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 관한 글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아테네라는 도시를 설명하고 해석하고 누군가에게 안내한다는 일은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산과 같은 어머어마한 중압감으로 나를 내리누르기 때문이었다. 아테네라는 도시는 그리스라는 한 국가를 해석하는 것과 맘먹는 스케일과 넓이와 깊이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해서 되지도 않는다. 내가 이 도시에 왔다 간 것은 꽤 여러 번이다. 와서 보고 가고 또 보고 가도 아테네라는 도시는 커다란 수수께끼처럼 버티고 서서 나를 무능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아테네는 나에게 하나의 숙제가 되어 버렸다. 나는 아테네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 비밀을 열어보고 싶었고 마침내는 내 머리속에 하나의 방을 갖고 싶었지만 그 방은 여전히 비어 있는 것 같다.
아테네는 찬란한 문명의 도시국가였다. 아테네가 인류에게 선물한 그 어마어마한 빛나는 보석들은 인류가 영원히 그 도시에 빚진 것이다. 아테네는 천재들이 살다간 도시이다. 어떻게 그 작은 국가에서 그렇게 수많은 천재들이 나와서 찬란하고 위대한 문명을 전수해주고 간 것일까. 거의 불가해한 영역이다. 우리는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할 뿐이다. 일일이 그 이름들을 열거하기에도 숨찬 수많은 철학자, 정치가, 작가, 건축가, 조각가, 학자들이 떠오른다.
아테네는 인류 최초로 민주정치의 싹을 틔웠다. 솔론에게서 출발하여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도편추방제도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발전시키기 시작한 그 발상은 3000년 전의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신하고 획기적이고 천재적이었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또 어떤가? 노벨문학상 작가 열 명을 합쳐도 그가 써내려간 그 놀라운 서사시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펼쳐진 비극과 희극의 경연대회장이 발굴한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도 그리스의 문학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워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최고봉의 문학세계를 이루었다. 철학하면 떠오르는 이름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우리의 정신을 무지몽매 상태에서 깨워주어 희미한 빛을 찾아가게 한 점 또한 지나칠 수 없다. 여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리스의 조각들과 도자기들 장신구들.... 생각하면 떨리고 그립고 그저 머리를 숙이게 된다.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그 엄숙미의 아름다운 수많은 신전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옳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후에 탄 비행기는 오후 10시쯤이 돼서야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원래 밤 늦게 도착하는 비행기라서 힘들겠거니 했지만 이젠 또 짐찾기(baggage claim) 가 말썽이었다. 하나씩 둘씩 컨베이어 벨트에 놓여지기 시작한 짐과 캐리어들이 주인 손에 들려나가고 몇 개의 짐들만 남아서 벨트를 반복해서 도는 동안, 그러니까, 짐이 나오기 시작한지 30분이 지나도록 우리 짐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뿐만이 아니고 열 댓명 정도가 자기 짐을 못 찾고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그때 쯤이 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그리스 본토 사람들이 나서서 공항 직원들을 붙잡고 큰소리로 컴플레인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 이리 저리 몰려가기도 하고 직원들에게 사정하기도 하며 또 거의 30분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도 그 중 제일 앞장서서 직원들에게 조리 있게 말하는 그리스 사람을 따라 사무실로 따라갔다. 한참을 그렇게 직원들과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인 끝에 누군가가 다시 컨배이어 벨트가 있는 곳으로 뚸어가자 우리도 그를 놓칠세라 같이 쫓아갔더니 그제서야 아무런 반응이 없이 빈 채로 돌아가던 벨트 위로 나머지 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좋아서 손뼉을 치기도 했다. 드디어 뭔가가 해결된 모양이었다. 우리도 몇 분을 기다린 끝에 우리 짐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게 왠 불운이람? 밤 늦게 도착한 비행기도 모자라서 짐까지 남들 것보다 한 시간쯤 늦게 찾게 되다니!! 그리스 첫날도 행운의 여신이 우리를 등진 듯해서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호텔까지 가는 것은 우리가 예약해놓은 호텔 주인에게 택시를 부탁해 놓은 터라 전화를 해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공항 가까운 곳의 호텔을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공항 출입문 밖에서 한 10분쯤 기다리자 택시가 나타났다. 그 10분의 시간도 우리에겐 얼마나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드디어 택시에 올라 타서 호텔까지 가는 동안 몸은 지칠대로 지쳐버리고 마음도 지쳐가는 것 같았다. 