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퇴근해요

by SAHAS




미팅 룸에서 김지은 팀장과 이야기한 후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로 돌아온 산하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모니터에 다시 집중 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여름 시즌을 위해 미리 해야 할 작업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일로 흘려보낼 시간이 없다.


산하는 먼저, 캐리 오버 베스트 상품 리스트를 작성한 후 베스트 상품들이 재고 부족으로 판매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재 생산 물량을 책정하는 중이다. 생산 물량 책정을 잘못하면 시즌 마감 후 과다 재고가 발생될 수 있기에 적정 물량을 책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작업이다. 그래서 최근 삼 년간의 판매 데이터를 취합해 동 기간 판매 데이터를 참고하여 재 생산 물량을 책정하여 보고서를 작성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는 물류에 남아 있는 전년도 여름 상품 중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많이 남아 있는 상품들에 대한 처리 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상품의 재고량이 얼마나 되는지 리스트를 만든 후 최우선 적으로 처리해야 될 재고들을 골라 다른 부서와 프로모션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프로모션 기획은 영업지원 팀과 협의 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부서들이 한눈에 알아보기 편한 자료로 만들어야 한다.


두 가지 업무에 대한 보고서 작업을 끝낸 산하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소요가 된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컴퓨터 전원을 끄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저녁 아홉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핸드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들도 여러 개가 있었다.

찬영의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아들 준서에게 늦는다는 전화를 하는 것도 잊어버려서 아들한테서도 여러 번 전화가 왔는데 진동으로 해 놓아서 그런지 받지를 못했다. 엄마를 많이 기다리고 있을 준서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준수야, 엄마한테 전화했었네, 저녁은 먹었어?"


"응,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같이 먹었어. 오늘 많이 바빴어?"


"응, 정신이 없었어. 전화했는데 못 받아서 미안해."


"괜찮아. 엄마 밥은 먹었어?"


"아직 못 먹었어. 일이 이제 끝나서 집에 가서 먹으려고"


"늦었는데 밥 먹고 집에 와 엄마."


"엄마 배고플까 봐 걱정해주는 거야? 엄마 지금 출발해도 열 시 넘어야 도착하는데 할머니 집에서 잘 거야?"


"아니야, 할머니랑 집으로 갈 거야. 혼자서 자도 괜찮아. 어차피 자고 있는 동안 엄마 올 거잖아"


"그래도 괜찮겠어. 혼자 자는 거 안 무서워?"


"나는 내 침대에서 자는 게 좋아."


"알았어, 그러면 엄마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할머니랑 조심해서 집에 가"


"응"


일곱 살 아이지만, 독립심이 강한 건지 혼자서 자는 거에 대해 크게 두려움이 없다. 자기가 해야 되는 일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도 준수한테 잔소리 한번 해 본 적이 없는 아들이다.



일층 카페에서 산하를 먼저 보낸 후 찬영은 그 자리에서 시간을 조금 더 보낸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마케팅 회의 때 확정된 내용으로 보고서가 올라와 있었다. 보고서를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찬영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산하의 모습이 생각났다. 단둘이 처음으로 대화를 해 보았는데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그렇다고 내숭이 있다거나 답답하지 않았고 돌려 말하지 않는 자신감 있는 모습이 좋았다.


똑똑똑, 찬영의 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네”


김선호 과장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본부장님, 저희 퇴근하는데 시키실 일 있으세요?”


“아니요. 퇴근하세요”


“네, 그럼 저희는 퇴근하겠습니다.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마시고 일찍 들어가세요”


“그럴게요”


모든 직원들이 퇴근 한 사무실은 적막하면서도 무척이나 조용하다.

여덟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어서 퇴근을 하려고 책상을 정리한 후 산하에게 문자를 보냈다.


"차가 지하 이층에 있는데 주차장 입구에서 만날까요, 정문으로 제가 올라가는 게 나을까요?"


문자를 보낸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답장이 없는 것이 산하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여 찬영은 자신의 사무실을 나와 비상계단을 통해 위층에 있는 기획팀 사무실로 향했다.

다른 팀 직원들은 모두 퇴근을 했는지 사무실 불이 꺼져 있고 기획팀 사무실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야근이 잦은 팀이라 다른 직원들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용히 창문으로 안쪽을 살펴보니 산하 외 다른 직원들도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찬영은 산하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자신의 사무실 돌아와 소파에 앉으며 딸 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 자신의 전화는 늘 진서가 받는다.


"여보세요?"


또랑또랑한 진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서야, 아빤데 회사에서 조금 더 있다 퇴근 할거 같은데, 할머니 집에서 자고 있으면 아빠가 진서 안아서 집으로 데리고 갈게"


"응"


"할머니 전화받으세요 해"


핸드폰 너머로 할머니 전화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어머니가 전화를 넘어 받으셨는지 목소리가 들린다.


"저예요. 퇴근이 조금 더 늦어질 거 같아서요. 진서 자고 있으면 제가 안아서 데리고 갈 테니까 잘 시간 되면 재워 주세요"


"오늘은 많이 늦네, 저녁은 먹은 거야?"


"아직이요, 일이 좀 많아서 끝나고 간단하게 먹고 들어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다. 운전 조심하고"


"네"


찬영은 산하가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테이블 한쪽에 있는 책들 중에서 글씨를 읽지 않아도 되는 잡지책을 선택해 읽기 시작했다. 책을 몇 장 넘겼는지 모를 때쯤 문자 알림 음이 들려 확인하니 산하가 보낸 것이었다.


