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식물들의 수다 속으로

식물들의 수다

by 비단향꽃무

"간밤에 바람은 골고루 맞았니?"

넓은 이파리를 분수처럼 펼치며 주변을 살피던 극락조가 잎을 나풀대며 말했다.

"지난 장마에 태풍이 몰려 온다고 주인이 창문을 닫아 놔서 숨이 턱턱 막혀서 혼이 났어.

그래서 이것 좀 봐 내 줄기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이파리의 뾰족한 끝이 누렇게 말라가잖아.

그런데 어젯밤엔 어쩐일인지 주인이 창문을 열어줘서 오랜만에 꿀잠 잤네."

SE-6e47faa3-d5f8-498e-a0cd-1f4f2ec436ac.jpg?type=w966 극락의 새 같은 꽃이 핀다는 극락조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더위에 극락조의 그늘에서 쉬어가곤 하던 한란이 답을 한다.

"나는 주인에게 불만이야. 나는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흠뻑 받으면 되는데 주인이 물을 좋아하는

극락조 너에게 왔다가 옆에 멀쩡히 있는 나에게 찔끔찔끔 감질나게 뿌려주고 간단 말이야.

그래서 물이 뿌리에 고여서 내 몸이 썩을까 봐 걱정돼.

지나친 것은 항상 모자라니만 못하잖아. 한란의 아름다운 꽃도 활짝 피우고 싶은데 말이야."


"아! 그렇구나! 내가 말을 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SE-bcb47674-b404-4657-98e1-5e14ed979099.jpg?type=w966 속 사정을 하소연 하고 있는 한란

"나도 애로점이 있어. 주인에게 물을 한번 받으면 잎에 통통하게 저장해놨다가

조금씩 꺼내서 생육하는데 쓰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받는데

이번 달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물을 안 줘서 광합성 하는 것을 쉬어 가며 물을 아끼고 있어.

내가 아예 물을 안 좋아하는 줄 알고 주인이 나를 지나쳐서 간단 말이야."

키가 제일 작아서 바닥에 붙어 자라던 아기 바위솔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SE-d22e3d6f-ecc9-49cc-a31e-fd1cc09d8f2f.jpg?type=w966 투쟁하느라 이파리들이 모두 일어서있는 아기 바위솔

"불만들 좀 그만하라고! 내 옆에 살던 금전수 말이야.

몇 년 전 주인을 부자 만들어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여기로 입성했었잖아.

매일 반짝반짝하는 윤기로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그 아이가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겨울에 얼어 죽었고

언제고 꼿꼿한 자태로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율마는

지난여름에 타는듯한 더위에 햇볕에 타서 말라 죽었잖아!"

햇살을 너무도 사랑하여 햇볕만 받으면 초록 이파리가 핑크 핑크 하게

색깔이 변하는 콜레우스가 높은 곳에서 호령하듯 말했다.

꽃대를 이리저리 여러 갈래로 뻗어서 자세가 기우뚱해진 모습으로 온몸을 불사르듯

꽃을 피우고 있던 콜레우스가 바닥으로 여린 잎을 또 떨구었다.

SE-357003cb-2710-4da0-bbfe-bafbc4938f59.jpg?type=w966 햇빛을 받으면 파란 잎사귀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호령하는 콜레우스

"맞아! 나도 지난해 매서운 추위로 죽어갔었지!, 춥고 딱딱한 땅속에서 뿌리 한올을 간신히 잡고

버티고 버티다가 이제서야 연둣빛 작은 새순으로 간신히 땅으로 올라온 거야.

내가 죽은 줄 알았던 주인 눈이 반짝반짝 하더군!"

화분 귀퉁이에서 수줍게 인사하듯 얼굴을 내민 스킨답서스가 조용히 말했다.

