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쯤에 호텔 식당에 가보니 조식을 먹으려고 온 사람 중에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동양인인 우리가 신기한 듯 슬쩍슬쩍 쳐다보기도 했다. 이렇게 먼 곳까지 동양인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일까, 글쎄 그들의 생각을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아테네를 제외하고 리메니나 미스트라스, 에이션트 올림피아에서도 그랬으니 이제와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조식은 깔끔했고 가짓수도 풍부하고 맛있어서 어제 부실하게 먹은 점심과 저녁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돼주었다.
우리는 저번처럼 아침에는 성벽길을 따라 산책을 할 참이었다. 올드타운 바깥 쪽 성벽길은 아르바니티아 해변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돌아나와 반대편으로 가면 신시가지로 통하는 피렐리논(Philellinon) 광장이 나온다 그 광장에서 신시가지 쪽으로 조금 걸으면 신그로우 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가로 방향으로 걸어가니 여느 도시와 똑같은, 심지어 우리나라 어느 소도시라고 해도 상관없을 그런 시가지 풍경이 이어졌다. 조그만 슈퍼, 동물병원, 꽃가게, 미장원, 약국, 개인병원, 빵집 등등.. 저쪽 올드타운이 기념품가게, 식당, 카페, 젤라토 가게, 작은 잡화점, 책방, 장난감가게 등으로 좀 더 팬시하고 귀엽고 유혹적인 가게들로 가득하며 골목마다 벽을 타고 오르는 부겐빌레아 꽃들이 만발해서 멈춰서서 한 번씩 눈길을 주게 되는 반면에 이곳 신시가지 거리는 먹고 살아가는, 존재를 지탱시켜주는 가게들로 가득했다. 재미있는 대조라 할 수 있었다.
다시 광장 쪽으로 가니 조그만 길 저쪽에 팔라미디요새로 올라가는 999개의 계단 입구가 보였다. 입구는 꽤 오래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석조문을 지나게 돼있고 조그만 다리를 건너가게 돼있다. 그 앞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과거 정치인의 동상도 보였다. 어느새 한낮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팔라미디 요새는 점심을 먹고나서 오후 늦게 올라가려고 생각했다. 지난 번에 지인들과 여럿이 왔을 때는 차를 타고 주차장 앞에 있는 입구를 통해 바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힘들더라도 두 발로 올라가리라 마음 먹었다. 그런데 정말 내가 과연 거기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은 별로 없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팔라미디 요새는 까마득하고 아득하게 보여서 결코 만만치 않은 높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바실레오스 콘스탄티누(Vasilleos Konstantinou) 거리로 쭉 걸어가 올드타운으로 가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내일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낲플리오를 기억나게 해 줄 기념품을 하나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기념품으로(Souvenier) 20유로짜리 사기로 만들어진 작은 배를 하나 샀다. 그런데 남편이 하얀 라임석으로 만들어진 투구모양을 집어 보다가 손에서 놓쳐 떨어뜨리고 말았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당황해 하면서 어떻게 보상을 하면 되겠느냐고 물으니 예쁘고 착하게 생긴 여자 종업원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원래는 15유로 짜리인데 10유로에 팔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린 바로 그러마고 동의하고 나서 30유로를 내밀었다. 종업원이 자기가 사장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다며 사과를 하는 바람에 우리가 잘못한 것이니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 투구는 집에 돌아온 다음 본드로 붙여져서 유리 장식장 안에 그때 사온 작은 배 옆에 진열되어 있다.
점심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 우리는 저번에 브레이크 타임 때문에 못 들어갔던 식당에 미련이 남아서 다시 찾아갔다. 골목에 놓여진 테이블은 만석이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나마 빈 자리가 하나 뿐이라 하마터면 또 그냥 나올 뻔한 위기를 넘겼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시금치파이가 먹고싶어져서 메뉴에서 찾아봤으나 보이지 않았고 남편은 튀긴 정어리를, 나는 기로스와 그릭샐러드를 시켰는데 기대가 컸던지 음식맛이 별로였다. 이번에도 다시 아이올로스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녁엔 다시 거기로 가야할 모양이었다.
