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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2.

by olive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첫날은 천신만고 끝에 호텔을 찾아 가방과 짐을 방에 집어 넣고 저녁을 먹고 난 것으로 끝났다. 다음날 아침에 조식을 먹으려고 호텔 식당에 가니 의외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알고보니 그 기간에 메세(박람회장)에서 산업박람회가 열리고 있어서 코트라 직원 등 업무차 출장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호텔이 박람회장 근처이다 보니 박람회 일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다들 조용하게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그 중 어떤 사람이 마치 자기 집 안방인 것처럼 지나치게 웃고 떠들고 하는 모습이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약간 불편한 마음을 들게 했다. 어쨋거나 호텔 조식은 충분히 훌륭했고 비행기 기내식을 먹다가 이틀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한 가지 또 반가운 점은 독일식으로 커피를 한 주전자(Kanne) 가득 테이블로 갖다 주어서 커피를 가지러 커피기계 앞으로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앉아서 충분히 음미하며 마실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프랑크푸르트에 특별한 목적이 없이 옛 고향에 온 듯한 기분으로 왔으므로 우린 옛날의 대학 근처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 호텔에서 걸어서 20분쯤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여서 천천히 걸어 가볼 생각이었다.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인 Senckenberger Naturwissenschaft Museum 앞에는 옛날에는 볼 수 없었던 커다란 공룡 2마리가 입구 쪽에 한 마리, 또 길 건너편에 한 마리 서 있었고 글자를 읽는 방향에 따라 Love 와 Hate 로 이중적으로 읽힐 수있는 글자 조형물이 서 있었다. Love가 지나가면 Hate가 되는 건가? 어떤 통찰이 그속에 담긴 듯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자연사 박물관은 큰 아이가 어렸을 때 두 번정도 데리고 왔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공룡뼈 화석에, 나는 생전 처음 본 이집트 미이라에 뿅 꽂혔었다. 아이는 그때부터 장래희망을 공룡박사라고 외쳐 왔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난 그때부터인가 고대의 인류와 고대 역사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그 부근을 지나 다시 옛날에 날이면 날마다 대학에서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기 위해 전차를 기다렸던 보켄하이머바르테(Bockenheimer Warte) 근처에 가보았는데 30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그 원통형의 파수대 건물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었다. 수십 년을 지나도 알아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따뜻하고.고마운 일인가? 거기에서 내가 이 도시에 살았을 때도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가본 적이 없는 Bockenheimer Warte 지하철 역사를 보러 갔다. 이 역사는 땅에 처박혀 진듯한 건물로 이전부터 유명했다고 하는데 난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어서 이번에야 가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이 도시에 살던 때 어지간히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금 가슴이 찌르르한 느낌이 들었다.

4년전에 왔을 때는 별로 변한 것이 없이 그대로라고 느껴졌던 그 부근의 거리는 정거장에서 사선으로 비껴 나 있는 라이프찌거 거리 (Leipziger Strasse) 에 이르니 이것 저것 가게들이 많이 바뀌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리에 사람들도 많고 생기가 돌고 있었다. 메쎄 부근에서도 느낀 바 있는 이 새로운 생기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 독일 경제가 잘 굴러가고 있다는 뜻일까? 어쨋든 좋은 신호라고 읽고 싶다. 유모차를 끌고 있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도 많았다. 젊은 세대가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가는 나라가 우리가 바라는 바이니 독일은 좋은 나라인가 보다.


