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끝내고 집에 가자는 아빠의 말에 진서는 조금 더 놀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집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더니 자기 앞을 지나가는 여자를 뒤쫓아 뛰어다가 그 여자의 다리에 부딪히고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머리를 세게 부딪혀 아파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다친 것은 아닌 듯했다. 모르는 아이가 자신의 다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지만, 여자는 소리를 지르거나 야단을 치지 않고 아이를 잠시 그대로 두었다. 뭐라고 둘이 속삭이는 모습에 다시 몸을 움직여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진서를 불렀다.
진서를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얼굴을 들어 나를 본 후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던 진서 팔을 급하지 않게 풀어내어 아이를 안아 들면서 이름과 아빠가 맞는지 다시 확인을 하고 있었다.
찬영이 생각하기에 자신과 딸은 닮은 부녀지간인데 재차 확인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게 생각되었는데,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자기 자식이라고 내놓으라고 하면 의심을 해 보는 게 맞다 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재차 확인하는 여자의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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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집에 가기를 거부하며 자신에게 오지 않던 딸이 그 여자가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자 그 집으로 가기 위해 자신에게 안기는 순간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꼈었다. 처음 본 여자를 덥석 따라가겠다고 하는 딸도 놀라웠지만, 집에 가기를 거부하는 딸을 어찌하지 못해 그 여자 말을 따라야 하는 자신의 처지도 불쌍했다..
겉으로 보이는 여자의 이미지는 나이는 어리지만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에 아이를 잘 다루는 모습이어서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 교사쯤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사회생활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면서도 왜 그리 경솔하게 섣부른 판단을 했는지 스스로를 자책했다.
무엇보다 진서가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말을 하거나 물어본 적이 없어서, 아이가 더 크면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집에 엄마가 없어서 가기 싫다고 했다는 여자의 말에 딸이 어리다고 어떤 말도 해주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진서의 말을 전달해주는 여자의 행동은 자신과 진서 둘 모두를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여자의 모습에 찬영은 기분 좋은 설렘을 느꼈다.
이 여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손녀딸이 운동에서 돌아 올 시간이 되어가니 할머니 가 기다리고 계셨다.
혼자 들어오는 아들을 보면서 진서의 행방을 물으신다.
"동네 친구 집에서 놀고 오기로 했어요"
"동네 친구 누구? 이런 아침에 남의 집에 애를 맡기고 오는 아빠가 어디 있어. 너답지 않게"
"친구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그 집에서 데려갔어요"
"이름 말해봐 내가 가서 데리고 올게"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친구랑 노는 게 나을 거라고 그 엄마가 그랬어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자신들 말고 친구 집에 딸을 혼자 보낸 적 없는 아들이 손녀딸을 친구 집에 두고 왔다고 말을 하니 할머니는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시고 가셔서 쉬세요. 저도 씻고 집 정리 좀 할게요"
"점심까지 먹여서 보낸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두 분 이서 식사하세요"
어머니는 지금 말을 하는 사람이 진짜 자신의 아들이 맞냐는 듯이 쳐다봤지만, 찬영은 어머니를 지나쳐 드레스 룸으로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갔다. 진서가 오면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한 어머니는 윗 층으로 올려 가셨다.
드레스 룸에서 찬영이 나왔을 때 어머니는 올라가셨는지 거실에 아무도 없었다.
갈아입을 옷을 화장실 앞에 두고 샤워를 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물을 틀어 샤워부스에서 내리는 물을 맞으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머릿속에 그 여자의 모습이 다시 떠 올랐다.
그 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과 진서는 자신의 황금 같은 주말을 망친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딸을 집으로 데려가 밥 먹이고 같이 놀아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서를 안고 있던 여자를 보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봐 왔던 여자들과 다르게 보였다. 그 여자는 나이에 상관없이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로움이 보였고, 차분하지만 강단 있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찬영은 지금까지 자신이 여자를 원한 적이 없었다. 늘 여자들이 그를 먼저 찾아왔고 자신의 나이가 삼십 중반을 넘으니 부모님도 결혼을 서두르기 원하셨고 그 당시 진서 엄마가 무척이나 따랐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찬영은 결혼 후 가정에 충실했고 자신의 부인을 존중하고 배려했지만 여자들이 기대하는 살갑고 애정 충만한 사랑을 보여주진 못했다. 자신은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고 진서 엄마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결혼하면 달라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혼은 진서 엄마가 생각한 것처럼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부부 중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애정을 주는 사랑을 하게 되면 애정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바다와 같이 크고 넓고 인내심이 많지 않은 한 그 결혼 생활은 오래 유지되기가 힘들다.
진서 엄마는 결혼을 한 후에야 자신이 힘든 사랑을 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 사랑을 오랫동안 지켜낼 만큼의 크고 넓은 마음도, 인내심도 가지지 못했다.
그렇게 진서를 낳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찬영과 진서를 떠났다.
떠난 진서 엄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낳은 딸에 대한 안부를 물어온 적도 찾아와 본 적도 없었다.
진서는 엄마 품에 얼마 안겨 보지도 못하고 영영 이별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자신의 딸 진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가능하다고 하면 그 여자를 놓치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찰나의 행복한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가슴을 울리는 연인을 만나지 못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이 글은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