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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기한의 끝에 선 얼굴들

슬픔, 아쉬움, 미련 그리고 눈물

✒️점 하나 없던 백지장 종이 같았던 무인생에서 유인생 라이프가 다시 무가 되는 예정된 시간에 사람들은 마치 평생 유라이프로 살 것이라고 여긴 것처럼 시한부 기한의 끝에서 슬픔과 아쉬움과 미련의 모습으로 눈물과 흐느낌 그리고 울분이라도  토해내듯 음표 없는 통곡의 노래를 합창한다.(*. 지휘자도 악기도 없이..) 그리고 이 헤어짐의 기억은, 망각의 특징을 가진 인간의 기억을 고장 난 비디오가 되어 수시로 정지되었다가 반복하며 재생되기도 한다. 이곳엔 비록 예정된 시간이었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뜻밖의 사연들로 해서 이별의 슬픔과 고통의 눈물은 이 현장의 플랫폼을 와보지 않은 사람은 전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위로하거나 잊으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은 어떤 위로나 용기를 주는 말은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자가 되기 때문이다. 굳이 위로한다면 지그시 바라보는 눈 그리고 슬쩍 어깨 위에 얹은 손의 액션이랄까.. , 자연 현상으로 시한부의 플랫폼에 오고 자의로 타의로 오고 어떤 질병으로 오는, 오고 싶지 않은 플랫폼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나 와야 할 플랫폼, 예정된 이별이긴 해도 논란할 수 없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시한부 기한의 끝은 만들지 말자. 어차피 만남에서 헤어질 것인데 모두가 싫어하는 이별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또 시한부, 기한의 진실은 떠나는 사람보다 보내는 사람의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남겨진 자의 외로움, 쓸쓸함, 공허함은 이 플랫폼에서 흘려지는 눈물과 비교할 수 없다. 더욱이 마지막까지 남아 네가 먼저 갈 수 있어 다행이야 라는 슬픈 듯한 미소를 보이며 배웅하며 내가 널 마중할 수 있어서 오히려 괜찮다는 마음을 갖는 다면 시한부 기한의 끝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비록 내가 이별, 기한의 플랫폼에서 마지막 여정자가 되어 날 배웅하는 사람이 없어도 나는 오히려 괜찮다는 마음" 이 마음이면 시한부를 대하는 불안, 두려움은 혹시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눈물의 모습 에필로그;

"떠나는 사람은 날 배웅해 줘서 고마워라고, 보내는 사람은 널 배웅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라고" 서로 눈과 마음으로 인사한다면 서로 미소 띠우며 헤어지지 않을까요? 이별의 끝 저편에 우리가 알 수 없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는.. ,

'서로 미소 지으며 ~' 

"안녕 굿바이 씨유 어게인 투모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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