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은 오모니아에 있는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갔다. 이번이 3번째이지만 나는 여기에 올때마다 새로운 흥분을 느낀다. 그리스 문명을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유물, 그 많은 조각과 도자기, 그많은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와 비잔틴미술, 또 그 많은 그리스의 석조 건물과 신전들을 도대체 어떤 말로 요약한단 말인가? 나는 매번 그것들을 대할 때마다 무한대의 바다나 무한대의 하늘을 보는 듯 막막해진다. 그리스의 도시 어디를 가나 빠짐없이 존재하는 고고학박물관을 가보면 그 넘쳐나는 유물들에 기가 질릴 정도가 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쩌면 그렇게 지치지 않는 정열로 이 모든 것들을 먄들었단 말인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유물들의 그 정교함과 우아함, 섬세함과 극한의 예술성을 보노라면 그것을 만든 그 사람들의 생생하게 빛나는 혼이 느껴지곤 했고 나는 그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아득해지곤 했다. 위대하다는 말 밖에는 그리스를 표현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한다. 나는 처음에 이곳 고고학 박물관에 왔을 때 그 전시된 유물들을 보고 이것들이 정녕 3500년~4000 년 전 혹은 그 이전의 유물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하의 그 어둡고 축축한 땅에서 파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 생생한 현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왜 이런 세계를 여태껏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하면서 억울해했다. 중고등학교 때 이 분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왠만한 걸 희생해서라도 예술사(Art History 독일어: Kunstgeschichte) 공부를 했을 터인데 하는 억울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내가 대학에서 전공했던 공부나 독일에서 공부했던 심리학도 재미있었지만 예술사는 그보다 훨씬 더 무궁무진한 신세계로 나를 이끌었을텐데 하는 후회 아닌 후회가 밀려왔다. 이 분야라면 정말 재미있게, 혼을 다 바쳐서 공부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고3때 잠시 고고인류학과에 가고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들떠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전시실로 들어섰다. 1층 전시실은 미케네(Mycanae)문명의 유물들로 시작된다. 전시실에 들어가면 맨 처음 눈에 띄는 것이 뿔 달린 검정소의 머리 부분이다. 미케네의 Grave Iv에서 발굴된 것으로서 양쪽의 뿔이 날렵하고 길게 뻗어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금으로 되어있고 이마에 있는 장미문양의(Rosette) 동그란 꽃과 입도 금으로 만들어졌다. 그 옆의 사자 얼굴은 완전히 온통 금으로 되어있다. 정교함과 아름다움, 사실성, 예술성 등에서 처음에 보았을 때 헉, 하고 말을 잊게 만들었던 작품인데 그 놀라움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 다음 코너로 돌아서면 그 유명한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가 관람객을 맞는다. 이 황금 마스크들은 한 두개가 아니다. 순금을 종이처럼 얇은 금속판으로 만들어서 눈과 눈썹, 코, 입을 실제 얼굴에 꼭 맞는 크기로 만든 데드마스크였다. 이것들을 보는 순간 미케네 문명의 금세공 기술이 얼마나 미친 수준이었는지 인정하게 된다. 이것들은 Grave circle A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는 그런데 나중에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아가멤논 보다 150~200년 이상 앞선 것이라고 하니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이제는 워낙 유명해져서 그냥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로 통한다.