거리가 다 끝나고 심심한 주택가가 이어지는 곳에 이르자 우리는 거리를 돌아나가서 새로 이사갔다는 대학가로 가 보자고 뜻을 모았다. 프랑크푸르트대학(Johann Wolfgang von Goethe Universitaet) 은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보켄하이머 바르테(Bockenheimer Warte )와 젠켄베르거 안라게 (Senckenberger Anlage), 니더라트(Niederrad) 의대 등으로 사방으로 분산된 건물에서 운영되어 오다가 자연과학대학과 의학계열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과가 서쪽(Westend) 캠퍼스로, 식물원(Palmengaryen)근처의 새로 지은 건물들로 옮겨갔다. 심리학과 철학과 건물들은 당연히 새로 생긴 캠퍼스에 있기 때문에 우린 그쪽 캠퍼스가 궁금해져서 산책을 겸해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는 동안의 거리들은 옛날에 우리가 살았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원래 그 동네는 꽤 잘 사는 부르조아 계급이 살았었던 곳으로서 부자 동네는 세월이 얼마나 흘러가던 변하지 않으면서도 품위와 위엄을 유지하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길을 걸어가다가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어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구리로 된 작은 동판들이 길 바닥에 묻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읽어보니 "000가 이곳에 살았음. 0000년에 출생해서 0000년에 0000으로 이송되고 0000년에 수용소에서 죽음"( Hier wohnte 0000, geb 0000, in 0000 deportiert 0000, in 0000 ermordet )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책으로, 영화로 경험한 것이지 실제로 우리 눈앞에서 생생한 현실로 경험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간접경험 속에서 걸어나와 직접경험으로 바뀌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동판은 무려 6개였고 다 한 집안 사람이었다. 그중 2명은 수용소에서 죽었고 4명은 미국으로, 튀르키에로, 영국으로 도망갔다고만 되어 있었다. 한 일가의 기구한 운명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망막을 스쳐가는 느낌이었다. 걸어가는 도중에 어떤 집앞에는 2개가, 또 어떤 곳에서는 3개나 4개가 묻혀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무심했었던 것일까? 이것들은 내가 푸랑크푸르트에 살고 있었을 때에도 존재했던 것이었는데 내가 그것을 못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후에 만들어서 묻혀진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나간 잔인한 역사가 잊혀졌던 문을 열고 내 앞에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식물원(Palmengarten)옆을 한참 걸어가다가 그뤼네부르크 공원을 지나가면서 나는 옛날에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땅바닥으로 처참하게 엎어져서 피가 나는 손바닥을 보며 당황했었던 기억이 났다. 겁이 많은 나는 손바닥과 무릎의 깊은 상처를 보면서 그길로 의사에게 달려가 파상풍 주사를 맞았었다. 이 정도 상처라면 얼마 안가 곧 온몸이 파상풍에 감염될 것 같아 겁을 잔뜩 집어먹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 십년 전의 야단법석이 생각나서 빙그레 웃음을 머금었다. 조금 가다가 공원 이쯤 어디에 작은 호수가 있었었는데 하며 사방을 아무리 둘러 보아도 호수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른 공원과 혼동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공원은 내 기억보다 훨씬 넓었고 아름드리 나무들 아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싱그러운 나무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걸어가자 드디어 새 대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은 모두 규모가 컸고 외관을 대리석으로 마감해 놓아서 아주 번듯해 보였다. 괴테 대학교 건물이 이렇게 바뀌다니!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전의 대학 건물은 본관만 빼고 얼마나 초라했던가 보켄하이머 바르테를(Bockenheimer Warte)를 중심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이 건물 저 건물로 강의실 찾아다니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던 옛 건물들과 비교하면 이건 완전히 환골탈태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이것으로써 이제 프랑크푸르트 대학도 교정이란 것을 가지고 좀 뻐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십 여년 전에 미국에 있는 하버드와 예일, 콜롬비아 대학 등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곳의 대학건물과 교정을 보면서 내가 다녔던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비교하며 얼마나 부러움 비슷한 것을 느꼈는지 모른다 와, 이곳에선 공부할 맛 나겠네! 라면서 괜스레 초라해 지는 기분이었었다. 미국 아이비리그가 괜히 아이비리그가 아닌 것 같았다. 클래식하고 육중하고 멋진 건물들이 너른 교정에 자리잡은 모습은 분명 뭔가 있어 보였다. 흐흐흐 근데 그깢 대학건물이 뭐라고? 유치하긴!!


하여간에 멋진 대학건물이 여기저기에 부요하게 들어선 모습이 보기 좋았다. 널찍한 교정 한 가운데에는 Adorno 광장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한 사람이었던 아도르노를 기리는 뜻이 담겨 있을 터였다. 또 그곳 한 가운데에는 깊이가 얕은 분수대도 있었는데 서 너 살짜리 어린 아이들이 빤스바람으로 물놀이를 즐기는 풍경도 사랑스럽고 이채로웠다. 아마도 자녀가 있는 학생들이 아이들을 데려와서 놀리거나 아니면 학교내 어딘가에 있는 어린이집의 아이들인지 모른다. 학교는 전체적으로 학생들을 향하여 "자, 이제 공부라는 걸 맘대로 해보렴! 원하는 것은 모두 준비해줄께 " 라며 자애롭게 두 팔을 벌리고 있는모습이었다.