SE-0baac0ed-f8a1-46f3-a582-d41812819053.jpg?type=w966 불현듯 땅속을 비집고 올라온 스킨답서스

과거 어느 날 아침이었을 거야. 내가 호랑나비 같은 화려한 꽃을 피우며 깜짝 쇼를 했더니

주인이 아주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더군. 그런데 말이야

내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하루만 피는 꽃이야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기를 몇 번 반복했지. 그러다가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하고

부추 같기도 하고 풀떼기 같기도 한 이파리만 성장시켜 갔어.

주인 표현에 의하면 그래. 어마어마하게 폭풍 성장했어.

그랬더니 너무 무성해져서 내가 베란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게 되었어.

나를 분양해서 다른 곳으로 심어줘야 하는데 그냥 그대로 놔두더라고.

양쪽으로 샤시를 타고 올라가던 화란 붓꽃이 비틀거리며 투덜거렸다.

SE-67402221-ac9e-44e2-8140-4f386b8275c0.jpg?type=w966 폭풍 성장에 어쩔 줄 몰라 춤을 추고 있는 화란 붓꽃

"여러 가지 고충들이 많은 여기 초록 별들에게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드네.

내가 이 집에 가장 늦게 왔지. 그런데 주인의 시선이 나에게 많이 머물러있단 말이야.

주인이 화분에 대한 엄마와의 살아생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주인 집에서 가장 큰 '엄마의 화분'에 나를 심어놓고

내가 피우는 앙증맞은 하얀 꽃에 코를 가까이 갖다 대며 아주 흐뭇해하거든.

그래서 주인에게 오래오래 기쁨을 주고 싶은데 날씨, 바람 등이 도와줄지 모르겠어.

물은 매일 이파리 위로 이슬 맺히듯 뿌려지고 뿌리로 촉촉이 흘러내려 가고 있어.

오늘은 조금 키가 컸다고 주인에게 칭찬도 받았어."

거실 창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아기별 재스민 나무가 이파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SE-626609b7-a638-43f2-9d69-a97eeb274df1.jpg?type=w966 영양제 주사까지 맞으며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아기별 재스민

"재스민? 네가 부럽다. 달콤한 향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하얀 꽃을 피우니 더 사랑을 받는 것 같아.

지난 겨울에 아기 강아지가 주인집에 분양 돼서 들어왔는데

키가 작은 화초들 잎을 입으로 뜯어서 모두 베란다로 쫓겨 나가고

나는 키가 너무 커서 강아지가 못 건드린다고 거실 창 안쪽으로 보내졌지.

그래서 지난겨울에 너희들보다 따뜻한 거실에서 살았지만 올봄,

여름 남향의 베란다에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듬뿍 받은 너희들이 부럽기도 하더라.

그래서 오늘도 나의 가지와 이파리들이 바람이 잘 들어오고 햇살이 잘 드는

거실 쪽으로 향해서 조금씩 뻗어가고 있는 중이야.

내가 햇살을 따라가다 새로 돋아난 나의 연둣빛 이파리가 웃거든

한 번씩 바라봐 주렴!" 키다리 벵갈 고무나무가 응답했다.

SE-f5df7203-57be-44c6-b75b-b06e16fe8665.jpg?type=w966 베란다로 나갈 듯 햇빛을 따라가고 있는 벵갈 고무나무

"나는 주방 싱크대 위에서 혼자 있어.

실내 공기 정화작용을 해야 하는 역할 때문에 여기 있는데

수도가 바로 내 옆에 있어서 물을 잘 받을 줄 알았는데 물 흐르는 소리만 계속 들리지

좀처럼 물 받기가 힘들어. 공기 정화 잘한다는 수염 틸란드시아 못지않게

나도 공기 정화 잘하는데 내가 너무 주인 가까이 있으니 잘 안 보이는 것 같아.

하지만 나는 반음지 식물이라 베란다로 나갈 순 없어.

우두커니 주방을 지키고 있던 '더 피고 사리'가 중얼거렸다.

구시렁구시렁 식물들의 수다로 고요하고 적막한 밤이 깊어간다.

SE-42506bef-5f1f-4ed6-97a0-273b14586236.jpg?type=w966 주방 싱크대에서 실내 공기 정화 중인 반음지 식물 더 피고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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