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위를 걷는 삶
100일도 안된 아기의 수술 날.
코로나시기였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구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수술을 할 수 없었고 아이가 90여 일이 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 아이의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는 두 번째였던 아이의 수술.
아기가 마취되는 순간은 두 번째여도 낯설고, 긴장과 불안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아이는 내게 안겨 온몸이 축 처지고, 마취가 다 된 아이를 수술 베드에 눕히고 나올 때의 그 기분. 앞으로도 몇 번을 더 경험해야 하는 순간이지만 아마 평생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첫째 때의 경험으로, 이때 밥을 먹어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넘어가지 않는 밥을 눈물과 함께 열심히 씹어 삼켰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아이를 만났다.
수술 부위가 아팠는지 아니면 엄마를 찾느라 그랬는지 엉엉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잠들면 위험하니 잠들지 않게 하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열심히 깨웠다.
아이는 울다 잠들다, 울다 잠들다를 반복했고, 나는 혹시나 잠들면 위험해질까 불안하여 열심히 깨웠다.
회복실에서 산소포화도가 안정됨을 확인하고 병실로 돌아왔고, 나는 익숙하게 병원 복도와 로비를 돌고 돌았다. 감사하게도 이 병원은 2박 3일만 입원하는 곳이었고, 또한 셋째가 첫째와 다르게 유모차를 잘 타주어서 첫째 때보다는 훨씬 수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퇴원 후 1년간 수술부위를 관리해 주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낸 후 돌이 되어 구개열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2인실.
전과 비슷한 시간들을 지나 아이의 수술이 끝났는데, 이번엔 아이가 좀 더 커서 그랬는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려 10킬로 넘는 아이를 안고 토닥이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돌다가 지쳐 방에 잠시 들어와 앉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옆 베드에서 갑자기 짜증이 한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애기 엄마, 우리 내일 수술해야 하는데 애기 우는 소리 듣기 힘들어요. 좀 그치게 하세요!’
아이 울음소리는 누구에게나 힘든 거 맞으니까 이해했다. 내일 수술이시니까 컨디션 관리 하셔야 해서 그러실 수 있다고. 그래서 정말 죄송하다 말씀드린 후 다시 안고 병실 밖을 나와 우는 아기를 안고 엘리베이터 앞 벤치에 잠시 앉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눈물을 삼키려 애썼지만,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내 상황이 너무나도 서러웠다.
아이들 병원 일정을 소화하며 시간이 정신없이 흐르던 어느 날, 파송교회에서 사역자로 들어와 줄 수 있는지 물어봐오셨다.
그렇게 2022년 2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파송교회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 거리 두기로 인해 교회를 가지 못하던 시기 었어서 영적인 갈급함이 심했고, 또한 아이들의 병원 일정을 소화하며 많이 지쳤다.
사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잘 모를 만큼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신부산교회로 다시 돌아와 수요예배, 토요새벽예배, 매주 주일 예배 등을 나갈 수 있게 되면서 조금씩 갈급한 내 영혼에 생수가 부어지는 시간들을 경험해 갔다.
그 해 말씀은 계속 고난이 있을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매주 깊이 있게 고난에 대하여 다루셨다.
제자양육과 마더와이즈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매주 고난에 대한 설교를 듣는 것이 왜인지 모르게 조금씩 힘이 되었다.
그런 하루하루 속에 조금씩 회복의 길로 걸어가던 중
10월 16일 새 생명 축제날이 되는데,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던 중 하신 한마디에 갑자기 무언가 한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행복의 대상을
밖에서 찾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이것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것만 있으면, 그것만 해결되면 행복해질까요?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진 않을까요?
그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매일 생각하던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갈 일 없는 건강한 아이만 낳을 수 있다면 진짜 행복할 것 같은데..."
그다음으로 목사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시면,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의 주인 되어주시고
예수님이 나의 행복의 주체가 될 때 우리는,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모든 순간에 소망하며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고난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평안과 행복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
죄와 고난으로 고통받는 세상에서
소망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짐은 내가 질 테니,
너는 나와 내 손을 잡고 이 길을 함께 걷자며 내미는 손길이 느껴졌다. 내 마음을 장악하고 있던 모든 불평과 불만, 불안과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자유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함께 걷자고 하신 그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몰아치는 고난의 파도 위를 함께 걸어주겠다고 하신 것이었다.
고난, 죄가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지금은 피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도 아니다.
고난은 그냥 마치 파도처럼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그저 수도 없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난은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파도에 빠져버릴 것인지, 파도 위를 걷고 파도를 타버릴 것인지 결정될 뿐이었다.
이 땅에서 고난을 이겨낼 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예수님의 손을 잡는 것 밖에는.
새 생명 축제 때 말씀을 듣는 그 순간
주님은 내게 손을 내밀며, 그 파도 위를 걸어버리는 힘을 주시려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인생으로의 초대. 그날 이후 나는 정말로 마치 새롭게 태어난 것 마냥 다른 삶을 사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새 신자를 초청하는 행사라 생각했던 그 새 생명 축제에서, 내가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셋째 임신 중 꾼 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못생긴 자두 세알이 푸른 보석목걸이가 되어 내 목에 걸리던 그 꿈.
이 귀한 아이들로 인해, 이 고난의 시간들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매 순간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속에서 늘 경험했고 매일 점점 더 알아가고 있었지만, 드디어 그분과 1대 1로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마치 연애를 하다 결혼하게 되면,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변하는 것처럼, 신랑 되신 예수님과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하면 비슷하려나?
당시에는 만남의 기쁨이 너무 커서 마치 다 이룬 것 같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 후로 이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 주님과 매일 그날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 우리임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사건 전과 후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변하였다. 그건 바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게 된 것. 이후로는 넘어져도 의심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그분께로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난은 결국, 나에게 축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