우리는 건물들 이곳저곳을 완전히 구경꾼의 입장으로 살펴 보았는데 우리가 대학 다닐 때에 비하면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더 여유로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세월과 더불어 생긴 긍정적인 변화 같았다. 한 건물을 지나치다가 특이한 건물 이름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규범적 질서들"(Normative Ordnungen) 이라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세상에 건물이름에 규범적 질서라니! 역시 독일인들 다웠다. 그들은 꿈에서조차도 "질서 !! (Ordnungen)" 하며 소리칠 것 같았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구 어느 한 귀퉁이에서라도 "질서"를 부르짖는 독일인들이 있기에 세계인들이 감히 질서를 무너뜨릴 생각을 못하고 그나마 규범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이란 내버려두고 다 허용해주면 짐승과 하등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정신과 육체는 정신적 기능을 막아놓으면 육체만 강성해져서 짐승처럼 날뛰고 아노미 상태가 된다고 생각하는 나의 이론이 어쩌면 틀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옛날 생각에 젖어서 이런 저런 새 대학건물들을 보면서 한가한 걸음걸이를 이어가다가 우리는 에셴하이머 토어(Eschenheimer Tor)를 지나서 하우프트 바헤(Haupt Wache) 까지 걸어왔다. 슬슬 뱃속 시계가 알람을 켜고 뭔가 행동을 촉구하고 있었다. 하우프트 바헤에 늘어선 식당 중에서 어디를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까 고민하다가 그 중 서빙하는 사람의 인상이 왠지 푸근하고 젠틀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독일 식당의 메뉴는 뻔하니 뭐 생각하고 말고 할 것 없이 남편은 기로스(Gyros)를, 나는 예거 쉬니첼(Jaeger Schnitsel)을 시켰다. 나온 음식은 먹을만 했으나 에어푸르트에서 먹은 쉬니첼에 비하면 70점 정도 줄만 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시청사가 있는 뢰머(Roemer)에 가고 싶어져서 하우프트 바헤에서 걸어갔다. 그곳은 예나 지금이나 관광객들로 들끓는 곳이어서 우리도 한가로운 관광객이 된 기분으로 인파 속을 걷다가 광장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랗고 둥근 동판을 발견했다. 거기엔 " 그건 단지 하나의 서막에 불과했다 책을 불태워 없애는 곳에서는 마지막에는 사람도 불태운다" (Das war ein Vorspiel nur, dort, wo man Buecher verbrennt, verbrennt man am Ende auch Menschen )라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유명한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중국 진시황 때도 분서갱유의 사건들이 있었지만 책들이 불태워진다는 것은 자유로운 언어와 사상이 제한되고, 억압되고 엄격하게 통제된다 라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런 곳에서는 언젠가 사람의 목숨도 무도하게 무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광포한 폭압정치의 끝은 똑같을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 동판이 그곳에 자리하게 된 까닭은 1933년에 국가사회당(나치당)의 청년조직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자기들 의견에 반대되는 수많은 책들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나치 학살의 전조가 바로 그때 그곳에서부터 음침한 연기를 피워 올린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대성당이 있는 쪽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제일 맛있는 케익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황금저울( Goldene Waage )이라고 하는 곳인데 대성당 바로 앞이면서 그 골목을 통과하면 뢰머광장이 나오는 곳이다. 그 건물은 건물도 예쁘려니와 딱 사람들이 앉고 싶어하는 자리를 기가 막히게 잘 고른 몫이 좋은 곳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아이스티와 아이스 에스프레소, 힘베어케익을 시켰다. 역시 맛이 너무 일품이어서 포크로 떠 먹는 짓을 멈출 수가 없이 금방 먹어치웠다. 앉아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려니까 사람들 행동에서 공통적인 특성을 하나 발견했다. 사람들은 골목을 돌다가 문득 이 카페를 발견하면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차와 커피를 마시면서 향긋한 케익을 먹는 것을 보고 잠깐 발을 멈추면서 한 바퀴 휙 둘러보고는 자신들도 그 무리들에 끼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고는 앉을 것인지 말 것인지 재빨리 견적을 보고 자리를 찾아 앉던가 입맛을 다시면서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망설이다 떠나가곤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은 나도 바로 그런 기분으로 여기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니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사람은 결국 다 똑같다는 것이 내 평소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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