에 머쓱해져서 한쪽 팔을 들어 손을 흔들며,
“궁금한 거 다 해결됐으면 이제 가서 하던 일 마저 해”
“말 안 해도 일하러 갈 거야. 보는 눈 많은 데 산하 데리고 나갔으니까 뒷말 안 나오게 잘하고”
“알았어”
“갈게 그리고 고백은 잘한 거 같아. 윤찬영이 실행력도 좋으니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김지은 팀장은 쌍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찬영의 사무실을 나갔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