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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기한의 끝은?

사람과 만물의 기한을 대하는 자세

✒️생이라는 삶의 기한;인생의 시작이 탄생이고 그 기한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리고 만물의 생이 봄이고 그 끝이 겨울이라는 것이 맞는 것일까? 틀린 이치, 법칙은 아니지만 정확히 맞는다거나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인생의 시작이 굳이 탄생시점이라고 말할 수 없고 만물의 시작점을 봄이라고 얘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나 만물이나 단정 지어서 탄생과 봄을 시작점이라 얘기할 수 없고 그 기한의 끝을 어디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인생과 만물의 흐름에 따라서는 탄생 이후  어느 시점이 시작일수 있고 마지막이라는 기한이 채워지는 것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한부라는 인생의 선고라는 결정으로 인해서 굳이 반가워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낙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생이든 만물이든 생의 기한이 채워지면 누구나 시점에서 종점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고 정해놓은 기한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놓은 규칙이나 법칙일 수 있다. 1월이 그해의  시작이라고 정해놓았다면 계절의 시작을 봄이라고 했을 때 계절의 시작은 사람이 정해놓은 3월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시한부선고라는 끝의 의미 또한 낙담할 만큼의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생도 만물도 봄의 시절이었지만 봄 속의 겨울을 맞이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끝이라고 여겼던 그 겨울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반복하여 듣는 것처럼..) 이것은 생의 기한을 알고 있거나, 모르는 거와는 상관없는 이치이다. 더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생의 기한이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끝을 목격했거나 자신이었을 때는 더 슬픔을 이기지 못하지만 그 관점 또한 사람이 만들어놓은 관점이라는 것에 불과하다. 시작도 끝도 기한의 년수도 신의 관점으로 볼 때는 그 기한이 채워졌다는 것이기에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어서 뜻밖의 끝, 이별에 놀라워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사람이기에 슬퍼할 수밖에 없지만 이 끝에서 낙담하여 주저앉아 무너지지는 말자.


✒️시작은 겨울에도 있고 끝은 12월을 또 여러 번 보며 지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시한부, 시한부선고, 시한부인생이라는 이 규칙, 이 법칙에 민감하게 살지 말자. 그냥 오늘이라는 하루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보편성 365일이 아닌 자신만의 1년, 2년, 3년이라는 365일을 만들어가며 살아가자. 그리고 자신의 기한이 채워졌는지 못 채워졌는지 알 수 없지만 니름대로 채워져 가며 끝에 도착하기까지는 숨 쉬는 생, 삶을 어딘가 쌓아가든지 자신만의 life note에 채워지는 기한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그 대비하는 마음은 생의 끝에 서있을 때 덤덤한 모습으로 맞이할 수 있으리라.


*. 서있는 모습이 자신이든, 배웅자이든지,

어느 길목에서 또는 어느 벤치에서.. ,

인생의 마지막 펜으로 에필로그를 기록하며 ~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누구나 어떤 인생이든지 생, 삶의 기한은 채워지고 있다. 이것은  성공이나 실패, 열매나 그 어떤 결실이라는 결과물은 아니다. 그러기에 정확한 팩트는 어떤 인생이든지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할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생은 그리고 그 끝은 다 의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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