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 사랑은. ‘죄의 공유
‘소년시절의 너’ 2019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궁극의 사랑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한두 마디씩 던지는 이야기는 전부 그럴듯했고,
궁극적 사랑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인물이 뱉은 말이 있다.
그녀가 생각하는 궁극적 사랑은. ‘죄의 공유’라고 말했다.
말없이 상대방의 짐을 반 덜어 같이 짊어지는 것,
소년 시절의 너는 이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성장, 사랑 청춘의 교집합을 가장 잘 뽑아낸
위태로운 청춘영화이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그 시점을 지나온 기성세대들이 남발한다.
그 자체로 찬란해서 그대로 바스러지는 그 찬란한 시기와 감정을
남은 이들은 영영 품고 그리며 산다.
내 욕심이라면 항상 청춘의 조각을 지녀줬으면 하는 친구들이 있다.
첸니엔 과 샤오베이는 늘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한다.
영화는 멜로, 로맨스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성장에 대해 크게 다룬다.
영화는 첸니엔 과 샤오베이는 두 인물에게 집중해있다.
힘든 가정환경, 학교폭력이라는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오직 베이징대학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첸니엔,
어떤 희망도 없이 길거리에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샤오베이.
이야기의 시작은 한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소녀의 죽음으로 학교폭력의 새 희생양이 된 첸니엔 은
길을 걷다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던 샤오베이를 구해준다.
그 이후로 순탄치 않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둘은 서로 의지하는 맹목적인 사이가 되고,
수능 전날, 둘에게는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만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베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우리는 이 둘의 관계에 흡수되어,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속으로 흡수된다.
사실 이러한 스토리 라인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백야행’을 떠올리게 한다.
한 여자의 그림자로 평생을 살아온 남자와, 빛으로 살아가는 여자의 불온한 관계
그러나 소년 시절의 너는 극 중에서 여러 번 언급하였듯, ‘미성년’임에 주목한다.
아직 덜 자랐기에 덜 깎이고, 덜 사그라들어 서로에게 맹목적인 구원자가 되어준다.
그 둘은 안일한 선택을 하기도 하였지만, 성장을 택한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죄를 절반씩 짊어지고, 빛으로 나아가길 택하는 데 있어 큰 의의를 둔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그런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맹목적으로 나를 지탱해 줄 그런 사람, 아슬아슬하고 위태롭지만 강한 확신을 주는 사람.
이런 존재와, 이런 관계는 현실에 없기 때문에 늘 갈망한다.
중화권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농도가 짙고 어딘가 먹먹하다는 것이다.
담백한 한국 영화, 투명한 일본 영화, 찐득한 중국 영화,
영화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금붕어를 응시하는 첸니엔 과, 샤오베이의 얼굴이 영원하길 바라는 내 마음처럼