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Feb 24. 2022

중국 영화 <인생>

중국문화대혁명의 광기에 스러져간 인간들

 

  얼마 전에 <인생>이라는 중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1995년에 나온 영화이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 중에서는 이런 영화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장예모 감독의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보고 있었다 하더라도 차츰 감독의 문제의식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수준 높은 명작이다.     


  영화는 1930년대 중국의 지주계층이 중국 현대사의 격변기 속에서 어떻게 몰락해 갔으며 그 엄청난 수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그들이 어떻게 상황에 적응해 가며 발버둥쳐 왔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 유명한 공리와 ‘패왕별회’에도 나온 바 있는 성격파배우 갈우였다.    

  

  남자 주인공은 대대로 물려져 내려오는 막대한 재산으로 하는 일 없이 노름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무위도식하는 사람이었는데 매번 노름에 지면서 유산을 조금씩 축내가다가 노름고수인 상대방의 노련한 솜씨에 결국은 전 재산을 날려버린다. 그가 소유했던 거대한 집마저 노름 상대에게 비워주게 된다. 집이 완전히 넘어가던 날,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남편의 노름벽에 진저리를 치며 임신한 상태에서 친정으로 가 있던 아내는 남편이 재산을 모두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 노름을 그만두게 되자 그 사이에 친정에서 출생한 갓난아기를 업고 福貴(중국 발음으로 푸꾸이, 남자 주인공의 이름. 이름이 사뭇 시사적이다) 에게 돌아오게 된다. 둘은 과거의 호사를 뒤로 한 채 어렵게 살아가는데 그 사이에 중국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서 지주나 부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인민들 앞에서 처형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지금은 모든 재산을 잃고 가난뱅이로 전락한 福貴는 전에 자기가 살던 집에서 지주로 분류되어 붙잡혀 나오는 그 옛날의 노름상대인 용이를 보고 아연실색한다. 그가 질질 끌려나오는 것을 군중들 틈에 숨어서 지켜보던 福貴는 바로 자기가 처할 뻔했던 운명에 다른 사람이 희생당하는 것을 보면서 전율한다. 살아남는 데에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 하나가 그의 뇌리 속에 깊숙이 박히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회가, 다시 말해서 정부가 요구하는 성분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후로 그는 매 순간 죽음과 맞닥뜨릴 때마다 진땀나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긑에 그 때에 익힌 처세술로 살아남게 되지만 운명의 덫에 걸리는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들 부부의 유일한 생의 희망이던 두 아이이다.     


  역사는 또 바뀌어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장개석 간의 전쟁이 일어나고 그는 전쟁터로 끌려 나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전쟁터에서 그는 그만의 장기이며 전쟁 전의 생계수단이었던 그림자극을 병사들 앞에서 공연하는 일을 하게 되고 그것은 나중에 그에게 인민혁명군에 봉사했었다는 소중한 경력이 된다. 福貴는 그곳에서 그림자극을 공연하며 같이 지내던 춘생이라는 사람과 사선을 넘나드는 우정을 나눈다. 공산당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자 춘생은 공산당이 되어 그곳을 떠나고 福貴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돌아와 보니 큰 딸아이는 아버지가 없는 동안 큰 병을 앓다가 제대로 치료를 못한 나머지 벙어리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부부가 그럭저럭 살아가는 동안 福貴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도 대약진 운동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집집마다 쇠붙이란 쇠붙이는 죄다 공출되면서 그가 유일하게 갖고 있던 쇠붙이인 그림자극에 쓰이는 인형들마저 공출될 위기에 처하지만 마을 반장의 도움으로 그것만은 福貴에게 남겨지게 된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공장의 노동력으로 동원된다.      


  福貴의 둘째인 아들 유경은 부부의 새벽일을 도와주느라 항상 잠이 모자란 상태로 지내던 중, 잠에서 미처 깨지도 못한 채 아버지의 등에 업혀 높은 사람이 온다는 학교의 지도행사에 동원되어 나간다. 그 유경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 운동장의 담벼락에 기대어 잠을 자다가 높은 사람이 탄 후진하는 차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또 발생한다. 동원령을 무시했다가는 당성이 나쁘다는 식의 딱지가 붙게 되고 그로인해 받게 되는 불이익을 염려해서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억지로 아들을 내보냈던 福貴는 학교행사가 다름 아닌, 전쟁 때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춘생의 지도행사이었음을 알고 무자비한 운명의 장난에 몸서리를 친다.

