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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Oct 15. 2023

나플리오 3.

나플리오 3.


  미케네를 거치고 아르고스를 지나서 다시 나플리오에 왔다. 아르고스에서도 아케올로지컬 싸이트에 들렀지만 사실 그다지 볼만한 관광지는 아니어서 아르고스에 대한 여행기는 생략하려고 한다. 나플리오에 다시 도착하자 약간은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무사하게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서쪽과 중앙을 완주한 것에 우리 스스로에게 감사했다. 이제는 렌트카를 반납해야 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렌터카 업체가 있는 가까운 광장에서 차의 이곳저곳을 사진 찍어놓고 반납할 준비를 마쳤다. 회사에 키를 넘겨주니 우리를 담당했던 여직원은 보이지 않고 사무보조원으로 보였던 어린 청년만 혼자 있다가 차에 대해 살펴볼 생각도 안 하고 키만 받고 아무 조치도 없이 다 됐으니 그냥 가라는 것이었다. 역시 시골도시의 영세업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확인서를 받고 그의 서명을 받아야 할 것 같았지만 ‘뭐가 더 필요해?’ 라는 듯한 그의 태도에 질려서 그냥 나오면서 차에 대해 느꼈던 몇 가지 불만을 말하려다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싶어서 굳바이 하며 악수를 하고 나왔다.

  점심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나 있어서 일주일 전에 잤던 호텔 직원이 추천해준 적이 있었던 식당을 찾아 업체 뒷편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바로 그 식당 간판이 보였다. 골목에는 그 식당에서 늘어놓은 테이블에서 몇 몇 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요리접시들을 힐끗 보고나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종업원이 나오더니 곧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된다며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배고픔과 실망을 동시에 느끼며 어쩔 수 없이 돌아나오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이번에도 ‘아이올로스‘에 가야하나 잠깐 생각했지만 우리가 뭐 충성고객도 아니고 다른 식당을 찾기로 했다. 골목 골목의 식당들은 여전히 부겐빌레아의 빨간색, 하얀색 꽃그늘 아래 테이블을 늘어놓고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 중에서 대충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왠일로 너무 지친 탓이었는지 식욕도 없었고 음식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아서 먹는둥 마는 둥 음식을 남기고 나왔다. 역시 ’아이올로스‘에  갈껄 그랬었나 보다.


  나플리오에서 두번 째로 예약해 놓은 호텔은 역시 아크로나플리오 요새 성벽바로 앞에 있는, 그러나 예전 호텔보다는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한 매우 세련된 현대식 호텔이었다. 옛날 건물을 맵시있게 레노베이션을 해서 새로 지은 호텔처럼 보였다. 이제는 이 도시 올드타운 지리를 다 안다는 듯 남편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서 쉽게 찾았다. 우리 방은 2층이었는데 올라가서 발코니 창문을 열었더니 바로 건물 옆의 키 큰 나무(그 나무의 이름이 궁금해서 프론트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유칼립투스 라고 했다. 향기가 그렇게 좋은지를 그때 처음 알게 됐다.)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고 방의 넓이나 인테리어, 구조가 썩 괜찮아서 기분이 좀 가벼워졌다.


  몸을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짐을 정리한 다음에 약간의 쉼이 필요한 것 같아서 의자에 앉아 쉬다보니 다섯 시가 지나 있었다. 이대로 하루를 넘길 수는 없어서 다시 호텔을 나가서 올드타운을 걷기로 했다. 그리스 어느 도시를 가던 항상 올드타운이 있고 그 올드타운은 다 예쁘고 사람들로 복작거리고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테이블이 펼쳐진 골목식당이 손짓하지만 이곳 나플리오도 예외가 아니어서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구경, 옷구경, 물건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한참 지나 있기 일쑤였다. 중간에 다리도 쉴겸 젤라토 집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큰 걸 시켰는데 나온 양은 사진에 제시된 것보다 훨씬 작은 양이었다. 어쩐 일이지? 이 여자가 착각한 거 아닌가 하며 주인인 듯한 여자를 자꾸 쳐다봤지만 그녀는 다른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체를 하는 듯 했고 우린 그냥 무시당한 채 대충 빨리 먹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하, 그리스 사람들도 이렇게 얼렁뚱땅하는 기질이 있구나 싶었지만 아이스크림 양을 갖고 따지고 자시고 할 기운도 없고 그런 일로 체통을 구길순 없어서 억울했지만 꾹 참았다.  

  나플리오에서는 올드타운을 가로로 해서 뚫고 나가면 곧바로 항구가 나온다. 오늘 저녁은 시원하게 뻗은 바다옆 산책길과 바다를 보며 현대식으로 가꿔진 식당에서 밥을 먹어볼까 싶었다. 올드타운도 좋지만 이곳도 경치가 빼어나서 여기서 안 먹으면 나중에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였다. 항구쪽 산책길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길을 걷고 사진도 찍고 연인들끼리 가족들끼리 행복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항구가 끝나는 곳, 아크로나플리오 요새 성벽으로 막혀진 곳까지 갔다가 돌아서 나왔는데 그쪽에는 훨씬 옛날에 지어진 아크로나플리오 요새와 1700년대에 지어진 팔라미디 요새가 서로 대각선으로 비껴가면서 겹쳐져 보여서 도시 풍경을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바닷가 끝에 자리한 한 식당이 눈에 띄었으나 이미 사람들로 만원인 것 같아서 천천히 되돌아 걸었다. 이미 조금씩 노을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한 하늘이 더욱 분위기 있는 저녁으로 바뀌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카페에 빈 자리가 있으면 앉으려고 했지만 바다가 가까운 쪽은 벌써 만원이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가니 어느 카페에서 한 커플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됐구나 싶어서 그리로 가서 앉았다. 해는 이미 기울었고 하늘 색깔은 더 붉어지고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다. 우리는 테이블로 다가온 종업원에게 햄버거와 제로콜라와 클럽샌드위치를 시켰다. 그곳의 카페에는 그런 가벼운 음식종류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다에 떠 있는 부르치 성채에 노란 색의 조명이 켜지고 바야흐로 바다를 배경으로 야경이 펼쳐지며 여름 밤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뒤편을 바라보니 팔라미디 성채에도 조명이 들어오고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나플리오만의 밤풍경이 설레일만큼 아름다워서 오늘은 호텔에 늦게 가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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