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로 떠나기 바로 전날에는 편한 마음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알테 오퍼(Alte Oper; 오페라극장) 쪽으로 슬슬 걸어가다가 적당한 곳을 찾아 밥을 먹으려 했는데 알테 오퍼 가까운 곳의 한 카페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에 무슨 일인가 봤더니 디저트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인 듯 했는데 거의 젊은 사람들로 가득이었다. 특히나 데이트를 위해 쫙 빼입은 듯한 선남선녀들이 많은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우리나라든 이곳이든 소문난 핫플레이스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똑같구나 샆었다. 기대에 가득 차서 설레이는 얼굴로 서 있는 그들을 보며 한때 우리에게도 저런 풋풋함이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며 그들의 젊은 날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알테오퍼가 막 시작되는 광장에 이르니 어디선가 떠들썩하는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란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얼마 전에 히잡을 안 썼다는 이유로 구금되었다가 숨진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면서 자유를 부르짖는 히잡시위 행렬이었다. 사람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다. 이열종대로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쉰 목소리로 외치는 자유를 향한 그들의 시위에 가슴 한쪽이 따끔거리는 듯 했다. 인명을 경시하고 사람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고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이런 독재는 언제쯤이나 돼야 지구상에서 종말을 고할 것인가. 그런 날이 오기는 올 것인가? 공산독재도 그렇고 이슬람국가들에서 행해지는 종교적 독재도 그렇고 아직도 인간의 기본권리가 무지막지하게 훼손되는 현실이 막막하기만 했다.
알테 오퍼에서 죽 직진하면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하우프트 바헤 거리가 나온다. 그곳엔 온갖 상점들과 패션전문점들, 백화점들이 즐비하다. 옛날에 뭔가 특별한 것을 살 일이 있을 때, 예를 들어 생일선물 같은 것을 준비할 때면 그 거리의 가게에 들어가곤 했었다. 가게에 들어갔다가 예상했던 가격과 틀릴 때 우물쭈물 되돌아 나왔던 기억도 떠올랐다. 사고싶고 욕심나는 물건은 많고 돈은 그에 비해 적었던 그 당시는 왠만하면 윈도우에서 아이쇼핑에 그쳤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물건에 대한 욕심이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다 사 봤고 입어 봤고 걸쳐 봤어서가 아니라,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런 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물건 자체에 대한 욕심이 단순히 사라져버려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나 자신과 남편 물건엔 관심이 없이 손녀에게 사줄 물건을 고르기 위해 열심히 가게들을 힐끗 거렸는데 어린이용품을 파는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도 손녀 물건을 살 때 H&M에 갔던 것이 생각나서 마침 눈앞에 커다란 간판이 걸려있는 H&M 으로 들어갔다. 아이용품 파는 곳으로 가서 보니 때마침 세일을 하고 있어서 세일 적용상품 2개, 세일제외 가을용품 2개를 사서 기분 좋게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소나기성 비가 뿌리고 있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올 때 비 예보가 있으니 우산을 가지고 가자고 주장했지만 모든 걸 귀찮아하는 남편께서 비는 무슨, 우산 필요 없어, 라고 우겨서 우산을 못 갖고 나온 것에 대해서 남편을 힘껏 흘겨봐주고 비를 피하기 위해 카페를 찾으려고 두리번 거렸으나 입구에서부터 사람들로 꽉 차 있는 카페들이 대부분이어서 들어갈 만한 카페를 찾는데도 꽤 오래 걸린 끝에 겨우 하나를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카페 안에서는 주문한 음료를 받아 마시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한참 후에 음료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 보니 죄다 어리고 젊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신기하게도 아랍 쪽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잠시 전에 히잡시위 행렬을 보고 온 탓인지 자꾸 그들에게 눈길이 갔는데 그들은 아주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낄 것 없다는 투로 깔깔거리고 재미있어 보였다. 같은 아랍 국가들이라도 히잡을 써야하는 여성들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이 갈리고 있으니 도대체 이놈의 불평등은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가?
꽤 긴 거리를 계속 걸었던 터라 다리가 아팠던 우리는 어느 정도 원기회복을 한 후에 이번에는 꼬르륵거리는 배를 달래기 위해 적당한 식당을 찾아야 했다. 거기서 조금 강변 쪽으로 걸어가면 다시 뢰머광장이 나오므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뢰머광장에서 성업중인 레스토랑들은 대부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많은지라 그쪽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광장이 거의 끝나가는 한쪽에 바깥에 놓인 테이블에서 어떤 사람들이 먹고 있는 쉬바이네 학센(돼지다리 찜))요리가 너무 맛있게 보여서 그곳으로 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도 똑같은 요리를 시키고 남편은 쏘세지요리를 시켰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했고 남편에게 바이라게(사이드요리)로 곁들여 나온 사우어크라우트(시큼한 양배추볶음)가 너무 맛있어서 내가 반쯤 먹어치웠다.