어떡하든 빨리 가서 자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대충 씻고 잠자리에 들었던 우리는 다음 날 날이 밝자 호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예약해 놓은 아테네 시내의 호텔로 옮기기 위해서 캐리어를 끌고 택시로 지하철 역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시내의 빅토리아 역까지 갔다. 빅토리아 역에서 내려 호텔을 찾는데 까지는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른 시간인지라 짐을 플로어에 맡겨 놓고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가 카페에 들어가서 어제부터 혼란해진 정신을 식히느라 시간을 보냈다. 다시 보는 아테네는 여전히 더웠고 오고 가는 사람들로 바쁜 듯이 보였고 시내에는 여전히 철문들이 내려져서 닫힌 가게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전에 비해 훨씬 밝아보였다는 것이다. 옛날에 십 몇년 전에 체코의 프라하에 갔을 때도, 6년 전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도 느낀 적이 있지만, 대체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국민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십 몇년 전의 체코는 공산화에서 자유진영으로 옮겨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고 6년 전의 포르투갈도 한창 남유럽의 pigs들이라고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있었다. 그전부터 오랜 공산독재로 경제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포루투갈은 같은 유럽 국가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못 사는 모습이었다. 그리스 경제도 사회주의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가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릴 정도로 위태위태했었다. 그런 까닭인지 이 세 나라의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고 무표정했으며 무뚝뚝하고 삶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었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 사람들의 표정은 확 달라져 있었다.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았고 잘 웃었으며 옷차림도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 약한 기운이나마 어떤 희망 같은 것이 저마다의 표정에서 읽혀졌다. 그러고보니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낡은 차들이 잘 안 보이고 제법 좋은 차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4년 전만 해도 폐차장에 있어야 할 차들이 굴러 다니는 걸 보고 조마조마하게 느꼈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카페에서 나와 플라카 거리로 가기로 했다. 거기에서 점심을 먹고 아크로폴리스 쪽으로 갈 작정이기 때문이다. 플라카에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우리도 그렇지만 코로나로 막혔던 세계가 뚫리니 너도나도 보복여행(Revenge Travel)에 나선 것인지 예전보다 더욱 사람들이 많아 보였고 사람들의 표정도 행복감에 넘쳐 보였다. 우리는 익숙한 플라카 거리를 걷다가 예전에도 한번 먹은 적이 있는 파스타 집에 갈까 하다가 조금 더 널찍하고 하얀 테이블보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식당으로 들어가 앉았다. 거기에서 문어튀김과 무사카, 그릭 샐러드를 먹고 레치나를 마셨는데 양도 조금씩 나온데다가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값도 생각보다 엄청 비싸서 결과적으로 식당선택에 실패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스 식당에서 음식 양에 실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그리스 음식은 질적으로 우수한 것은 물론이지만 양으로 승부하려는 듯이 보였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얀 식탁보에 대한 댓가치고는 너무 비싼 듯 싶었다.
이젠 아크로폴리스 쪽으로 갈 차례였다. 아크로폴리스 입구를 지나는데 입장하려는 줄이 꼬불꼬불 뱀처럼 타래를 틀고 있었다. 우린 어차피 예전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고 티켓도 예매해 놓지 않아서 이번만큼은 아크로폴리스 관람을 포기하려고 했던 터라 상관없었지만 그렇게 긴 줄을 보니 포기하길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언덕길은 길이 넓고 한쪽으로는 나무도 우거져 있어서 산책하기 좋은 길이었지만 역시 40도까지 이르는 더운 날씨에는 그것도 다른 상황이 되어버렸다.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겨우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으로 디오니소스 극장과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을 밖에서 보면서 걷다가 왼쪽편으로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언덕을 오르면 그곳이 바로 필로파포스 언덕이다. 그곳은 기원후 100년경에 로마에서 집정관으로 파견되었던 율리우스 안티오쿠스 필로파포스 사후 A.D.116년에 아테네 시민들이 그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그의 무덤을 만들고 기념비를 세운 곳이다. 지금의 기념비는 그 파사데의 삼분의 이 정도만 남아있는데 그럼에도 몹시 아름답다. 원래 여기엔 고대시대에 시인이 살고 있어서 뮤즈의 언덕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거의 같은 눈높이로 보이기 때문에 다른 시각과 방향으로 볼 수 있고 아테네 시내 풍경도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일몰 장소로도 멋진 곳이다.