"본부장님, 답장이 늦어서 죄송해요. 지금 퇴근하려고 하는데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으니까 기다려야죠"


"너무 늦게 끝내서 죄송해요. 지금 나갈게요"


"사무실에서 이 분만 기다릴 수 있어요?"


"네. 그럴게요"


잠시 후, 기획팀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직원들이 창문을 바라보니 윤찬영 본부장이 사무실 밖에 서 있었다.

사무실까지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산하가 직원들에게 먼저 퇴근하겠다는 말을 남긴 후 사무실 밖으로 나오니 찬영이 다가왔다.


"저 혼자 내려가도 되는데 뭐 하러 올라오셨어요"


"이 밤에 여자 혼자 엘리베이터 타는 건 위험하니까 제가 오는 게 낫죠. 이제 퇴근할까요?"


"네"


산하는 뒤에서 느껴지는 직원들의 시선을 피해 찬영과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찬영과 단 둘이 차에 탄 산하가 어색함과 불편한 마음에 창 밖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색해하는 산하의 마음을 느꼈는지 찬영이 먼저 말을 걸었다.


"서산하 씨는 출근한 이후 야근 많이 했어요?"


"출근한 지 이 주 밖에 되지 않아서 많이는 아니고 주 이 회 정도 한 것 같아요"


"출근 한지 이 주 밖에 안됐는데 주 이회면 많이 한거 아니에요? 저도 평소 그 정도 야근은 해요 오늘보다 더 늦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오늘은 저 때문에 일부러 야근하신 거 같아서 죄송하네요”


"오늘은 제가 같이 퇴근하자고 한 거니까 미안해하지 말아요"


"제가 처음 얘기했던 시간보다 더 늦어져서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저녁은 먹고 하는 거예요?"


"아시겠지만 일을 하다 중간에 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먹지 않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럼 오늘도 일을 중간에 끊을 수 없었던 하루였나 봐요"


"일을 끝내고 보니까 아홉 시더라고요. 아! 본부장님 저 기다린다고 식사도 못하셨겠네요.

집 근처에서 간단하게라도 먹을까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기다리시게 했으니까"


"오늘은 특별히 제가 부탁한 만남이니까 제가 살게요"


회사에서 출발하면서 가볍게 나누던 대화 이후에 찬영은 운전하는 틈틈이 산하를 가끔씩 바라 볼뿐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산하는 창문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에 눈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산하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찬영의 차는 산하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저녁 식사가 어려운 상태라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일본식 선 술집에서 가벼운 안주를 식사 삼아 먹기로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산하가 찬영에게 식사를 권했다.


"배 많이 고프실 텐데 어서 드세요"


"네, 산하 씨도 드세요"


식사를 시작하면서 대화는 일시 중지되었다.


둘 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공복 상태였기 때문인지 먹는 것에 집중하기로 약속이나 한 듯 천천히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후 찬영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먹으면서 천천히 대답해도 되니까 다 드세요"


"그럴게요"


"일하느라 바빴을 텐데 제 고백에 대한 생각은 정리가 됐어요?"


"본부장님 고백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질문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뭐든지 물어보세요"


"회사 직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적으로 관심 가져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에 대한 정확한 뜻이 궁금해요"


"말 그대로 에요. 저는 서산하 씨랑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이렇게 진지한 만남을 가지고 싶어요"


"왜요?"


"음. 서산하 씨가 마음에 들었어요. 처음부터"


"처음부터 라는 건....?"


"산책로에서 만났을 때. 그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혼자 짝사랑하다 실연당한 것처럼 마음이 심란했었어요"


찬영은 잠시 말을 멈춘 후 물 한잔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혼자 심란했던 와중에 예상하지도 못한 장소에서 산하 씨를 보게 돼서 너무 반갑고 기쁜 마음에 식당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었어요. 그런데 김지은 팀장한테서 무척이나 도움 되는 얘기도 들었고, 만나기 힘든 산하 씨가 마케팅 회의에 참석한다고 하니까 오늘 같은 기회는 다시없을 거라는 생각에 무조건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산하는 어제 식당에서의 만남 이후 있었던 일에 대해 찬영에게 들으면서 김지은 팀장이 왜 자신에게 그런 얘기를 했는지 이해를 했다.


"이제 본부장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할 차례네요.

우선 제가 다시 연애를 할 거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본부장님한테 고백을 받기 전까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아직까지도 마음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어요"


"음... 저도 연애라는 거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어제 저녁 이후로 마음이 바뀌었어요.

제가 이성적으로 매력이 없어서 마주 보면서 얘기하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지는게 아니면 길게 고민하지 말고 나 믿고 만나 봐요, 산하씨 절대 후회 안 하게 될 거예요"


" '나'를 믿어 보라는 말에 한 번, 후회 안 하게 될 거라는 말에 또 한 번 끌리네요"


"우리 둘 다 한 번씩 경험해 봤잖아요, 서로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느라 시간 허비하지 말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우리한테 더 좋다는 생각이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압박이 더 느껴지네요"


"하하하 미안해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좋아요. 진지하게 사적 만남 가져 봐요 우리"


"흔쾌히 허락해 줘서 고마워요. 오늘 허락한 거 절대 후회 안 하게 해 줄게요"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얘기해 봐요"


"사적 만남은 당분간 회사 밖에서만 했으면 해요. 본부장님이랑 사적으로 만나는거 알려지면 회사 생활이 편치 않을 거 같아요"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08화유일한 사적 관심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