뢰머광장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넘친다. 패키지 여행의 관광객인 듯 보이는 한국사람들도 중국사람들도 많이 마주쳤다. 그런데 옷 입은 차림새나 행동양태를 보면 굳이 한국말 중국말로 구분하지 않아도 금방 어느나라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중국 사람들이 훨씬 행동에 거침이 없어 보이고 사진 찍는 포즈도 요란해서 양 국민의 국민성이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상대적으로 그들의 숫자가 더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또 여기서는 종종 막 결혼하고 나와서 하객들과 함께 조그만 세레모니를 하며 축하사진을 찍는 결혼한 커플들의 모습도 많이 보게된다. 그럴 때의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행복한 웃음이란 !! 보는 사람도 같이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광장에 나와서 사람들을 보노라면 삶의 생동감을 더욱 많이 느낄 수가 있다. 대부분 관광객들인 그들은 눈에 생기가 가득하고 호기심에 반짝거리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놀라고 환호하며 재미있어 한다. 여행이라는 특별한 순간이 주는 기쁨을 한껏 만끽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당연히 돈이 더 많이 들겠지만 사치품을 덜 사고 비싼 외식 안 하고 쓸데없는 낭비를 줄이면 몇 년에 한 번쯤은 적당한 여행을 자신에게 선물할 수가 있다. 살아있음이 더 생생해지는 그 순간을 위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즐길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뢰머광장을 빠져 나와서 마인 강변으로 걸어간 우리는 오랜만에 확 트인 공기를 마시며 해방감 속에 천천히 강변 길을 걸어 아이제르너슈텍(Eiserner Steg) 다리를 건넜다. 이 다리는 마인 강에 놓인 다리 중 유일하게 차가 다니지 않는 다리이다. 다리 난간에는 서울 남산타워의 전망대 난간에서처럼 수많은 열쇠들이 각양각색의 색깔로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하아, 여기도 그런 곳이 되었구나. 나는 열쇠를 매달 때의 그들의 심정을 생각하며 젊은이들의 사랑의 맹세가 영원히 변치 않기를 빌어주고 싶었다 .
다리 중간쯤에 이르니 커다란 배너가 펄럭거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자세히 쓰여진 글자를 읽어보니 강 저쪽의 슈테델 무제움(Staedel Museum)에서 현대작가들의 걸작선을 한다는 전시회 광고였다. 보라색으로 큼직큼직하게 씌여진 작가들 이름 중에는 피카소, 샤갈, 고흐, 로댕, 달리 등 현대화의 거장들 이름이 총망라 되어 있었다. 어머나 이런 전시회가 있는 줄 몰랐네, 이건 꼭 봐야해, 하고 조바심치며 날짜를 보니 다행히도 9월 중순까지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거쳐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왔을 때 보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저으기 안심하면서 꼭 볼 것을 다짐하며 다이어리에 날짜를 적어놓고는 다리를 건너서 남쪽 강변길을 걸었다. 이쪽 길은 나도 처음이었다. 마인강변 하면 항상 뢰머광장에서 통하는 저쪽 편만 강변인 줄 알았던 나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프랑크푸르트에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이쪽 길은 걸어 보지 않았던 것이다. ㅉㅉ 나는 왜 그렇게 좁은 바운더리 안에 갇혀 살았던 것일까. 스스로 한심해지는 건 나라는 사람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인 것을 !! 그런 까닭인지 작센하우젠으로 통하는 이쪽 강변은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강변이면서도 이쪽과 저쪽이 그렇게 다르다니!! 나는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약간의 흥분기도 느끼면서 걷기 시작했다. 강변 산책길은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빼고 양옆으로 가로수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어서 잔디만 넓게 펼쳐져 있는 저쪽 풍경과 사뭇 달랐다. 한 20분쯤 걸었는데 이젠 내 다리가 말썽이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으려는 듯 뻣뻣해져 왔다. 나는 내 다리에 한계가 왔음을 알아차리고 오늘 행군은 이것으로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여행할 때 제일 문제되는 것이 체력이란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