내려가다가 다시 보게된 ‘소크라테스의 감옥’은 동굴처럼 된 곳에 쇠창살만 보이는 곳이다. 독배를 마시기 전까지도 청년들과 철학과 진리에 관해 열렬한 토론을 벌였다고 하는데 물론 근거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아테네와 소크라테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호머나 투키디데스, 헤로도투스 같은 학자들과 소포클레스 같은 위대한 비극 작가들이 많았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싹튼 것은 소크라테스 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의 철학의 계보는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인류의 정신의 결실이다.
내려가는 길에 있는 로만 아고라는 예전보다 많이 복원된 듯이 보였다.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쪽은 여전히 공사지지대가 세워져 있고 복잡한 모양으로 공사즁이었다. 거기서 한쪽 모서리 길가 쪽에 있는 ‘바람의 탑’은 꽃을 흩뿌리고 있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비를 떨어뜨리고 있는 남풍의 신 노투스 등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 팔각형의 탑인데 여전히 그 부근에만 가면 내가 직진해서 달려가는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이다. ‘ 호롤로기온‘ 이라 불리는 이 탑은 풍향계, 해시계, 물시계의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펜텔릭 하얀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뽀얗고 예쁘고 8면의 부조들도 너무 매력적이다. 탑 꼭대기에는 머리와 상반신은 인간이고, 물고기 모양의 꼬리를 가진 바다의 신 트리톤이 풍향계 역할을 하며 끝이 뾰족한 그의 지팡이가 바람의 방향을 나타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나는 다시 이곳에 와서 그를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해졌다.
아테네 시내 중심가를 걸어서 횡단, 종단하다 보면 어느새 신타그마 광장 앞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크로폴리스, 모나스티라키 광장, 플라카 거리, 고대 아고라, 로만 아고라 등이 다 거기에서 거기처럼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 신타그마 광장에서 절대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근위병 교대식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 왕궁 앞에서 행해지는데 아테네에서는 근위대가 ‘무명용사의 묘’ 앞에서 교대식을 한다. 빨간 모자를 쓰고 하얀색 치마를 입고 커다란 방울이 달린 까만색 구두를 신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한 시간마다 교대를 한다. 그들을 에브조네스(Evzones) 라고 하는데 절도있고 기강이 센 것으로 유명하다. 이 에브조네스에게 쓰라린 기억이 하나 있는데 나치점령 당시 아크로폴리스에서 그리스의 국기를 내리고 독일 국기를 달라는 명령에 콘스탄티노스 코우키디스 라는 에브조네스가 국기를 내린 뒤 그 국기로 몸을 감싸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서 치욕을 면했다는 얘기가 있다. 무명용사의 묘 벽면에는 그리스가 참전했던 전쟁들의 동판들이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미로 붙어있다. ‘무명용사의 묘’는 공묘(cenotaph)인데 참전용사들의 실제 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기념비만 있는 것이다. 그 뒤에 있는 건물이 국회의사당이고 그 옆에는 근대 그리스의 주줏돌을 놓았으며 그리스 총리를 5번이나 역임한 엘레우테리오스 베니젤로스의 동상이 서 있다. 공도 있고 과도 있는 인물이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공에 더 점수를 주고 있는 모양이다.
저녁에는 리카베투스 언덕에 올라갔다.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아테네의 청담동쯤 되는 콜로나키 거리에서 저녁식사를 위해 찾았던 식당은 매우 편안한 분위기의 우아한 식당이었다. 가격이 좀 나오리라고 생각하며 들어간 식당이었는데 지불한 가격만큼 맛있게 먹은 것 같다. 리카베투스에 올라가려면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케이블 열차를 타기로 했다. 올라가니 벌써 밤이었고 발 아래 아테네 시내의 야경이 가득 펼쳐져 있었고 건너편에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도 조명 속에서 아랫부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낮과는 달리 밤에 보는 풍경에 신비감이 더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낮동안의 더위도 물러가서 언덕 위에는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여름밤이었다. 18세기에 지어진 작고 귀여운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 교회에도 조명이 켜지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환상적인 공기가 밤의 손님처럼 우리 옆에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