그 다음에는 부장품으로 함께 묻혔던 청동 칼들이 등장하는데 그 화려한 문양과 황금손잡이로 보아 당연히 왕들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칼 등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의 부조들은 나중에 전시된 인장들에서도 발견되는데 그 정교함과 세밀함, 예술적 아름다움은 가히 세계 최고, 최상이라고 할 만하다. 도대체 그들은 저 옛날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 다음에도 이어지는 수많은 장식품, 장신구들의 화려함, 아름다움, 정교함의 극치는 더 이상의 언급이 불필요할 정도다. 그 외에도 토기로 만든 인형들과 각종 포즈의 사람 피구린들(쟉은 조각상), 실생활에 사용됐던 토기와 접시들, 항아리들, 장식품 등의 높은 수준의 실용성과 예술성 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놀라웠던 것들 중에는 그 당시에 이미 토기로 된 후라이팬이 있었고 청동거울이 있었고 뾰족한 항아리를 세워놓는 발 세개짜리 청동 받침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내가 오랫동안 서서 뚫어지게 쳐다보게 만든 오리모양의 크리스털 꽃병?(그릇?)도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산에서 캔 단 한 개의 크리스털을 파고 깎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수준은 이미 최상의(superb) 수준이었다는 것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키클라데스 문명의(기원전 3000~ 2000 년경, 키클라데스 군도의 초기 청동기 시대 에게해 문명의 하나 ) 작품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팔을 겹쳐 앞에서 포개고 서있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키클라데스 여인상(Female Cycladic Idol)이고 그것이 후에 크기가 커져서 발전하여 청년남자 모양의 쿠로스와 처녀 모양의 코레 등이 되었다(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는 머리를 땋아내리고 채색을 한 코레는 그 중 가장 유명함). 또한 크레타 문명의 영향을 받은 프레스코화도 그 색깔의 선명함과 표현된 동작들의 역동성 등에서 높은 예술 수준을 짐작케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머무르게 하는 조각상 중에서 또 지나칠 수 없는 것은 B.C. 460년 경에 만들어졌다는 청동의 포세이돈 상이다. 두 팔을 쫙 벌리고 서서 오른 손에는 창을 들고 있었으리라 추측되는 이 조각상은 또 제우스 상이라는 설도 있다. 이 조각상의 형태의 비례와 동작의 정확성에 사람들은 경탄의 눈길을 마지 않는다. 또 현대적인 어느 갤러리에서 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풍겼던, 동작의 유연성과 긴장성을 세밀하게 표현한 ‘말을 타고 있는 어린 소년’( Statue of horse and young rider) 상도 발을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답다.
나는 세 시간이 넘도록 전시작품을 보며 돌아다니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복도에 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가 계속 보고싶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 전시된 유물들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고 항상 나를 목마르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한 미련을 느끼면서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급히 취할 행동은 빨리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지쳐 있어서 바로 길 건너편에서 조금 걸어가면 있는 수블라키 음식점을 향해 갔다. 여기서 먹은 수블라키는 맛도 양도 주인의 친절도 으뜸이어서 기억이 강하게 남는다.
점심을 먹고나서 오모니아 역에서 전철을 타고 모나스티라키 역으로 갔다. 그 근처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벼룩 시장에도 가 보고 가게에 들러 기념품도 사고 옛날에 지나친 적이 있는 근처 대성당엘 가보려는 계획이었다. 이 성당은 성모마리아에게 봉헌된 아테네의 그리스 정교회 주교좌 성당이다. 이곳에 굳이 들리고 싶었던 이유는 촛불을 하나 붙여 놓고 싶어서였다. 냉담자로 지낸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큰 성당이 보이면 꼭 들어가서 둘러보고 촛불을 붙여 그 앞에서 짤막한 기도를 드리고 싶은 것은 어쩔 수없는 인간의 연약함 때문인가. 성당은 메트로폴리스 성당으로도 불리는데 길이 40m. 넓이 20 m, 높이 24m의 통로 세 줄에 돔을 갖춘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며 오스만제국 식민지 시절에 순교한 필로테이와 그리고리우스 5세 등 두 성인의 무덤이 그 안에 있다. 대성당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성당 내부는 정갈하고 경건했고 아름다웠다.