나플리오 시청 건물이 있는 ‘세 명의 제독 광장’에는 오톤1세의 동상이 서있다. 오톤1세는 제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나플리오에서 암살된 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열강들이 내세운 독일 바이에른의 루드비히1세의 왕자로서 약관 17세에 그리스 국왕으로 옹립되어 나플리오에 입성한다. 그는 30년 동안 열심히 치세에 힘썼지만 그리스 정교회로 개종하지 않았던 점, 왕비 아말리아의 사이에 후계가 없었던 점, 그리스인의 정서를 무시하고 독일식 엄격주의로 나라를 다스리려 했던 점 등으로 그리스인들의 신망을 얻지 못해 폐위되어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 5년만에 사망했다. 몸은 비록 쫓겨났지만 그리스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그리스식 전통 복장을 입고 그리스어로 말했다고 한다. 그는 오스만투르크 지배 이래 가난하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했던 그리스에 근대국가의 초석을 놓는데 힘써서 그리스 행정부, 군대, 사법체계, 교육제도의 기틀을 닦았고 아테네로 그리스의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나플리오에 살았던 인연이 있어서 여기에 그의 동상이 있는 듯했다.
나는 그의 동상을 찬찬히 보면서 혼란기 그리스에서 혈통이 다른 왕으로서 자기 자신은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국민들이 몰라주는 와중에 그가 느꼈을 진한 외로움과 고뇌를 그의 표정 어딘가에서 찾아보려 애를 썼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동상은 동상일 뿐 그것과 우리가 어떤 메시지나 감정을 공유할 순 없었다.
오후 5시쯤이 되어서 호텔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목적지로 팔라미디요새로 올라가려고 요새로 통하는 입구로 들어섰다. 좁고 꼬불꼬불한 계단으로 200m이상을 올라가야 하는 것인데 나의 다리나 관절 상태를 고려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오로지 ‘오기’ 하나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예전에 산꼭대기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편하게 관람했기에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가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턱쯤 올라갔을 때부터 오기는 오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의 인정사정 없는 햇볕은 어떤 대단한 의지라고 하더라도 금새 무장해제시켜 버리는 강력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가파른 계단 또한 무시못할 장애요인이었다. “가다가 중지곧하면 아니 감만 못하나니”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몇 번씩이나 발을 멈추고 쉬었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드디어 정상에 있는 매표소까지 이를 수 있었다.
팔라미디 요새(Palamidi Fortress)는 이 지역을 지배했던 베네치아인들에 의해 1711년에서 1714년 사이에 지어졌다.
베네치아인들은 팰레폰네소스 반도를 공략할 수 있는 주요거점으로 이 나플리오라는 도시에 눈독을 들이고 공을 들였던 것 같다. 이 팔라미디 요새뿐 아니라 아크로나플리오 요새와 부르치 성채도 그들에 의해 건축된 것이다. 아크로나플리오 요새는 도시에 맞붙여서 아주 가까이에 지어진 것이고 가장 오랜기간에 걸쳐 세워진,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나플리오의 과거를 아련하게 짐작케 해주는 고향의 성황당 같은 것이고 부르치 성채는 과거의 용도야 어떠하든 매우 고아하고 아름답고 또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자태가 낭만적 정취를 한껏 자아내는 정자같은 것이라면 이 팔라미디 요새는 그 웅장하고 우람하고 각지고 멋진 모양새가 마치도 거대한 함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위용에 있어서 모든 다른 요새들을 누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현란하다고 할만큼의 요새 축성기술이 최고도로 집약되어 나타난 군사적 결정체였다. 규모도 어마어마했고 산 지형에 따라 펼쳐진 각각의 요새 (에파미논다스 요새, 미티아데스 요새, 아킬레스 요새, 레오니다스 요새 등등..)는 위치에 따라 모양도 각양각색이었고 보기만해도 완벽할 정도로 그 견고함을 느낄 수 있는 벽의 두께도 압도적이었다. 지어진지 얼마 안 된 탓인지 겉모습도 대부분 멀쩡하고 무너진 곳도 한 두 군데뿐이었다.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요새는 완공된 지 사흘만에 오스만 세력에게 함락당했다고 한다. 전쟁에는 방어보다 공격이 중요한 것인지?
팔라미디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냥 압도적이다. 산 아래 위험스러워 보이는 절벽 아래로는 아르바니티아 해변이 오른쪽에 쑥 튀어나온 얕은 산에 둘러싸인 채 파란 물을 출렁거리면서 아스라하게 보인다. 그 위로는 태양빛이 아낌없이 햇살을 내리꽂고 멀리 항구 쪽에는 하얀 돛을 펼친 요트가 한 두개 떠 있다. 올드타운 쪽에는 주홍색 지붕을 머리에 인 오래된 집들의 노란색 벽들이 햇빛에 반짝인다. 바다 한 가운데에는 언제 보아도 그림처럼 예쁜 부르치 성채가 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