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예약할수 없는 곳?

누구든지 셀프로 예약될 수 없는 곳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내일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을 동경하며 알고 싶어 하지만 죽음의 방에 대한 것만은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또 피하고 싶고 종착지라고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의 심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 공포와 두려움은 어떤 원인이 없다.) 자신의 기한을 안다거나 상대방의 기한을 안다고 해서 바로 예약되지 않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생의 기한을 몰랐을 때나 알았을 때나 오늘이라는 삶의 시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 기한을 알았다고 해도 확실한 기한이 아니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날이지 않는가.. 1,2, 3, 또는 5년? 그리곤 간혹 예측되었던 기한이 리셋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행이다 기적이다 말하면서 축하의 인사를 한다. 몰랐던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사실이 리셋되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 정말로 다행인 것일까? 한편으로는 이전의 삶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면 기적의 리셋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뚜렷한 원인 없이 다가온 공포와 두려움, 불안의 심리까지 리셋된 것은 아니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예약할 수 없는 이 방의 두려움과 불안의 공포심리는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오늘이라는 현재를 살아간다면 죽음에 대하여 의식하며 살아간다해도 두려움에 대해서는 조금 무디어지지 않을까요?!! 이런 심리상태가 된다면 자신이 이 예약되지 않는 방에 들어가거나 누군가 이 방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알았을 때 슬픔에 대하여 눈물에 대하여 다시 볼 수 없는 헤어짐에 대하여 초연해진 마음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상대방을 위로하면서 죽음에 대한 원인 없이 막연하게  찾아온 두려움과 불안의 공포로부터 해소되지 않을까요?!! 엄격히 말하면 해소라기보다는 대처할 수 있는 심리가 생겼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자를

              위한 눈물'

                         박재하

누구를 위한 눈물인가요

지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배웅인가요

욕망의 강인가요


울어도 좋습니다

통곡해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흐르는 눈물, 메인 가슴의

흐느낌은 가는 사람의 위한 게

아닌 보내는 사람의 위로의

                               노래라는 것을


✒️자신이나 누군가 불청객처럼 다가온 예약할 수 없는 이곳에 들어온다면 알았던 몰랐던 것에 관계없이 숙박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숙박지도 어느 정도 머물러있다가 새로운 여행지를  발견하면 그곳에 숙박지를 정하듯 선고받은 이 방에 들어와 보면 종착지가 아닌 새로운 종착지가 "하나 더 있었네" 하며 다른 숙박지로 옮겨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꼭 선고를 받은 사람만이 이 방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방에 들어온 자가 아닌 이 방의 존재를 인지하는 자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의 공포에서 해소될수 있습니다. 시한부선고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고 다만 예측할 수 있는 기한의 여부만이  없었을 뿐 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해소할수 있습니다. 예약되지 않는 곳?, 예할수 없는 곳?, 그러나 이미 예약된 이 곳 .. !


"두려움.불안극복이 아니라 대처하는 것입니다."


이전 01화 시한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