    

  또 세월이 흘러서 벙어리인 딸이 당성이 좋은 홍위병 출신과 결혼을 하게 되고 만삭에 이른 딸이 드디어 산통을 시작하자 부부와 사위는 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병원에는 어찌된 일인지 경험 있어 보이는 나이든 의사는 한 명도 없고 20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간호학교 학생들만이 붉은 완장을 두르고 병원을 호령하고 있었다. 딸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福貴부부와 사위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늙은 의사를 데려오는데 그는 중국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부는 동안 반혁명분자로 낙인이 찍혀서 ‘나는 죄인이오‘ 임을 알리는 고깔을 쓰고 인민들 앞에서 단죄를 당하고 있던 중이었다.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자꾸 주저앉기만 하는 그에게 아무래도 뭔가를 먹인 다음에야 일을 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福貴는 커다란 만두 일곱 개를 급히 사다주게 되고 그것을 허겁지겁 먹던 의사는 급체에 걸려 숨도 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 사이 경험도 없는 간호학교 학생들에게 처치를 받던 딸은 과다출혈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자신들도 어쩔 수 없음을 깨닫게 된 학생들이 교수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그도 역시 급체에 걸린 상태에서 아무것도 손을 쓸 수 없었고 그동안 딸은 결국 숨을 거두게 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계기마다 소품으로 등장하는 것이 ‘만두’이다. 만두는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음식으로서 축하잔치 때마다 어김없이 잔칫상에 오르는 것인데 인민들의 행복과 안녕 그 자체인 음식이다. 그러나 아들 유경이 태어났을 때 그 이름을 만두로 짓자고 아내가 농담 삼아 말하는 장면, 유경이 학교행사에 동원되어 나갈 때 도시락으로 만두를 싸주지만 그 만두를 먹어보지도 못하고 아버지 친구의 차에 치어 죽고 나서 아들의 무덤 앞에 만두를 수북이 놓아주는 장면, 마지막으로 사흘을 굶은 의사가 만두를 먹다가 체해서 죽을 뻔하는 장면 등에서 그 평범한 만두마저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인민들의 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개인들에게 불가항력적인 폭력으로 다가왔던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밑에서 개인들은 무력하게나마 자신들의 모든 힘을 살아남는 데에만 집중을 하지만 결과는 속절없이 운명에 패배하고 마는 인민들의 이야기가 과장됨 없이 잔잔히 펼쳐지는 가운데 개인들에게 있어서 국가와 정부와 이데올로기는 과연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강하게 솟아 올라온다.

    

  이것이 단지 모택동 치하 중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인가 아니면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인해 갈등하고 그로 인한 전쟁까지 치루어야 했던 우리나라에서도 무수히 벌어졌던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신봉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서로가 원수로 변해버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태가 우리에게도 벌어진 적이 있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단지 생각의 차이일 뿐인데도 사람들 간에 맹렬한 증오의 불을 당기기도 하고 상대방의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되기도 하며 영원한 저주가 되어서 개인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한 집단이, 한 국가가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고 비틀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바로 이와 같은 서로에 대한 반목과 질시, 저주가 난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상대방은 도저히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될 뿐이며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존재를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차디찬 적개심만이 모든 도시의 모든 거리에 번득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휴머니티라든가 인류애라든가 관용이라든가 하는 것은 발붙일 공간이 없어지고 끝간 데 없는 저주만이 넘쳐나는 것이다.     


  중국의 현대사에서 그러한 상황이 더욱 첨예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던 문화대혁명의 암울한 광기의 시대는 후에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11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 국가,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모택동의 극좌적 오류이며 그의 책임” 이라 규정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인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며 자식을 낳아 기르기도 하며 하루 저녁의 안식에 감사하며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다. 어떠한 수모나 치욕, 비인간적 처우, 모멸감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 앞에서는 한낱 사소한 언어적, 관념적 희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영화는 이와 같이 개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리는 집단적 광기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깜박이며 면면히 이어져 오는 민초들의 희미한 삶에 연민의 눈길을 보내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에 조소를 보내고 있다.

  (2007.12)     

작가의 이전글 제주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