신타그마 광장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큰 길인 파네피스티무(Panepistimou) 거리에는 신고전주의(Neoclassic) 건축양식의 3부작인 아테네 학술원과 아테네 국립대학교, 그리스국립도서관 건물들이 차례대로 서있다. 이 건물들은 몇 천년 전의 유물과 유적이 전부였던 아테네의 얼굴을 뒤바꾼 획기적인 건물들로 보기만해도 가슴을 뛰게 만들 정도로 매우 아름답고 우아하다. 특히 아테네 학술원은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에렉테이온 신전등에 영감을 받아 신전 모습을 본따서 건축되었는데 그 뛰어나고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건축물 1001개>에 포함되어 있다. 이 건물들은 그리스 독립전쟁 후 1832년에 세워진 그리스 왕국의 초대국왕인 오톤1세의 명에 따라 건축된 것으로서 오스만투르크 지배 이래 가난하고 초라했던 나라에 근대국가의 틀을 갖추고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신과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된 작업이었다. 덴마크의 건축가인 테오필 프라이헤르 폰 한센과 에른스트 칠러가 맡아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고 건축대금은 대부분 해외의 그리스 출신 부호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
우선 아테네 학술원 건물은 포르티코(Portico:중앙 현관의 열주 부분) 양 옆에 높이 솟은 아테나와 아폴로 신상들에 주목해야 한다.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창과 방패를 들고 서 있고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로 손에는 리라가 들려져 있다. 높이 10m의 거대한 이오니아식 하얀 대리석 기둥 위에 늠름하게 서있는 이 두 신상은 국립학술원의 위상처럼 고고해 보인다. 그 아래편의 계단 양쪽에는 각각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앉아 있다. 아카데미의 어원이 된 두 철학자가 고뇌하고 탐구하며 앉아 있는 모습은 이 건물의 특성을 금방 알아차리게 만든다.
아테네 국립대학교의 건물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지만 이곳이 가장 대표격인 캠퍼스로서 정식명칭은 아테네 국립 카포디스트리아스 대학교이다. 그리스 독립운동의 지도자였고 제1공화국 초대 대통령이었으나 초기 혼란기의 지도자간의 알력으로 암살된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를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37년 5월3일 그리스 국왕 오톤1세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리스 전체와 발칸반도애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다. 전면 중앙부의 포르티코는 두 개의 커다란 이오니아식 기둥이 받치고 있고 지붕은 박공 형식인데 아테네 학술원과는 달리 페디멘트 부조는 없다. 전면부가 길게 뻗어있어 안정감을 주며 매우 깔끔한 인상의 신고전주의 건축이고 덴마크 사람 크리스티안 한센이 건축을 맡았다
아테네 국립도서관은 맨 처음 건물에 올라가는 양쪽의 휘어진 곡선모양의 계단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1888년에 건립을 시작해서 15년 동안 지어졌다고 하는데 매우 정성을 들였음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아테네 학술원을 지었던 테오필 한센이 건축을 맡았고 그는 고대 아고라에 있는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참고하여 이 건물을 설계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신전처럼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이 탄생했다. 양쪽을 휘감아 도는 계단 아래에 정 가운데에는 도서관 건축의 최대 후원자였고 그리스 최대 부호였던 파나기스 아타나시우 발리아노스의 동상이 서있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 가장 특이한 것으로는 세계 최대의 필사본 컬랙션이 있는데 무려 5400 점에 이른다고 한다. 종이 위에 필사된 것, 양피지 위에 필사된 것이 있고 황제의 칙령에 붙여졌던 황금인장 때문에 황금문서(Chrysobulls)라고 불렸던 희귀 필사본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 건물들을 꼼꼼이 둘러보며 뭔가 벅차오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수천 년 전의 영광의 그리스가 다시 부활해서 일어날 것 같은 예감 비슷한 것이 나를 감싸는 듯 했다. 웅장하며 화려하면서 기품이 서려 있는 건물들이 주는 가치가 이때만큼 감동을 주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너와 나를 떠나서, 내것과 네것을 떠나서 인류공영의 이상과 가치는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